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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영이 세운 나라는 '발해'인가?
발해는 당나라에서 부르던 이름, 대조영이 부른 국호는 대진국
 
편집부 기사입력  2012/05/30 [10:52]
수년 전 KBS에서 방영된 적이 있는 드라마 <대조영>의 시청률은 30%를 넘어 아주 높은 편이었고, 우리에게 잊혀지고 있던 발해(대진국)라는 나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 비록 뜻하지 않게 나라(고구리)는 잃었으나 굴하지 않고 다시 나라를 30년 만에 되찾는다는 위대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드라마로 연말에 KBS 연기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마지막 2부에서 발해(대진국)에 대해 중요한 역사왜곡을 함으로서 조상님의 위대한 업적을 격하시켰다는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발해라는 국호를 개국시 대조영 스스로 지은 것이고, 신당서란 사서에 보면 당나라에서 대중상에게 진국공을 내린 기록이 있기 때문에 진국이라 함은 우리를 스스로 낮추는 것이란 이상한 해설을 했다.

▲ 드라마에서 보여준 지도. 이런 땅이 넓어 5경을 두었다? 신라의 영토가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이라는 것은 대진국의 지도가 아니라 간도를 포함한 조선시대 영토보다도 작다.     
또한 발해(渤海)라는 국명은 지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도인 홀한성(상경용천부)의 서남쪽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호수인 ‘경박호’에서 따온 것이라는 해설을 했다. 경박호는 비록 바다가 아닌 호수이지만 그 둘레가 30km가량 되는 큰 호수라서 바다처럼 여겨져 국호 발해가 거기서 유래되었다는 억지춘향식 해석이었다
.

게다가 발해는 땅이 넓어 5경을 두었다 하면서 지도를 보여 주었는데 그 5경의 위치는 현 강단사학계의 이론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남경남해부가 현 함경도 북청 땅에 있다는 것으로 발해와 신라의 국경이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선으로 삼국통일 했다는 현 사학계의 이론과 같은 것이었다. 이 이론은 일제가 만든 <조선사 35권>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나라와의 화해 조건으로 요동 땅을 얻었다고 하면서 막상 보여 준 지도는 진짜 요동 땅이 안 들어간 영토였다. 왜냐하면 당시 요동이라 함은 현 요하 동쪽이 아니라, 현 북에서 남에서 흐르는 황하 동쪽지역 즉 산서성을 말함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아니면 필자가 잘못 알고 있는 건지? 이러한 모든 것은 드라마 작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한국 사학계의 이론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보니 생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일왕 특명으로 일제가 조선인의 세뇌교육용으로 만든 <조선사 35권>을 바이블로 하여 우리 국사가 정립되어 있다보니 드라마 작가인들 그 틀을 벗어날 수 없었다고 본다. 이 모든 것은 그런 강단사학계를 감싸는 국가의 잘못이 크다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1. 국호는 발해(渤海)인가 대진(大震)인가?

발해라는 명칭은 당나라 때부터 중국이 일방적으로 부른 국호로, 713년 당나라가 대조영을 ‘좌효위대장군 발해군왕 홀한주도독(左驍衛大將軍渤海郡王忽汗州都督)’으로 책봉하면서부터 중국에게만 발해로 불리게 된다. 이 책봉을 당나라가 보낸 것은 사실이나 대조영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궂이 비유를 하자면 북한이 한국을 남조선이라 부르고, 중국이 얼마 전까지 서울을 한성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그 근거로는 건원칭제까지 한 나라가 무엇이 아쉬워 당나라의 일개 제후국이 되겠으며, 대조영의 아들인 3대 광종 대무예 때 등주와 래주를 공격하고, 산서성의 대산 남쪽에서 당군을 크게 격파한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책봉을 받은 일개 제후국이 어떻게 종주국과 이런 전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일본에 보낸 여러 국서에 보면 국호를 발해로 쓴 것이 아니라 고려(고구려)로 썼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이러한 일방적인 책봉의 예는 원래 지나족들의 습성으로 자기네가 천자임을 알리고 상대방을 독립적인 제후(왕)으로 인정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책봉 관직명에는 통상 그 지방명을 사용한다. 그럼 책봉명의 발해는 어디를 말함일까? 드라마에서 말한 것과 같이 ‘경락호’에서 발해를 따왔을까? 경락호는 당나라 통치권 밖이라 그런 호수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니 그런 지명을 알지도 못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발해군왕(渤海郡王)의 발해는 자기네가 모르는 지명인 경락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발해지역을 말함이다. 발해라는 지명은 현재 요녕성, 하북성, 산동성, 요녕성에 걸쳐있는 중국의 내해를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하남성 대야택 일대로 보여진다. 그리고 발해라는 단어는 현재 중국에서 고(구)려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중국의 기록을 보면“발해군은 漢나라가 설치하였는데 하북성 하간현 동쪽‘창현’이다. 지금의 직예성 하간현이다. 하북성 하간현은 삼신산의 한 곳으로 영주(瀛州) 땅이다. 북쪽은 경조 안차현이다. 남쪽으로는 무체현이다.
당나라 무후 때 말갈인 대조영이 건국하였다. 처음 국호는 진국이라 했다. 선친 때 중견사로 발해군에 파견되어 발해왕이 되었다. 발해의 첫 발상지는 서경압록부이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

