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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국(발해)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인가? (1부)
동모산은 동만주가 아닌 하남성 대야택(발해) 일대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2/10/05 [15:10]
우리는 우리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가 발해(渤海)였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대연방제국이었던 단군조선과 그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고구려의 강역을 식민사학계에서 잘못 표기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발해라는 나라는 이웃나라인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릴 정도로 강성한 대제국이었다.

발해라는 국호는 대단히 잘못된 국호이다.
발해라는 국호는 당나라 때부터 일방적으로 불려진 국호로, 713년 당나라 측천무후가 대조영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汗州都督)’으로 책봉하면서부터 발해로 불리게 된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북한이 한국을 남조선이라 부르고, 중국이 서울을 한성(漢城)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이 책봉을 당나라가 보낸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대조영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볼 때 자체 년호까지 쓰는 대제국의 황제가 적국인 당나라의 일개 발해군왕(郡王) 책봉을 감사히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당나라는 보내고 대진국은 분명 거절을 했을 것이나, 거절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책봉을 보낸 기록만이 남아 있으니 황망할 뿐이다.

1.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의 기록

“조대기에 기록되기를, 개화 27년(668) 9월 21일 평양성 함락 시 진국장군 대중상이 서압록하(西鴨錄河)를 지키다가 변고의 소식을 듣고 마침내 군사를 이끌고 험한 길을 달려 개원을 지나갈 때 이 소문을 듣고 대중상을 따르겠다고 원하는 자가 8,000명이었다. 이에 같이 합류하여 동쪽으로 가서 동모산(東麰山)에 이르러 자리를 잡고 성벽을 견고하게 지키고 스스로 보전에 힘을 쓰며,
나라를 후고구리(後高句麗)라 하고 연호를 중광(重光)이라하였다. 격문을 전하여 이르는 곳마다 원근의 여러 성들이 귀속을 하여 무리를 이루었으며 오로지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여기었다. 중광 32년(699년) 5월 대중상께서 돌아가시니 묘호를 세조(世祖)라 하고 시호를 진국열황제(振國烈皇帝)라 하였다.

(원문) 朝代記曰 開化二十七年九月二十一日 平壤城陷落時 振國將軍大仲象守西鴨錄河 聞變 遂率衆 走險路經開原 聞風願從者八千人 乃同歸而東 至東麰山而據 堅壁自保 稱國後高句麗 建元重光 傳檄所到 遠近諸城 歸附者衆 惟以復舊土爲己任 重光三十二年五月崩 廟號曰世祖 諡號曰振國烈皇帝

위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의 기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상식과 상당히 다르다.

우리는 발해가 고구리 멸망 후 약 30년 후 대조영이 고구리 유민들을 모아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상식을 뛰어 넘어  

1. 최초 국호는 발해가 아니라 후고구리로 불렀고, (후에 대조영이 대진국으로 바꿈)
2. 대조영이 아니라 아버지인 대중상에 의해 나라가 먼저 세워졌으며,
3. 건국년도는 668년으로 고구리가 멸망한 해이다.
4. 대중상을 대진국의 초대황제로 적고 있다. 

KBS 대하드라마 <대조영>을 서 보면, 동쪽으로 도망가는 대조영/대중상을 당나라 장수 이해고가 쫓다가 천문령 전투에서 대중상이 전사하고, 이해고는 대조영에게 격파당해 죽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발해라는 국호로 건국한다고 묘사했다. 이건 이 나라 식민사학계의 이론을 충실히 따른 것으로, 어불성설의 역사왜곡인 것이다.

▲ KBS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대중상이 이해고에게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참으로 엄청난 역사왜곡이다. 대중상의 신분은 대진국의 전신인 후고구리의 초대 황제이다.      ©편집부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따르면, 동모산은 대중상이 후고구리라는 나라를 세운 도읍지이고, 후에 대조영은 홀한성(忽汗城)을 쌓아 도읍을 옮겼다. 그리고 당나라 장수 이해고와의 천문령 전투에서 이긴 대조영은 국호를 대진국으로 정하고 년호를 천통(天統)으로 하고 고구리의 옛 땅을 차지하니 6,000리가 개척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나오는 동모산(東麰山)과 천문령(天門嶺)이 어디인지 정말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진국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는 우리나라에서는 <환단고기>가 유일하며, 중국에서는 <신당서> 등 몇몇 사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東牟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동모산의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환단고기>의 기록인 동모산의 모(麰)자는 모(牟)로 볼 수 밖에 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이다.

