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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반역자를 영웅으로 둔갑시킨 동북공정
남송의 재상 진회와 명나라 장수 오삼계를 재평가한 중국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3/08/19 [14:55]
 
중국 역사에는 2명의 유명한 민족반역 매국노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남송의 재상 진회(秦檜)이다. 금나라가 송나라의 도읍 개봉을 함락시키고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끌고 가자 흠종의 동생이 양자강 남쪽으로 내려와 남송을 세운다. 남송은 악비 장군의 선전으로 남하하려는 금나라를 한때 곤경에 빠트리기도 했으나 힘이 부친 남송은 계속되는 전쟁 대신 강화를 간절히 원했다.
 
금나라가 강화조건으로 “악비를 죽이지 않으면 강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압박하자 남송의 재상 진회가 악비에게 모반죄를 뒤집어씌워 죽여 버린다. 악비가 죽고 얼마 후 남송과 금나라 사이에 강화가 성립되었는데, 조건이 남송으로서는 너무도 치욕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은 남송의 장군 악비를 민족의 영웅으로 칭송했고, 악비를 죽인 진회를 매국노 민족반역자로 낙인찍었다. 중국인들은 진회의 이름자인 회(檜)자를 자신들의 이름에 안 쓴다고 한다. 

▲ 항주의 악비사당에 무릎 꿇고 있는 진회 부부 동상     ©편집부
 
 
청나라에게 산해관문을 열어준 오삼계
 
또 한 명의 민족반역자는 명나라의 장수로 국경 산해관에서 청나라를 수비하고 있던 오삼계(吳三桂)이다. 이자성이 농민반란을 일으켜 수도 북경을 함락시키자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목매달아 자살함으로써 명나라가 망한다. 오삼계는 이자성의 북경 진압을 저지하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출동했다가 숭정제가 죽었다는 말에 산해관으로 도로 돌아오고 만다.
 
당시 청나라는 병자호란 때 조선을 굴복시킨 태종이 죽고 8살 난 아들 순치제가 즉위해 숙부 예친왕 도르곤이 섭정하고 있을 때였다. 이 소식을 접한 청나라는 중원을 도모할 수 있는 호기로 여겨 대군을 거느리고 산해관으로 향해 갔다. 오삼계는 양쪽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이자성이 회유용으로 군자금 백은 4만량을 보내자 이자성 편에 서려고 했다.
 
▲ 중국 역사를 바꾼 여인 진원원     ©편집부
그러던 중 이자성의 부장 유종민이 북경에 있는 오삼계의 집을 덮쳐 그의 아버지를 연행하고 애첩 진원원(陳圓圓)을 데리고 가버렸다. 이 소식을 전해 듣은 오삼계는 분노하여 청나라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입관토적(入關討賊 관에 들어와 도적을 토벌해 달라)’고 적힌 서신을 보내자, 청나라 예친왕은 이를 흔쾌히 승낙한다. 경국지색의 여자 한 명 때문에 중국 역사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자성이 이러한 오삼계의 움직임에 크게 노하여 대군을 거느리고 토벌에 나설 때, 오삼계는 자진해서 변발을 하고 난공불락의 요새인 산해관 성문을 열어젖히고 청군을 맞이했다. 청나라 예친왕은 오삼계를 선봉으로 삼아 어깨에 흰 천을 두르게 하고는 이자성의 군대를 공격하자 상호간에 수십 차례의 혈전이 벌어졌고, 이어 청나라 철갑기병이 격전에 지쳐있는 이자성 군대를 들이치자 완전히 궤멸되고 이자성은 북경으로 도망치고 만다. 
                      
이자성은 오삼계 가족들을 몰살하고 황제 즉위식을 치르고는 다음날 오삼계의 추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진원원을 인질로 삼고 서쪽으로 도망쳤다. 다음날 예친왕이 청나라 군대를 이끌고 북경에 입성해서는 자살한 명나라 숭정제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게 하고 명나라 관리들과 청나라 관리들이 함께 사무를 보게 했으며 한자와 만주문자를 공용하게 해 청나라가 명나라 조정을 접수하게 된다. 얼마 후 어린 순치제가 심양에서 북경으로 천도함으로써 청나라의 중원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예친왕은 한족 대신들과 백성들을 회유하기 위해 청나라가 명나라의 뒤를 계승한 정통왕조라는 것을 부각시키는데 정책의 역점을 두었다. 당시 청나라의 영향력은 북경 일대로 제한되어 있어, 이자성이 살아있는 한 중국의 통일은 요원하다고 판단하여 이자성을 계속 추격토록 했다. 결국 쫓기던 이자성이 죽자 농민반란은 평정되었고, 청나라가 계속 다른 한족 장수들을 토벌하는데 오삼계가 가장 앞장을 선다. 
 
