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조선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우크라이나의 원류인 킴메르인의 기원과 역사 (1부)
쿠르드족의 원류 울긴(Ullgin)족의 역사를 파해친다.
 
세르게이 정 기사입력  2012/12/27 [12:35]
쿠르드족의 원류인 울긴(Ullgin)족의 역사를 파헤친다. 

 
킴메르인 (Κιμμέριοι) 
 
  킴메르인은 단군조선 때 조선대연방을 구성하는 81개 부족 중 하나였다.
조선대연방이 81개 부족으로 연방을 이루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고문서와 부조가 우크라이나에 있다. 81연방 중 하나인 킴메르의 원류인 울긴(ullgin)족에 대해 설명을 할까 한다.
조선 소속의 울긴(ullgin)족은 우크라이나 고대 역사서인 <마야트루 키예프[
Майя тури, Київ]> 즉 고대 키예프의 역사서에 분명히 탱그리(=단군) 81칸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울긴족은 기원 자체가 분명치 않으나 <마야트루 키예프> 
외에는 이란의 <살란 메다이바 (Better than գործող medayi Բար)> , 아프가니스탄의 <호메리온 셀람(استدعاء ميريون )>에 수록되어 있다. <살란 메다이바>과 <호메리온 셀람>은 감숙성 둔황석굴에서 발견되었던 고대 오리엔트의 파피루스로 만든 사서이다. 이것을 재번역해 모스크바에서 <오리엔트의 비밀(Секреты утка Ant)>이라는 역사책을 만들어냈다. 여기에서 울긴족의 이야기가 나온다.
 
  위에 언급한 서적들은 "울긴은 대대로 조선에 조공하였고 우현왕의 통치를 받았다"고 공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울긴족은 동아시아의 사서로 기록되어 있는 유목민족 중 가장 오래된 유목민족으로 이들은 주로 사냥과 채집, 유목생활을 했던 민족이다. 울긴족은 별다른 영역 없이 넓은 지역을 왕래했으며 이들은 무리를 이끌고 돌아다니면서 몽골 북쪽 바이칼 호수에서도 머물렀던 흔적이 있었다고 러시아 이르쿠츠크 대학 고고학 팀에서 밝힌 바 있다. 1994년 이르쿠츠크 대학 고고학 팀에서 울긴 족의 흔적을 추적하여 바이칼 호 동북부 지역에 이들의 사냥하던 화살촉과 채집에 쓰이던 물품, 토기등이 발견되었다.

참조 -
Ve Viet FORT Kasım 1995 (Gaga Yat yerel gazete 출처: 브리야트 잡지)
[원문] Иркутский университет археологии команды (Alex у северо-восточного Байкала шерсти ginjok остался Kaisho Вере Pro) курганов Барр захоронения в Гданьске копать удалось. Шерсть ginjok Kaisho Барр курганов с диска была стрелка охотой и собирательством, используемые в керамикой были найдены в больших количествах.
 
위 울긴족의 이동에 관한 것은 아래 <규원사화>와 70% 정도 일치함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규원사화> 임인년은 솔나(率那) 임금 원년이다. 북방 변두리를 순행하다가 가난한 백성들이 어렵게 사는 것을 보고 탄식하며 “달팽이도 집이 있고 벌도 먹을 것이 있는데 어찌 우리 백성들은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가?”하고 넓은 곳으로 옮겨 살도록 했다. 이리하여 남북의 백성들 사이에 배와 수레가 서로 왕래하게 되었다.

   필자는 북방 변두리를 순시하는 위 문구에서 솔나단군이 울긴족을 순시하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적과 유물의 고고학적인 부분과 규원사화의 내용 그리고 그 토기들의 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2세기로 나와 내용 자체가 일치했다. 기원전 12세기에 솔나 단군께서 이들을 공통적으로 이주시킨게 메소포타미아 북부지역으로 보이고 이때 이주한 울긴족을 시리아어로는 치키미르 인(chicimre) 이라 불렀고 그리스어로는 킴메르인 (Κιμμέριοι)이라 불렸다.  
 

<마야투르 키예프 (Майя тури, Київ)> 문서 
 
  이 석각과 문서는 현 우크라이나어의 고어로 되어 있어 조선에 관한 부분만 겨우 해석과 판독을 했을 정도로 굉장히 난해했다 한다. 작성된 연대는 10세기경으로 마자르족이 가지고 있는 문자를 활용하여 석각의 비문을 종이로 재해석한 걸로 볼 수 있다.
 
올긴 족에 대한 고문서 - 마야투르 키예프 Майя тури, Київ>    
 
 
 
<마야투르 키예프(Майя тури, Київ) 석판화>     © 편집부
이란 페르세폴리스에 방문하는 사카 구즈센 (조선 연방을 이르는 고대 페르시아어) 방문단 부조     

* 이 판화에 새겨져 있는 사람들을 스키타이인들이라고 하는 것은 후대의 평가이다. 이는 스키타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그 이전의 원류인 킴메르를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스키타이 보다 그  이전에 제국을 이루고 살았던 유목민족인 킴메르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료 가 - 단군 81연방에 대해 수록한 논문>
1. Воробьёв М. История древней Кореи 키예프대학 연구논문. 1961 . 
2. Шоков А.Ф Археология корея М 도네츠크 아시아 연구소 연구논문. 1962 .
3. В прохладе древних корейцев 하이델베르크 대학 논술지 .1944

4. الكوريون بارد للتحليل . 다베드 살람. 실 원문 - 이라크 바그다드 도서관 소장. 1979.
أسطورة .. ذلك الكلام .5. 테헤란 아비드다셋바드 . 1993 .

  조선 81부족에 대해서는 위  5개 논문에 수록되어 있으며, 우크라이나어로 81을 "파쉬취(хвиля swichi) "라고 읽고 있다. 석각의 연대는 5세기로 추정되며 아틸라의 훈족이 조각했던 것으로 "훈족이 울긴족의 후예이자 흉노이고 조선에서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81연방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다시 복사본으로 재기록한 사람은 우크라이나 고문서 연구가인 블라디미르 포왓킨 (Володимир Чотири Уоткін )으로 "81연방이 조선에 있었다"는 것을 해석해냈고 그것을 논문으로 작성한 게 위에 인용한 우크라이나 논문 3번째 논문이다. 
 
  블라디미르 포왓킨(
Володимир Чотири Уоткін)은 '조선 시원에 대한 분석' 이라는 뜻의 3번째 논문에 인용하여 "조선에 81연방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5번째 <هدی گراس [دست >이란 논문에도 "조선에 81연방이 있었다"고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고대 페르시아어로 81은 "수무카" 즉 지혜로운 자라는 뜻이 된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2/12/27 [12:35]  최종편집: ⓒ greatcorea.kr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