▲ 식민사학계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 발해 5경의 위치 .     ©편집부
▲ 식민사학계가 발해의 초도로 비정한 길림성 돈화시의 성산자산성. 이 이은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조작한 이론이다.     ©편집부

2. 대진국(발해)은 어디 있었는가?

▲ 현재 식민사학계의 이론인 천문령과 동모산.
일제의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강단사학계는 대진국(발해)의 시국처가 되는 동모산을 길림성 돈화시의 성산자산성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진국의 실체를 축소.왜곡 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제의 식민사학의 이론일 뿐으로, 진짜 동모산은 산서성이나 하남성에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대진국의 전신인 고구리는 산서성 남부를 핵심 강역으로 했고, 하남성까지 그 강역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위 <태백일사>의 기록에 나와 있듯이 “오로지 고구려의 구토를 회복하는 것을 임무로 여긴” 대중상과 대조영이 고구려의 핵심 강역이었던 산서성과 하남성을 포기하고 머나먼 길림성 돈화로 갔을 리가 없다.

참고로 대진국과 신라와 경계를 했다는 니하(泥河)는 하남성 정주(鄭州)에서 발원하여 가노하(賈魯河)로 들어가는 강이고 가노하는 안휘성으로 흘러가는 강이다. (金水河 : 俗称泥河,在郑州西一里处。源于郑州西南梅山之黄龙池,北行东流辗转至郑州城西,再入西、北城壕而东流,最后流至贾鲁河。此河水位无常,雨季泛涨,波涛汹涌,平时如同小溪,水势弱小),
중국 땅에 니하(泥河)가 워낙 많아 이 강이 100% 맞다고 확증할 수는 없으나 가능성이 아주 높은 강으로 보인다.

<환단고기>의 기록에 따르면, 거란(요)과 대진국의 서쪽 경계는 황수(潢水)라고 되어 있다.
황수를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하남성 마성에서 발원하여 동류하며 회수(淮水)로 들어가는 강”으로 하남성 남동단 황촌(潢村) 부근이다. 그리고 거란(요)는 원래 요택(遼澤)인 제원시 남쪽 황하습지에 살던 민족이고, 영토가 북으로 황수와 접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대진국의 5경 중 하나인 서경임황부에 대하여 <환단고기>에는
“서경인 압록부는 본래 고리국이요, 지금의 임황(臨潢)이다. 지금의 서요하는 곧 옛날의 서압록하였다. 고로 옛 책에서의 안민(安民)현은 동쪽에 있으며, 그 서는 임황현이다. 임황은 뒤에 요나라의 상경임황부가 된다. 곧 옛날의 서안평이다.” 로 기록되어 있고, 한서지리지에서 설명하는 서안평은 압록수(현 분하)와 바다(황하)가 만나는 산서성 하진시이다.

▲ <신당서>와 <한서지리지 >로 추적한 압록수는 현 산서성의 주 강인 분하이다. 그 기준이 되는 것이 요서군 고죽성이며 영제시에 있는 백이.숙제의  묘이다.                   ©편집부


3.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어디?

따라서 이러한 대진국의 시국처 동모산은 당연히 고구려의 핵심강역인 산서성 남부나 북부하남성에서 찾아야 옳지 않겠는가? 우선 동모산(東牟山)을 검색해 보면 이상한 기록이 나오는데 역사왜곡의 흔적이 역력하다. “요녕성 심양현 동 20리로 발해의 근본이 여기다. 신구당서와 요금사에 보면 현 이름은 천주산이고 청태조 복릉이 있는 곳이다. (在辽宁省沈阳县东二十里,勃海大氐尝据此,见新旧唐书及辽金史,今名天柱山,清太祖福陵在焉.)

중국이 조작한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은 요녕성 심양의 복릉 일대이다. 이는 현 대한민국 식민사학계의 이론인 길림성 돈화보다도 훨씬 서쪽에 있다. 식민사학계의 역사왜곡은 중국의 역사왜곡보다 도가 더 지나친 것 같다. 이것 이외에 다른 위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동모산(東牟山)이란 산은 애당초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동모산은 그 자체가 산 이름이 아니라 모산(牟山)의 동(東)쪽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이다.

우선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모산(牟山)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여러 곳이 나타난다.
1) 在牟平县东北三里,京名东牟山,《隋书地理志》“牟平有牟山,”山之阳地势平广,故有牟平之名。
(모평현 동북 3리, 수도명은 동모산,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모평현은 산동성 연태로 비정되어 있는데 분명 뭔가 조작이 된 것으로 보인다.)

