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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패망전쟁이 과연 한반도에서 일어났을까? (2부)
<삼국사기 신라본기>로 본 백제 멸망지는 중국대륙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3/03/04 [18:27]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은 대외적으로 영토를 많이 넓히고 대내적으로 정치를 잘해 당시 당나라로부터 해동증자(海東曾子)로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자왕은 말년에 술과 여자에 빠져 정치를 게을리하고 충신을 멀리 하고 간신을 가까이 두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렇게 기록된 이유는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백제가 천하통일을 했다면 의자왕은 분명 명군으로 기록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의자왕 2년(642) 8월 백제의 윤충 장군은 군사 1만으로 대야성(大耶城)을 공격해 김춘추의 딸과 사위의 머리를 베어 도성으로 보낸다.11월 의자왕이 고구려와 화친하고 신라의 당항성(黨項城)을 빼앗아 신라가 당나라에 입조(入朝)하는 길을 막으려고 군사를 일으켜 공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단사학계는 대야성을 경남 합천으로, 당항성을 경기도 화성으로 비정했는데 과연 그럴까?  (참고로 <신라본기>에는 백제의 대야성과 당항성 공격이 모두 8월로 기록되어 있어 서로 가까운 곳으로 보인다) 

 
현 역사이론대로라면 경상도 지역에 있던 신라와 당나라와의 육지 통로는 고구리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있을 수 없고, 신라는 바닷길이 당나라와의 유일한 통로일 뿐이다. 그런데 왜 육지에 있는 당항성을 잃자 신라와 당나라와의 통로가 끊겨졌을까? 즉 이 기록은 백제와 신라가 한반도에 있지 않고 당나라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명백한 증거로 현 사학계의 이론이 반도사관으로 얼룩져 잘못되어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 백제가 당항성을 빼앗자 신라와 당나라와의 통로가 막히려면 신라의 위치는 대륙일 수밖에 없다.     © 편집부
 
여하튼 신라는 총체적인 국가 위기로 몰리고 김춘추는 개인적으로 딸과 사위의 복수를 하려 했으나 자체적으로 군사력이 약했던 지라 김춘추는 고구리를 찾아가 원병을 요청한다. 김춘추가 온 이유를 미리 간파한 연개소문은 "당나라 사람들은 패역하기를 짐승에 가깝습니다. 청컨데 우리나 그대들은 사사로운 원수를 잊고 지금부터 삼국이 힘을 합쳐 곧바로 당나라 수도 장안을 쳐들어가 도륙낸다면 그 괴수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오. 전쟁에서 이긴 후에 옛 영토에 따라 연정(聯政)을 실시하고 인의(仁義)로써 함께 다스리도록 약속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영원히 준수함을 계획함이 어떻겠소?" 라고 오히려 삼국이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으나 김춘추는 듣지 않아 애석한 일이었다고 <태백일사 고구리국본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에게는 민족적 대업보다 백제군에 의해 비명에 죽어간 딸과 사위의 복수 만이 머리속을 맴돌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춘추는 연금된 곳에서 몰래 도망쳐 귀국했고, 진덕왕 2년(648) 이번에는 당나라로 찾아가 당태종 이세민 앞에 무릎을 꿇고 백제를 칠 원병을 요청한다. 당나라는 신라를 이용해 삼국 전체를 먹어치울 속셈으로 지원을 약조하자, 신라는 진덕왕 3년부터 중국의 의관을 착용하고 자체 연호를 버리고 당나라의 연호인 영휘(永徽)를 쓰는 속국이 된다. 국가의 위기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개인적으로 딸과 사위의 복수를 위한 적개심 때문에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 백제를 멸하기 위해 스스로 이민족인 당나라의 속국임을 자청한 신라의 모습을 보면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명나라의 힘을 빌리기 위해 스스로 속국이 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660년 당나라는 소정방을 신구도행군대총관(神丘道行軍大摠管)으로 신라 김인문을 부대총관으로 임명하여 13만 대군을 동원한다. 이 때 신라 무열왕이 된 김춘추를 우이도행군총관(嵎夷道行軍摠管)으로 삼아 지원케 한다. 보통 군을 동원하여 직책을 내릴 때 정벌할 지역명을 따는 것이 상례이다. 당나라가 고구리를 공격할 때 이세적 장군에게 내린 직책이 요동도행군대총관(遼東道行軍大摠管)이다. 참고로 요동은 산서성에 있는 고구리를 의미하며, 신구는 어디인지 현재로는 알 수가 없다.  