따라서 발해라는 국호의 사용과 수도 5경은 다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 대진국의 영토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황하 동부에서 시작하여 현 만주와 연해주 전역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발해는 고구려보다 더 넓은 땅을 통치했으며 해동성국이란 칭호도 얻게 된다. 고구려 때도 현 산서성과 하남성이 고구려 영토였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따르면 <조대기>를 인용하여, 1대 황제는 대조영이 아니라 아버지 대중상이고 668년 동모산에서 국호를 후고구려로 기원을 중광으로 건국했다고 한다.
대조영은 2대 황제로 아버지 대중상 황제의 붕어 시 태자였으며, 영주/계성(천진)에서 돌아와 제위에 올라 홀한성을 쌓아 도읍했고, 국호를 대진(大震)으로 하고 연호를 천통(天統)이라 했다고 되어 있다.

참고로 태백일사는 이맥선생의 개인 창작물이 아니라 <조대기>등을 인용해 대진국본기를 썼다.

이제는 중국에서 일방적으로 부른 발해라는 국호를 버리고 우리 스스로 칭한 대진국으로 불러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통일신라시대라는 단어를 버리고 남북국시대라 해야 적합할 것이다. 통일신라시대는 반도사관을 만들기 위해 일제가 만들어낸 용어로 그 의미는 위대한 대진국을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2. 작가의 상상력에 역사적 사실 묻혀버려


판타지드라마가 아닌 대하역사드라마이니 역사적 사실에 준하여 뼈대를 만들고 그 뼈대 위에 극적인 살을 입히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다. 극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가공의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사실보다는 허구적 사건에 비중을 더 둘 수는 있다. 드라마 대조영에서는 어떤 점이 역사적 사실과 안 맞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 대중상 : 천문령에서 이해고에게 죽는 것으로 나와 있으나, 그는 고구려가 망하자 바로 동모산에서 후고구려를 건국한 인물로 699년 병사한 것으로 보인다.

* 걸사비우 : 천문령 전투가 있기 전에 이해고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중국 사서에 나와 있다. 그리고 대조영의 의제(義弟)라기 보다는 아버지 대중상과 뭔가 격이 어울리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끝까지 살아남아 개국 후 군부를 맡는 것으로 되어있다.

* 측천무후(624-705) : 중국 유일무이의 여황제로 67세인 690년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오르는 인물이다. 대조영이 대진국을 건국할 당시(699년)는 76세의 나이인데 너무 젊은 분장을 해 이상했다. 그리고 당시 당나라라는 대사와 자막이 자주 나오는데 주나라가 맞다. 측천은 당나라 황제가 아니라 주나라 황제이기 때문이다.


* 이해고 : 천문령 전투에서 패해 도망가다 요하성에서 대조영과 결투하다 죽는 것으로 드라마에 나와 있는데, 역사 기록에 보면 천문령 전투 후 장안으로 돌아가 상을 받고 계속 활약한다. a.d 700년 거란 원정에도 정무정과 같이 참여한 기록이 있다.

▲ 당나라 장수 이해고는 대조영과의 결투에서 죽지 않고 천문령 전투에서 패해 돌아간 것이다.    

* 설인귀(613-683) : 평민에서 대장군의 지위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고구려 멸망 후 안동도후부의 수장으로 있었다. 토번과의 전쟁 시 10만 대군을 잃는 대패를 하여 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복직이 되고, 신라와의 전투에서 거듭 패하는 것으로 보아 평범한 장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드라마에서 발해 건국 때(699년)까지 안 죽고 살아있는 걸로 묘사되었으나 실제로는 16년 전인 683년 사망한다. 사실(史實)대로 설인귀가 죽는다면 극적 재미가 떨어질 것 같다는 작가의 판단 때문이었을까!

한국에서 고구려 관련 드라마를 방영하자 중국은 고구려를 멸망시킨 설인귀의 일대기를 그린 <설인귀전기>라는 드라마를 방영했다. 스토리 중 동북공정과 관계되는 내용은 발건(고구려)왕이 당나라의 책봉을 받았다거나, 발건왕의 소양공주에게 공물을 들려 보냈다는 대목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동북공정을 떠올리게 한다. 소양공주가 설인귀와 부부의 연을 맺는 대목에선 고구려의 격을 낮춰보는 시각이 비친다. 이세민을 패배시킨 철세문(연개소문)은 권력을 찬탈한 뒤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키는 역적으로 그려진다. 그런 철세문을 죽이는 설인귀가 그려진다.

▲ 동북공정용으로 제작된 중국 드라마 '설인귀전기'     ©

중국은 드라마에서도 이렇듯 고구려를 제후국으로 낮춰 보고 있는데, 우리는 대조영이 스스로 부른 ‘대진국’이란 국호를 버리고 중국이 책봉하면서 일방적으로 부른 ‘발해’라는 국호를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지극한 사대주의라는 것이다. 이러고도 중국의 동북공정을 논할 자격이 있다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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