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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는 배달민족으로 단군의 후손, 간도와 같은 운명
티베트는 치우천왕 이래로 우리와 같은 민족으로 형제국
 
편집부 기사입력  2012/05/30 [16:20]
중국의 서남쪽 서장자치구(티베트)에서 독립 쟁취를 위한 유혈시위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티베트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지역적으로 인도와 매우 가까우면서도 전혀 인도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마치 우리와 얼굴이 많이 닮아 보인다. 티베트의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도 남방 계통의 얼굴이 아니다. 왜 그럴까?

현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배달국의 치우천자와도 관련이 있다. 티베트어로 ‘챠우타라’란 말은 치우를 섬기면 좋은 운이 온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상도 발음과 꼭같은 단어가 꽤 있다. 할배, 할매, 정지(부엌), 밥무운나, 밥무우라 등이 있다.

서경보스님의 설에 따르면 치우천황은 황제(黃帝)의 사후에도 80년이나 생존하였고, 이후 티베트의 장당경에 도읍하여 장장 8백년 동안 왕국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여기서 장당경이 티베트(서장)을 가리킨다는 설이다. 삼국유사에서 “단군왕검이 최초 평양(대동강 평양이 아님)에 도읍을 정했다가 백악산 아사달로 도읍을 옮기고, 이후 (생략)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로 돌아와 산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볼 때 치우천황시대부터 장당경에 무언가 우리와 관련이 있는 국가가 있었다고 봄이 이치에 맞는 듯하다.

티베트는 마한.변한.진한 이라는 삼한 이후 생긴 후삼한의 일부가 중원의 서남쪽으로 흘러들어가 터전을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또 일부는 월지와 함께 파미르고원을 넘어 서쪽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에 마한이 초기에만 등장하고 뒤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월지족은 파미르고원을 넘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일대에서 대월지국으로 발전하며, 대월지국은 나중에 쿠샨왕조로 발전하여 남으로 인도의 북부에까지 그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지방에서 사용하는 문자가 가림토 문자와 비슷한 것도 월지의 영향 때문으로 보인다.
 
▲ 한국을 형제국이라 말한 티베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 
▲ 티베트어는우리 경상 말과 비슷한 다너가 많다.     ©


그리고 티베트는 토곡혼(吐谷渾)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이다. 토곡혼이란 4세기 초 중국의 청해(菁) 지방에 있던 나라이름으로 왕족은 선비(鮮)족으로, 5호16국 시대부터 세력을 떨쳤으나 뒤에 북위(北)ㆍ수()ㆍ당()의 침략을 받고 663년에 토번에게 멸망당한 나라였다. 원래 선비족은 고구려와 비슷한 종족이라, 토곡혼은 대연방제국인 고구리의 연방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은 선비족의 나라라 하고 있다.

즉 토곡혼(티베트)은 단군왕검의 후예인 선비족들이 세운 나라였다. 선비는 조선비왕(朝鮮卑王)의 준말로 단군왕검을 가르키는 말로 즉 단군족이라는 서도 있다. 배달국 18대 거불환환웅의 아들인 단군왕검이 14세 때 비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그 후 단군조선에서도 우현왕(右賢王) 좌현왕(左賢王)이라 하여 계속해서 비왕제도를 두었는데 이 제도를 단군의 후예인 흉노도 그대로 답습하였다.

선비족은 동이족 즉 단군왕검의 후예로 중국역사에 많이 등장한다. 선비족의 모용씨는 전연·후연·서연·남연·토곡혼(吐谷渾), 걸복씨는 서진, 탁발씨는 대국(북위의 전신), 독발씨는 남량을 세웠다. 그 뒤의 북조(北朝)인 북위.동위.서위.북제.북주 및 수·당나라 왕조는 선비계이다. 특히 통일왕조로는 고구려와 전쟁을 일으킨 수나라와 당나라가 가장 유명하다. 중원이 분열되었을 때에는 송나라와 남북조를 이루었던 북위가 가장 강성했다.

수양제와 당태종이 중원통일 후 천하의 패권을 놓고 고구리와 한 판 승부를 벌인 이유는 같은 계통의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수.당이 한족의 나라였다면 그런 무모한 명분싸움인 패권다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양제와 당태종은 하늘아래 두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논리로, 단군조선의 적장자(嫡長子)인 고구리에게 도전하여 천하의 주인이 과연 누군지를 밝히고자 했으나, 둘 다 무참히 패해 결국 수나라는 멸망하고 당태종은 장안에서 연개소문에게 항복한다. 그리고 당태종은 죽으면서 다시는 고구리를 정벌치 말라는 유언까지 남기게 된다.

