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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경유 만리장성은 명백한 ‘가짜 진시황 장성’ (6부)
진시황이 쌓은 장성은 황하변 산서성~하남성 천리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3/11/18 [10:28]
 
백이·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은 우리의 고대사 강역을 밝힘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사유적이다.
특히 유주(幽州)에 속한 요서군(遼西郡)의 위치와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서쪽 기점을 밝혀주기 때문이다. 즉, 고대 중국과 우리와의 경계선을 알려주고 있는 유적이다.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중국정부는 진황도시 노룡현 동네 야산에 팻말들을 박아놓고 그곳이 수양산이라고 관광객들에게 선전해왔다.
 
그러나 2008년 필자가 황하가 꺾어지는 지점인 산서성 서남단에서 백이·숙제의 실제 무덤을 찾음으로써 그것이 모두 허위였음이 명백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고구려의 요동과 요서는 국사교과서에 언급된 것처럼 서만주 요하 부근이 아니라 산서성 남부였으며, 진황도 노룡두에서 시작해 북경 북쪽을 지나 감숙성까지 이어진다는 이른바 만리장성도 진시황이 쌓은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2012년 6월 진시황이 쌓은 장성이 동쪽은 동만주를 관통하고, 서쪽은 위구르의 우루무치까지 이른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와 학계는 이러한 중국의 후안무치한 고무줄 만리장성에 즉각 분노를 표시했지만 이론적으로는 전혀 대항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왜냐하면 현재 국사교과서 이론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이론이나 오십보백보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지 진시황이 쌓았다는 장성의 위치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  2012년 6월 국내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만리장성  

지금의 만리장성, 과연 진시황이 쌓았을까?
 
지금부터 진시황이 쌓은 실제 장성의 위치와 모습을 추적해 봄으로써 중국의 동북공정이 얼마나 허황된 이론인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진시황은 B.C 247년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 31대 왕으로 즉위하였고, B.C 221년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황제가 되었고, B.C 210년 37년간 재위 후 사망하였다.  
 
▲ 원래 산서성 남단에 있던 진장성이 역사왜곡된 경과도     

 
중국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이 장성을 쌓기 시작한 때는 통일 후인 진시황 34년(B.C 214)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떠났던 노생이 돌아와 <천록비결(天籙秘決)>이란 책을 바치며 “도참설에 이르기를 진나라를 망치는 자는 호입니다(亡秦者胡也)”라고 아뢰자, 진시황이 이 호(胡)를 북쪽 흉노인 동호(東胡)로 알고 B.C 214년 장수 몽념에게 장성 보강을 명하게 된다.
 
그리고 진시황은 B.C 210년에 죽고 둘째 아들 호해(胡亥)가 형을 죽이고 등극하게 되어 장성 축조가 중단되고 만다. B.C 214년부터 쌓기 시작한 장성이 4년 만에 서쪽 우루무치에서 동만주까지 일만 리나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로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참고로 위 ‘亡秦者胡也’의 胡는 흉노가 아니라 바로 진시황의 둘째 아들 胡亥였던 것이다.
 
중국 자료에 의하면 진시황은 새로운 장성을 축조한 것이 아니라, 전국시대 연(燕)나라 장성과 제(齊)나라 장성을 수축(修築)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연장성에 대해서는 <사기 흉노전>에 “연나라 장수 진개가 동호를 격파하니 동호가 천 여리를 물러났다. 연나라가 장성을 쌓으니 조양에서 양평까지이다.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을 동호로부터 지켰다(燕将秦开袭破东胡,东胡却千余里,燕亦筑长城,自造阳至襄平,置上谷、渔阳、右北平、辽西、辽东郡以拒胡)”라는 기록이 있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위에 언급된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은 모두 유주(幽州)에 속한 지명으로 지금의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일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장성의 서쪽 조양(造陽)은 상곡군에 속하고, 동쪽 양평은 다음 자료에서 보듯이 요동군(遼東郡)에 속한 현임을 알 수 있다. (秦始皇二十六年(公元前221年),全国分为36郡,辽东郡仍沿袭燕国郡制,郡府设在襄平县。) 따라서 연나라 장수 진개가 쌓은 연장성은 산서성 남부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진시황이 쌓았다는 장성도 그 일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진개가 쌓은 연장성은 산서성 남부인 유주를 지키기 위한 장성    

 
진시황이 쌓은 장성은 어디인가?
 
<사기 진시황본기> 기록에는 “몽염에게 북쪽에 장성을 쌓게 하여 변방을 잘 지키도록 하고 흉노를 700여리 내쫓았다”라는 기록만 있을 뿐 그 위치나 길이에 대한 언급은 없고, <사기 몽염열전>에 “진시황이 천하를 병합하고 몽염 장군과 30만 명을 보내 북쪽 융적을 몰아내고 하남을 빼앗아 장성을 쌓았다. 서쪽 임조에서 일어나 동쪽은 요동까지이다. 길이가 만 여리이다.(《史记秦纪》“始皇并天下,使蒙恬将三十万众,北逐戎狄,收河南,筑长城,因地形开附制塞,起临洮至辽东,处袤万余里,)”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빼앗은 하남(河南)이란 황하 북부 하남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 중국역사지리부도에 언급된 진장성은 서쪽은 감숙성 룽서에서부터 동쪽 산해관까지였다가 동북공정을 하면서 청천강까지 들어와 있다.    
▲ 장성의 시작인 산해관 현판은 서쪽을 보고 있고, 봉화대는 장성 동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각산장성은 서쪽에 있던 나라가 쌓은 장성이 아니다.  
 