▲ 1911년 청나라가 망하고 민국의 들어서자마자 남명 영력제의 순국피난처비를 조성했다.     © 편집부
    
▲ 명 영력제 순국처에 조성된 영력제가 오삼계에게 처형된 모습     ©편집부


이어 남경에서 한족의 남명정권이 성립되나 일 년 만에 무너지고 만다. 남명의 마지막 영력제가 멀리 미얀마까지 도망치자 오삼계가 미얀마정부를 위협해 영력제를 인도받고는 처형함으로써 중원토벌이 끝나게 되고, 40년 후 강희제 때 정성공이 버티던 대만까지 평정되어 전국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룩한 청나라는 먼 남쪽지방을 독자적인 지방정권으로 하는 3명의 번왕을 봉하여 나누어 통치하게 한다. 오삼계는 운남·귀주 지방의 평서왕으로 봉해진다.
 
12년(1673) 강희제가 번왕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하자 위협을 느낀 오삼계가 청나라 왕작과 의관을 벗어던지고는 예전 명나라 갑옷을 입고, 자신이 30년 전에 처형한 영력제의 무덤 앞에서 명나라에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반청의 깃발을 높이 든 오삼계가 순식간에 사천성으로부터 호남성 일대를 점령하자 나머지 번왕들도 이에 호응한다. 이후 오삼계는 주(周)나라를 세우고 스스로 황제위에 올라 연호를 소무(昭武)라 했으나 5개월 후 67세에 갑자기 죽고 만다. 이후 삼번의 난은 평정되고, 청나라는 완전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게 된다.
▲ 중국을 지배한 청나라의 상징 팔기군 군복     © 편집부
 
 
 
동북공정으로 달라진 중국의 평가
 
2000년대에 들어서 중국에서 이민족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역사공정작업이 활발해 짐에 따라, 송나라를 정복한 금나라 역시 중국 역사의 일부로 인정되면서 지금까지의 평가와는 반대로 대항자 악비가 절하되고, 진회는 유연한 외교로 국가를 대환란에서 구한 인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오삼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동북공정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삼계는 한족에게 있어 최고의 민족반역자와 매국노로 낙인찍힌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오삼계에 대한 평가가 180도 달라졌다. 현재의 중국에게 엄청난 땅과 부를 가져다준 장본인인 오삼계를 한족의 영웅으로까지 평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일까?
 
고구리의 후예인 만주족(=여진족) 청나라가 중원을 접수하면서부터 주변에 있던 내몽골, 위구르, 티베트 등에 살던 단군의 후예들이 대청제국의 깃발 아래 하나로 모이게 되어 과거 명나라 영토의 2배가 넘는 땅이 건륭제 때 청나라 영토로 편입된 것이다. 그러던 땅 부자 청나라가 1911년 신해혁명으로 망하고 한족이 주도하는 민국이 형성되자 한족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온 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면서 영토가 명나라 영토의 3배가 된다     © 편집부
  

그러자 단군의 후예들인 티베트와 위구르인들이 한족과는 핏줄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치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국공내전이 끝나고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자 1950년 모택동은 인민해방군으로 티베트를 무력으로 강제 점령해버린다. 이후 빈번히 일어나는 민족독립운동을 중국이 현재 무력으로 강력하게 진압하고 있다. 언제까지 유혈사태가 계속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민족분쟁이 중국정부로서는 최대의 고민거리이다. 어느 한 곳이라도 독립해나가는 순간 중국은 사분오열로 분열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현 중국 땅에 있는 대부분의 민족을 아울렀던 고구리의 역사가 우리의 역사로 있는 한 중국 내 56개 소수민족들을 끌어안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어불성설인 역사왜곡인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중국정부는 '중국 역사를 한족의 역사’로 규정했으나, 지금은 ‘한족만이 아닌 중화족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그 중화족에는 한족은 물론 현재의 중국 땅에 살고 있는 만주족, 티베트족, 위구르족, 몽골족과 조선족이 모두 포함된다고 한다. 속지주의 역사로 혈연관계의 역사를 희석시키고 한 울타리로 묶으려는 술책이라고 하겠다.
 
매국노 민족반역자로 낙인찍었던 남송의 재상 진회와 명나라 장수 오삼계를 새롭게 재평가하는 것을 보면, 현재 중국정부가 안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하겠다. 그 고민은 바로 중국은 원래 역사가 없는 미천한 나라이고, 중국의 역사는 바로 우리 동이족의 역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중국이 동북공정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현재 중국은 북한땅을 중국 영토로 그리고 있다.
 
 
 (원문기사)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1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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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8/19 [14:5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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