북방기마민족에게는 형수수취제로 부친/형님이 죽으면 아들/동생이 서모(庶母)/형수를 취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은 한족에게는 없었던 풍습으로 수많은 한족 신하들이 그 부당함을 아뢰었을 것이나, 황실 혈통의 풍습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으로 당시 큰 문제가 아니었다.
 
아래의 형수수취제는 한족의 왕조에서는 볼 수 없었다.
1) 수양제 양광은 아버지 수문제를 살해한 후 가장 먼저 선황의 후궁이었던 선화부인을 취해, 중국 사서에 “그날 밤 태자는 윗사람을 범했다(其夜太子蒸) ”는 기록을 남겼다.
2) 당태종 이세민은 정부인인 문덕황후가 죽은 뒤, 동생의 정처였던 양씨(楊氏)를 황후로 세우고 싶었으나 대신(한족)들의 반대에 부딪혀 단념하고 말았다.
3) 당고종은 아버지인 당태종 이세민이 총애했던 궁녀인 무미랑(武媚娘: 나중에 측천무후)을 거두어 결국 황후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신들이 반대하자, 고구려를 망하게 한 이적장군이 나서 “이 문제는 폐하의 집안일이므로 굳이 대신들에게 하문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4) 당현종은 며느리인 수왕비(壽王妃) 태진을 불러들여 자신의 애첩으로 삼고, 귀비란 첩지를 내린다. 이 수왕비가 그 유명한 양귀비이다.
5) 조선에 병자호란을 일으켰던 청태종이 죽자, 이복동생인 예친왕 도르곤은 태종의 왕비였던 형수(옛 애인)와 결혼해 순치제의 부황(父皇)이 된다.

그리고 광개토태왕 비문에 적혀있기를, “영락8년(398) 무술년에 일부 군대를 토곡에 보내 관찰 순시토록 하였다. 그 기회에 막사라성과 가태라곡의 남녀 3백여명을 습격하여 잡아왔으며, 이때부터 식신은 조공하고 정사를 보고하게 되었다.” (八年戊戌 敎遣偏師觀帛愼土谷因便抄得莫斯羅城加太羅谷 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朝貢論事) 이 내용은 광개토태왕 시절 고구려의 영토가 티베트까지 미쳤다는 말이다. 당시 백제(산동성 일대).신라(안휘성,절강성 일대).왜(복건성,광동성 일대)를 정벌한 태왕은 대륙의 서남쪽인 티베트까지 순시하게 한다.

신강성에 인접한 감숙성의 돈황(敦湟)은 석굴사원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곳에 있는 벽화는 고구려 벽화와 닮은 점이 너무나 많아 오랫동안 고구려와의 연관성이 제기되어 왔다. 이 고구려 풍의 벽화들은 고구려인들이 와서 직접 그렸거나, 고구려와 같은 계열인 후삼한(後三韓)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연방대제국 고구려는 종족(宗族)으로서 이들과 분명 뭔가 밀접한 교류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광개토태왕 때 감숙성과 토곡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벽화는 광개토태왕 때 그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 돈황석굴 벽화. 상투가 보이고 오우관이 보이고, 성벽이 고구려 양식인 치양식이다. 광개토태왕 시 그린게 아닐까?

이렇듯 티베트의 조상은 우리 민족의 조상과 같다. 즉 다같이 단군의 후손인 것이다. 그래서 티베트 국민들의 모습이 우리와 아주 유사해 보이고,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라마도 “한국은 티베트와 형제국이다.”라고 말한 것은 다 역사적으로 이유가 있어서임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티베트는 우리와 비슷한 때에 중국에게 영토를 빼앗긴 아픈 역사가 있는 것도 동일하다. 청나라 강건성세(康乾盛世: 강희제~건륭제) 때 현 중국의 영토가 확정되었는데, 현 영토는 명나라(한족) 영토의 2배가 넘는 큰 땅이었다. 만주와 신강, 티베트, 내몽고, 대만이 전부 청나라의 영토로 들어간다.

조선 조정은 청나라의 전신인 후금을 미개한 여진족으로만 생각하여, 임진왜란 때 모국에 기병 3만을 보내겠다는 누루하치의 제안을 거절하고 명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결국 병자호란 때 인조는 동족(同族)인 청태종에게 삼전도에서 항복을 하게 된다. 조선은 말갈.거란.여진족이 오랑캐란 이유로 요.금.청의 역사를 우리 역사로 편입을 안 시켰고, 대진국(발해)까지 우리 역사의 울타리 밖에 놓는 우를 범한다. 그러나 사실 청나라는 엄밀히 말해 배달국-->고조선-->대부여-->북부여-->고구려-->대진국-->요나라-->금나라-->청나라로 이어지는 계보가 단군조선의 적장자인 것이다.