 
진장성의 서쪽 끝 임조는 어디일까?
 
위 기록에서의 진장성의 서쪽 끝인 임조현에 대한 역사 연혁은 “적도: 진나라 때 지금의 감숙성 임조에 적도현을 설치해 롱서군에서 다스렸다. 서진 말기에 적도군의 치소로 했다. 당나라 때 적도군 임주, 송 때는 희주, 청 건륭 때 개주, 민국 초기에 적도현으로 했다. 후에 임조로 바꿨다. 1929년 적도현을 임조현으로 바꿨다” 즉, 임조 = 적도군(현) = 롱서군인 것이다.
 
▲ 산서성 남단 황하변에 있는 중조산 북쪽 기슭에 있는 진시황 때 쌓은 장성.   
 

그렇다면 진장성의 서단(西端)인 롱서(陇西)는 과연 어디일까? <사기 권61 백이열전>에 대한 후대 학자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정의 조대가주 유통부>에 전하길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은 롱서의 머리에 있다(正義曹大家注幽通賦云:夷齊餓於首陽山,在隴西首)”, 같은 기록에 전하길 “롱서 수양현으로 지금의 롱서에 수양산이 있다(隴西首陽縣是也。今隴西亦有首陽山)”는 기록이 있으며,
 
2) <집해>에서 마융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 포판의 화산 북쪽에 있고, 황하가 꺾이는 곳에 있다. (集解馬融曰:首陽山在河東蒲阪華山之北,河曲之中)”와
 
3) 또 백이의 노래에서 전하길 “그들은 서산에 올랐는데, 서산은 롱서와 가까운 곳이다. (而《伯夷歌》云。登彼西山。則當隴西者近爲是也)"는 기록이 있다.
 
위 세 기록에서 보듯이, 황하가 동쪽으로 꺾이는 코너인 산서성 서남단에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이 있고, 그곳이 바로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서쪽 끝인 롱서(=임조=적조)인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서 백이·숙제의 무덤이 발견됨으로써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유물적 증거와 사서의 기록으로 명확히 입증되었다 할 것이다.
 
▲ 백이.숙제의 무덤이 발견된 산서성 서남단 호아하 굴곡지점에 있는 수양이라는 지명     © 편집부
 
▲ 산서성 황하 꺾이는 지점에서 발견된 백이·숙제의 무덤     © 편집부
 

진장성의 동쪽은 맹강녀곡장성
 
진장성의 동쪽 끝은 중국 4대 민화 중의 하나인 맹강녀(孟姜女)의 설화가 있는 황하북부 하남성 위휘현 일대이다. 그곳이 바로 <사기 몽염열전>에 언급된 당시 요동(遼東)인 것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맹강녀하’라는 하천이 있으며 맹강녀 사당이 존재한다. 참고로 위휘현은 낚시로 유명한 강태공의 제나라가 있던 곳이다.
 
 
▲ 진시황장성과 관련있는 맹강녀 설화.     © 편집부
맹강녀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맹강녀는 신혼 첫날밤 장성 축조장에 끌려간 남편을 찾아갔다가 장성 안쪽에서 남편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대성통곡을 하고 만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진시황이 울고 있는 맹강녀를 보고는 그 미모에 반해 청혼을 하고 맹강녀는 진시황에게 탈상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한다. 탈상이 끝나자 맹강녀는 높은 바위에 올라가 진시황의 폭정을 성토하고는 떨어져 죽는다.
 
이후 맹강녀는 절개를 지킨 열녀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는 민화로 그 장성이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진장성의 동단인 맹강녀곡장성(孟姜女哭長城)이다.  
▲ 맹강녀와 아무 관련 없는 하북성 동단 진황도에 서있는 맹강녀사당의 석상은 역사조작용.     © 편집부
 
▲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맹강녀장성이 하북성 진황도로 옮겨진 지도.      © 편집부
 
▲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맹강녀 관련 표지석     © 편집부
 
▲ 황하 북부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진짜 맹강녀 사당   

 
중국정부는 원래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맹강녀 사당을 하북성 동쪽 끝 진황도시에 복사해 옮겨놓고는 그곳에 있는 장성을 진시황 때 쌓은 장성이라는 엄청난 역사왜곡을 자행해왔다. 따라서 동쪽 진황도 산해관부터 시작되어 북경 북쪽을 지나 서쪽 감숙성 자위관까지 가는 장성은 진시황이 쌓은 장성이 아님이 명백해졌다. 
 
즉, 진시황 때 쌓은 진장성은 산서성 서남단 황하변 수양산에서 시작되어 중조산(고대 갈석산) 북쪽 기슭을 따라 축성되었으며, 동쪽으로 북부 하남성 위휘시까지 이어가는 길이 약 천리의 장성으로 당시 중국과 우리와의 국경선이었다. 당시 진시황이 쌓은 장성 북쪽 산서성에는 고구리의 전신인 북부여의 해모수단군이 통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장성 유적은 누가 쌓은 장성일까?     © 편집부
▲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장성은 누가 쌓은 장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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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11/18 [10:28]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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