김춘추의 직책인 우이(嵎夷)는 바로 백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이를 중국의 지도를 근거로 산동성 동부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아래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설명으로 보아 우이는 산서성 남부인 요서(遼西) 지역에서 출발한 이족 즉 백제를 의미하는 것이며 발해(대야택) 부근 황하변 하남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창업한 강태공이 제(齊) 땅을 다스리는 제후가 되어 봉지인 영구(營丘)에 도착할 무렵 래이(萊夷)의 군사들이 공격을 하는데 래(萊)란 영구 땅 주변에 사는 만족(灣族)들이라고 <사기>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태공의 봉지인 영구는 현 북부 하남성 신향시 위휘현 일대로 그 결정적 근거가 위휘현 태공천에 있는 강태공의 무덤인 것이다. 중국은 하남성에 있던 제나라의 도읍을 산동성 임치로 지명이동해 놓고 역사왜곡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중국의 하대형세도 지도에는 우이가 산동반도에 그려져 있다.     ©편집부
▲ 북부 하남성 신향시 위휘현 태공촌에 있는 강태공의 묘. 이 부근이 원래 제나라의 땅이었다. 
▲ 황하변 하남성에 조그맣게 있던 제,노,연나라가 각각 산동성과 북경 부근으로 역사왜곡을 위해 지명이동 되었다     
(원문) 嵎夷 : 《书尧典》“宅嵎夷,其说有六”,
(甲)《孔传》东表之地称嵎夷,
(乙)《释文》马融曰,嵎、海嵎也,夷、莱夷也,
(丙)《后汉书东夷传》夷有九种,曰畎夷、干夷、方夷、黄夷、白夷、赤夷、玄夷、风夷、阳夷,昔尧合羲仲,宅嵎夷,曰旸谷,巢山潜海,厥区九族,"是以九夷为嵎夷也,
(丁)《说文》嵎山在辽西,一曰嵎铁,旸谷也,
(戊)《薛士龙书古文训》“嵎夷,海隅诸夷,今登州,于钦齐乘因以宁海州为嵎夷,今登州,”于钦齐乘因以宁海州为嵎夷,宁海,今山东牟平县,
(己)《东坡书传》当在东方海上。 

(번역) 우이 : <서요전> 우이가 사는 곳에는 여섯 가지 설이 있다.
(갑) <공정> 공표의 땅을 우이라 칭한다
(을) <석문> 마융이 말하길 우는 해우이고, 이는 래이(莱夷)이다.
(병) <후한서 동이전> 이족은 아홉 종족이 있는데, 구이를 우이라 했다.
(정) <설문> 우산은 요서(遼西)에 있다. 일설에 우철이라 하며 양곡이다.
(무) <설사룡서고문훈> 우이는 해(海) 부근에 사는 모든 이족을 말하며 지금의 등주이다. 영해주를 우이라 했다. 현재 산동성 모평현이다.
(기) <동파서전> 우이는 동방의 해상에 있다.
(주: 海는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내륙호수인 대야택 즉 발해를 말하는 것이며, 산동성 등주는 지명이동된 것이다.)

자고로 중국의 고지도에는 북경 이동과 한반도 지도와 지명이 없었다. 송나라 때 만든 지도인 우적도에도 만주와 한반도는 아예 그려져 있지 않다. 당나라 때도 마찬가지였다. 즉 백제 패망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여름 5월 26일 무열왕이 김유신을 대동하고 군대를 이끌고 도읍을 떠나 6월 18일에 남천정에 주둔하였고 당나라는 협주(莢州)를 떠나 전선을 거느리고 동(백제)을 향하여 물길을 따라 내려왔다(隋流東下). 6월 21일 무열왕이 병선 100척과 함께 태자를 보내 덕물도에서 소정방을 영접하게 하였다. 이 때 소정방이 태자에게 말하기를 “나는 7월 10일에 백제 남쪽에 당도하여 군사와 회합하여 의자왕의 도성을 무너뜨리려 하오.”하니 태자가 말하기를 “우리 대왕이 지금 대군을 고대하고 계시는 터이라 만약 대장군이 오셨다는 말을 들으시면 반드시 잠자리에서 식사를 하고 오시리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학계에서는 남천정을 경기도 이천으로, 덕물도를 인천 앞바다 덕적도로 비정했다. 과연 그럴까? 위의 장면은 분명 대륙에서 일어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무열왕이 5월 26일 수도를 떠나 6월 18일 남천정에 주둔했다고 기록했는데, 한반도의 경상도 경주에서 출발하여 경기도 이천인 남천정까지 가는데 20일이 넘게 걸릴 정도인지? 물론 군대의 행렬은 일반인이 가는 것보다 더디므로 그렇게 걸릴 수도 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백제에게 당항성(화성)을 빼앗긴 상태인데 남천정(이천)에서 어떻게 배를 보내 인천 앞바다 덕물도에서 소정방을 맞이할 수 있을까? 도대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지명비정이라 할 수 있다.  