▲ 하남성 학벽시 산성구에 있는 모산    
2) 在山东安丘县西南十五里,隋牟山县取名于此,《齐乘》安丘南二十里有牟娄山,本牟夷国,密之诸城有娄乡,左因置牟山县,今讹作朦胧山。(산동성 안구현 서남 15리)

3) 在河南汤阴县西四十里,汤河出此,即水经注所谓石尚山也。
(하남성 탕음현 서쪽 40리로 탕하가 나오는 곳. 즉 수경주의 석상산이다.)

이 중에서 대진국과 관련 있는 모산을 필자는 3)번으로 본다.
하남성 탕음현은 하남성에서 황하 북쪽에 있는 현 학벽(鶴壁)시에 속한 현으로 개봉시의 정북쪽에 있고, 은허 유적지와 아주 가까운 곳이다. 거기에는 현 지명 학산(鶴山)이라는 산이 있으며 산성(山城)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이 산성이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성으로 보인다.

▲ 대진국의 시국처인 동모산으로 추정되는 학벽시 산성구.     ©편집부

 
<사기정의>를 보면 “탕음현 서쪽 58리에 모산이 있다. 무릇 중모읍은 이 산 옆에 있다. 조사를 해보니 학벽 서쪽에는 오산(까마귀 산)이 있으며, 해발고도 763m로 학벽 주위의 가장 높은 산맥으로 소태산(小泰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 개원(고종 )묘지는 여기가 당나라 때 모산이라고 칭하였다고 설명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史记正义》: “汤阴县西五十八里有牟山,盖中牟邑在此山侧也” 经调查,在鹤壁西有“乌山”, 海拔高度763米,为鹤壁周围最高的山脉, 调查的唐开元墓志说明这里至少在唐代已有“牟山”之称.)

위 내용 중에 나오는 중모읍(中牟邑)의 역사연혁을 보면,
“汉置中牟县。中牟城北五里有牟山,高仅丈余,绵延数十里。据《大清一统志》:“邑之得名于此。”一说中牟为春秋初期郑大夫祭仲封地,“中”、“仲”音近,境内又有牟山,故名。另一说因县境有牟山,山东有外牟,故称中牟“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중모현(中牟县)을 검색하면,
“春秋郑原圃地,汉置在牟县,隋改曰内牟,又改曰圃田,唐复曰中牟,故城在今河南中牟县东,明徙今治,属河南开封府,清因之,今属河南开封道,汴洛铁路经之。”

위 두 문장을 요약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한나라 때 중모현이다. 중모성 북쪽 5리에 모산이 있다. ..... 경내에 모산이 있으며 산 동쪽에 외모가 있으며 고대에 중모로 칭하였다. 고성은 중모현 동쪽에 있다. 하남 개봉부에 속한다.”

즉 동모산은 아래와 같이 3가지로 분석할 수 있는데,
1) 하남성 황하 북쪽의 학벽시 서쪽에 있는 모산의 동쪽이기도 하며,
2) 황하 남쪽 개봉시 중모현의 북쪽에 있는 모산의 동쪽이기도 하다.
3) 학벽과 중모현이 멀지 않아 같은 지역으로 볼 수도 있다.
당시 황하의 물줄기가 어디로 흘렀느냐가 관건이다. 황하가 중모현 밑으로 흘렀다면 같은 지역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1)의 학벽시 서쪽을 대진국의 시국처인 구국(舊國: 동모산)으로 확정적으로 비정하는 이유는 대진국의 대조영과 당나라 장수 이해고가 일전을 벌이는 천문령(天門嶺)이 동모산의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2)의 경우라면, 황하 남쪽 개봉시에 있던 대조영이 당나라 이해고와 전투를 하러 황하북쪽 천문령까지 가서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좀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다. 즉 낙양 서쪽에서 공격해 온 당나라와 전쟁을 치루는 천문령이 황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대진국의 동모산도 당연히 황하 북쪽에 있어야 지리적으로 그리고 이치적으로 맞기 때문이다.

▲ 당나라 장수 이해고가 장안에서 대조영을 공격하러 가려면 낙양으로 나와야 한다. 낙양에서 2군데 공격로가 예상되는데 그 진격로 상에 천문령이 있어야 한다.                                                 ©편집부


동모산이 북부 하남성 학벽시 산성구에 있는 모산이 확실한 이유는 낙양과 동모산 사이에 있어야 할 천문령이 명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2부에서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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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05 [15:10]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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