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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식민지로 둔갑한 11살짜리 낙랑군 (5부)
낙랑국 땅을 공격해 한나라 군현으로 삼았다가 11년 후 소멸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02/12 [15:25]
호동왕자와의 사랑에 눈먼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음으로써, 역년 227년의 낙랑국은 서기 37년 고구리 대무신왕에게 완전히 멸망당한다. 이 때 중국에서는 전한을 무너뜨린 왕망의 신나라(9~25)가 망하고, 광무제 유수가 한나라를 재건해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이를 역사적으로 후한(後漢)이라 하며, 도읍을 동쪽 낙양으로 옮겼다하여 동한(東漢)이라고도 부른다. 전한의 무제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때였다.
 
고구리 대무신왕은 비록 낙랑국을 멸망시키기는 했으나 그 땅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대무신왕 마지막 해인 서기 44년 후한의 광무제가 군사를 보내 해(황하)를 건너 낙랑을 쳐서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만들어 살수 이남은 한나라에 속하게 된다. 즉, 예전의 낙랑국 땅이 7년 후 한나라 식민지 낙랑군으로 된 것이었다.
 
여기서의 살수 이남은 산서성 남부 일대 즉 유주(幽州)를 말하는 것이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유주는 요동, 요서, 우북평, 상곡, 어양, 발해, 대, 탁, 현토, 낙랑 등 10개 군이 속한 행정구역이다. 이미 유주의 위치에 대해서는 요서군의 상징인 백이·숙제의 무덤이 산서성 동남단 황하가 꺾이는 곳에서 발견되었고, 낙랑군에 속한 패수현은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시 일대라고 설명한 바 있다.  
 
▲ 산서성 서남단 황하 굴곡지점에서 발견된 요서군의 상징 백이·숙제의 무덤     © 편집부
▲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시를 흐르는 패수(취수)는 위만이 건넌 강으로 낙랑군의 상징     © 편집부
 
 
그 이후 대무신왕의 아들인 모본왕 2년(49) “한나라의 북평, 상곡, 태원, 어양을 습격했는데, 한나라 요동태수 채동이 은혜와 신의로 대하므로 다시 화친했다”라는 기록이 있어 선제 대무신왕이 잃어버린 땅을 회복하려다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4년 후인 서기 53년 폭군 모본왕은 시해당하고, 유리명왕의 손자인 태조대왕이 7살의 어린 나이로 등극하고 태후가 섭정을 하게 된다. 
 
태조대왕 3년(55년)에 “요서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병사의 침입에 대비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구체적인 지명이 생략되어 있다. 요서 10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태백일사>가 <조대기>를 인용하여 정확히 밝혀주고 있다. 즉 당시 이 지역은 고구리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 성을 쌓은 것으로 이미 한나라 땅이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다.
 
위에서의 요택은 고구리 침공 시 수양제가 운하를 만들었고 당태종이 흙다리를 만든 곳으로 황하와 심수 사이의 있는 200리 늪지대이다. 이는 <수서 양제기>에 “하북 여러 군의 남녀 백여만을 동원해 영제거(수로)를 개통하였다. 심수의 물을 끌어 남으로 황하에 다다르게 하여 북쪽이 탁군과 통했다”라는 기록이 입증해준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의 요택에 대한 아래 설명을 보면 그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있다.
(번역) 소택배수 : 광령 이동에서 요하까지 있는 큰 웅덩이 소택지로 옛날에 요택이라 불렀다. 비가 오면 진흙탕이 맑아지고, 요택 내에는 요양하와 유하 등 여러 지류가 있다. 수·당나라의 고구려 정벌 때 임시로 교량도로를 수축했다. 동쪽은 해성현에서 시작하여 서쪽은 광령까지로 200여리이다. (이하 생략)  
(원문) 沼泽排水 : 自广宁以东至辽河有大片低洼沼泽地,古称辽泽,遇雨泥泞,泽内有绕阳河及柳河等多条支流。隋唐东征辽东都临时大力修筑桥梁道路。明代沿泽之南路开河名路河,东起海城县境,西至广宁,长200余里,后缩短到170里,用以排泽水,运粮"287;,防边疆,堤岸作为陆路,至明末淤废。清代屡次修沈阳至广宁道路百余里
 