당나라가 협주(성산)를 떠난 날이 6월 18일인지는 문맥상 불분명하지만, 만일 6월 18일 떠난 소정방이 6월 21일 덕물도에 도착했다면 이는 분명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당나라 군대가 물길을 타고 동으로 내려온다(隋流東下) 했으므로, 이는 분명 바다가 아니라 상류 하류가 분명한 큰 강일 것이다. 중국은 협주(莢州)를 글자가 비슷한 래주(萊州)라 하면서 현 산동성 동부로 말하고 있으나, 협주일 가능성이 크며 莢(협)은 陜(협)자와 거의 같은 글자이므로 하남성 낙양 서북쪽 황하변에 있는 협주(陜州)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 당나라 군대가 떠난 협주는 하남성 낙양 서북쪽 협주일 가능성이 높다.  <대청광여도> 지도에 협주가 보인다. 
 
게다가 만일 덕물도가 인천 앞바다라면 당나라 수군은 고구리나 백제 수군의 공격을 먼저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의 배와 항해술로 황해를 횡단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고 분명 육지를 끼고 가는 연안항해를 했을 터인데 그럴려면 고구리 앞바다를 경유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6월 21일 덕물도에서 신라 태자의 영접을 받은 소정방은약 20일 만인 7월 10일에 백제 남쪽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인천 앞바다에서 충청도 금강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리가 없고, 무열왕이 소정방의 백제 도착 약 40일 전인 5월 26일에 먼저 도성을 출발했는데 과연 그렇게 미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을까? 한반도 경주에서 출발해 경기도 이천에 진을 치고 태자를 인천 앞바다까지 보내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육로로 올 필요 없이 해로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무열왕 출발에서부터 백제의 기벌포에 소정방이 나타나기까지 40일 걸렸다는 것은 땅덩어리가 큰 곳에서 벌어진 상황이지 좁은 한반도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상황이다. 위와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신라 태자가 배 100척을 거느리고 소정방을 영접한 곳인 덕물도는 한반도의 인천 앞바다가 아니라 바로 대륙 어딘가에 있는 백제의 영토 서남쪽에 있는 지명으로 보아야 타당할 것이다. 섬 도(島)자가 지명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무조건 섬으로 비정함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중국의 산동성 청도(靑島)와 하북성 진황도(秦皇島)는 섬이 아니지 않는가!
 
▲ 식민사학계의 지명비정대로 그린 백제패망도는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7월 9일 김유신이 황산(黃山)의 평야로 나가 백제의 계백장군과 전투를 벌여 4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다가 관창의 희생으로 사기충천한 신라는 백제군을 격파한다.
7월 12일 나당연합군은 드디어 백제 도성인 소부리(所夫里)를 포위하자,
13일 의자왕은 웅진(熊津)성으로 피신하고, 
18일 의자왕이 웅진성에서 나와 항복하게 된다.
8월 2일 무열왕 김춘추는 의자왕으로 하여금 당하에 앉히고 술을 따르게 하는 수모를 준다.
9월 초 소정방은 의자왕 및 왕족과 신하 등 93명과 백성 12,000명을 데리고 배를 타고 당나라로 돌아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는 국가가 썩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적의 기습을 예측치 못하고 방심하고 있다가 단 몇 번의 전투에 패해 수도가 무너지고 왕이 갑자기 항복해 패망한 것이다. 즉 국가 실력으로 볼 때 그렇게 쉽게 패망할 정도가 아니었는데 공교롭게도 상대의 기습 공격에 카운타 펀치를 급소에 정통으로 맞아 한방에 K.O 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 K.O 펀치란 과연 무엇이었까?
 
 
곧 이어질 (3부)에서는 <삼국사기 백제본기>로 본 백제 패망전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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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3/04 [18:27]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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