여하튼 청나라 건륭제 때 요녕성(청나라 발원지)이 청의 영토로 편입되고, 티베트도 영토를 청나라에게 빼앗기게 된다. 우리는 나머지 북방 땅에서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와 러시아간에 맺어진 북경조약에 의해 연해주를 잃게 되며,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의 외교권을 강제적으로 박탈한 일제는 1909년 청나라와 간도협약을 맺어 청에게 간도의 영유권을 넘기는 대신 다른 경제적 이득을 챙기게 된다.
 
▲ 티베트는 중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청해성과 함께 대대로 조선과 고구리의 연방이었다.     © 편집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이 성립되자 모택동은 인민해방군을 보내 간도를 무력으로 점령해 버린다. 당시 남북한은 각각의 정부수립 후 정신이 없을 때였다. 그리고는 세월이 지나 을사늑약이 무력을 동원한 불법이라는 것이 밝혀져 무효화되었고, 일본도 간도협약을 무효로 인정했는데도 정부는 중국과의 외교상의 문제로 아직까지 간도협약 무효화 신청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보복이 두려워 안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티베트는 1913년 달라이 라마 13세가 티베트에 남아있던 청나라 군대를 내쫓고 티베트의 독립을 선언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독립을 재확인했으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세계의 이목이 온통 한반도로 집중되어 있을 때 중국은 인민해방군을 보내 티베트를 무력으로 점령해 버린다.
1959년 중국군대가 티베트 민중을 무력으로 진압해 유혈사태가 발생한다. 결국 티베트인이 대학살되는 독립의거가 일어나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1987년 승려들이 주동이 되어 59년 독립의거 이후 최대 규모의 독립 시위가 발생하였는데 당시 티베트 당서기였던 후진타오주석이 주동이 되어 군경이 동원되어 유혈사태가 또 벌어진다. (참고로 1989년 달라이 라마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이후 20년 만에 2008년 북경올림픽을 계기로 티베트의 독립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티베트 인들은 다시 일어난 적이 있다. 언젠가는 중국에게 돌려받아야 할 티베트의 독립과 영토가 아니겠는가! 티베트 독립의거의 성공으로 지금까지 중국이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불법 점령한 영토를 반환하게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는 이번 티베트의 거룩한 의거가 성공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소련 연방의 붕괴로 세계 참피온 미국의 유일한 맞상대인 중국이 자꾸 비대해지는 것을 미국도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자국의 변변한 역사도 없던 중국인지라 남(우리)의 역사를 빼앗아 자기네 역사로 만들고, 힘없는 작은 나라의 영토를 무력으로 빼앗아 자기네 영토로 만드는 파렴치한이 바로 중국인 것이다. 55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억지로 타 민족을 중화라는 하나의 울타리로 싸고있는 듯한 모습이다. 티베트와 같은 자치구의 독립시위는 항시 중국의 시한폭탄인 것이다.

이번에 시작한 티베트의 독립시위는 반드시 성공하여 무력으로 약자를 짓밟는 중국에게 반드시 본 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티베트와 같은 종족(宗族)인 우리는 중국에게 간도 땅을 비슷한 시기에 빼앗겼으나 아직 정부 차원에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다. 티베트의 의거가 성공해야 우리 정부도 뭔가를 느끼고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부는 우리의 조상이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찾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참 역사교육이 더 시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민족정신 함양이 먼저 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 없고 민족정신 없는 학생들을 길러내면 앞으로 이 나라에는 애국자도 나오지 않을 것이며, 안중근장군과 같이 살신성인하여 겨레를 구하려는 우국지사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다들 앞으로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빠지면 친미파가 되어 힘없는 백성들을 억압하든가, 미국으로 도망가 미국의 광대로 미국에서 생활하려고 할 것이다.  티베트는 비록 나라와 땅은 잃었으나 아직 민족정신이 살아있어 지금 독립투쟁에 목숨을 바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만일 티베트와 같은 상황이라면 앞으로 누가 있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 미국에 있는 중국영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티베트인. 과연 우리나라가 같은 상황이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위를 할까? 영어 몰입교육으로 주체성을 상실한 학생들이 앞으로 미국 땅에서 이렇게 시위를 할까? 아니면 성조기를 흔들며 america! please come to korea 할까?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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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5/30 [16:20]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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