위에서의 ‘심수의 물길을 끌어 남으로 황하에 연결시켰다’는 기록으로 보아 엄청난 길이의 대운하로 알려진 수양제가 만든 영제거는 심수의 남쪽과 황하 사이에 있던 요택을 지나가기 위해 만든 작은 수로였던 것이다. 큰 강인 심수와 바다와도 같은 황하 사이에 있는 땅은 당연히 습지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 일대에는 아래 현대지도에서 보듯이 ‘황하습지(黃河濕地)’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요서 10성의 위치도] 안시(安市)는 개평 동북 70리, 건안은 안시의 남쪽 70리, 석성은 건안의 서쪽 30리, 건흥은 난하의 서쪽, 요동(遼東)은 창려의 남쪽, 풍성은 안시의 서북 100리, 한성은 풍성의 남쪽 200리, 옥전보는 한성의 서남쪽 60리, 택성은 요택의 서남쪽 50리, 요택(遼澤)은 황하 북안 왼쪽.     © 편집부
▲ 수양제와 당태종이 고구리를 침공하면서 건넌 요택(황하습지)와 인근 주요지역의 위치

 
또한 아래 역사연혁 설명에서 보듯이 해성현은 낙랑군에 속했으므로 역시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시 부근 어딘가로 추정될 수밖에 없다.
(번역) 해성현 : 주와 진나라 때는 조선(현)에 속했으며, 한나라 때 현토군에 속했고, 후에 바뀌어 낙랑군에 속해 동한 때 도위를 설치한 이래로 옥저에 봉해진다. 위나라 때는 모주에 속했으며, 진과 수나라 때는 고명려, 당나라 때 평고옥을 개주에 속했고, 발해로 들어가서는 남해부로 했으며, 요 때 해주남해군을 설치했다. 금 때 등주로 고쳤으며, 원 때는 요양로에 속했고, 명 때 소주위를 설치해 요동도지혼사사에 예속시켰고, 청 순치제 때 해성현을 설치해 요양부에 속하게 했다. 봉천부로 바꾸어 민국 때 요녕성 요심도에 속하게 했다. (주: 20세기 민국 때 해성현이 요녕성으로 지명이 이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海城县 : 周秦属朝鲜,汉属玄菟,后改属乐浪,东汉置都尉,以封沃沮,魏属牟州,晋及隋属高名骊,唐平高玉,。属盖州,入渤海为南海府,辽置海州南海军。金改澄州,元属辽阳路,明置少州卫,隶辽东都指挥使司,清顺治间置海城县,属辽阳府,寻改属奉天府,民国因之,属辽宁省辽沈道。清置,详海原县条。
 
▲ 옥저, 예, 맥, 해성, 해주 등이 역사왜곡을 위해 제각기 지명이 이동된다.     © 편집부
 
 
이렇듯 낙랑군은 우리의 낙랑국이 멸망한 후 겨우 11년간 잠시 존재했다가 고구리 태조대왕 때 사라졌던 한나라 군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고(班固, 32~92)라는 학자가 <한서>를 쓰면서 B.C 108년 한사군전쟁 이후 낙랑군이 설치되어 계속 존재했다고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반고는 <사기>에 있는 “이로써 조선을 평정하고 사군으로 했다. (항복한 조선의 5대신을) 홰청·적저·평주·기·온양후로 삼았다”라는 기록을 “마침내 조선을 멸해 낙랑·현토·임둔·진번으로 했다” 즉 조선을 평정했다는 것이 멸망(滅)시킨 것으로 바꾸며, 위 홰청·적저·평주·기·온양을 낙랑·현토·임둔·진번으로 둔갑시키면서 조선5군의 제후들의 이름까지 모두 삭제해버렸다. 이 기록을 후세학자들이 계속 인용하다보니 한반도에 한사군이 400년 넘게 존재했다는 괴상한 역사이론이 굳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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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2/12 [15:2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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