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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에서 요동으로 피난 가는 김씨 집안 (3부)
친족 왕망이 죽고 후한이 서자 김씨들이 피난간 곳은?
 
성훈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03/15 [12:33]
한(漢)나라를 무너뜨리고 신(新)나라를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인 왕망(王莽)이 원래 김씨였다는 사실은 <한서 권68 곽광·김일제전>에서 김일제의 가계도에 대해 설명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김당의 증조부 김일제는 아들 절후 김상으로 전해지고, 김흠의 조부 김안상은 아들 이후 김상으로 전해지고, 모두 아들이 죽어 나라가 끊기자 왕망이 김흠을 봉하고 김당이 그 임금을 받들었다. 김당의 모친 남씨는 곧 왕망의 어머니로 임금과 같은 배에서 생산된 동생이라는 공이 드러난다. 김당이 남대행을 태부인으로 올렸다. (当曾祖父日磾传子节侯赏,而钦祖父安上传子夷侯常,皆亡子,国绝,故莽封钦、当奉其后。当母南即莽母功显君同产弟也。当上南大行为太夫人。)”
 
중국의 사가들은 왕망이 흉노족 출신인 김일제의 후예라는 역사적 사실을 감추기 위해 김씨가 아닌 왕씨로 적었던 것이다. 이렇듯 왕망이 원래 김씨였기 때문에 당연히 친족인 김씨들이 신나라 조정에서 요직을 맡았음은 당연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나라는 제도개혁의 실패와 황하가 3차례나 범람하는 등 자연재해로 인해 전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와 한나라 왕족인 유씨와 호족들의 저항에 부딪혀 꿈을 펼치지 못하고 15년 만에 망하게 된다.
 
1954년 서안에서 발견된 ‘대당고김씨부인묘명’에 언급된 “한나라가 덕을 드러내 보이지 않아 난리가 나서 괴로움을 겪게 되자, 곡식을 싸들고 나라를 떠나 난을 피해 멀리 피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집안은 요동(遼東)에 숨어 살게 되었다” 라는 그 난리란 바로 왕망이 봉기군에게 죽임을 당해 신나라가 망하고 후한이 성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난리였다.
 
▲ 김씨의 시조 김일제 가계도. 왕망은 김일제의 증손자로 보인다. 이상하게 유독 김당의 부친 이름만 미상이다.

신나라 조정에서 요직을 맡고 있던 김씨들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요동(遼東)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당시 요동 땅은 한나라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외국, 즉 당시 서라벌 땅으로 바로 김씨들의 조상인 휴도왕의 고향이기도 한 곳이다. 아무리 위급하기로서니 자신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으로 무작정 피난갈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김씨 집안이 피신한 요동은 과연 어디였을까?
 
여기서 다시 김일제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한나라 무제 때 곽거병이란 장수가 흉노를 롱서(隴西)에서 대파하자 화가 난 흉노의 선우가 휴도왕과 혼사왕에게 패전의 책임을 물으려 했다. 혼사왕은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끼고는 휴도왕에게 같이 한나라에 투항하자고 제의했으나 휴도왕이 이에 반대하자, 휴도왕을 죽이고는 혼자 투항하면서 휴도왕의 부인과 두 아들인 김일제와 동생 김윤을 곽거병에게 포로로 넘겨줘 김일제가 서안으로 오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흉노는 조선대연방을 구성하는 주 종족으로, 중국은 나라이름 대신에 종족 이름을 기술해 마치 당시 북방에는 나라가 없고 여러 종족들이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따라서 흉노의 휴도왕이라기보다는 북부여의 제후 휴도왕이 옳을 것이며, 지역적으로 보았을 때 흉노족이라기보다는 삼한 중 마한(마조선)에 속한 제후였을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휴도왕이 곽거병에게 참패한 롱서는 진시황이 쌓은 장성의 서쪽 기점으로 백이·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이 있는 곳이다. 백이·숙제에 관한 기록을 보기로 한다.
 
1) <정의 조대가주 유통부>에 전하길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은 롱서의 머리에 있다(正義曹大家注幽通賦云:夷齊餓於首陽山,在隴西首)”, 같은 기록에 전하길 “롱서 수양현으로 지금의 롱서에 수양산이 있다(隴西首陽縣是也。今隴西亦有首陽山)”는 기록이 있으며,
 
2) <집해>에서 마융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 포판의 화산 북쪽에 있고, 황하가 꺾이는 곳에 있다. (集解馬融曰:首陽山在河東蒲阪華山之北,河曲之中)”
 
위 기록에서 보듯이 백이·숙제가 굶어 죽은 수양산이 있는 곳이 바로 롱서인 것이다. 황하가 남쪽으로 흐르다 동쪽으로 꺾이는 산서성 서남단에서 백이·숙제의 실제무덤이 발견됨으로써 롱서의 위치가 명확하게 밝혀졌다. 흉노의 휴도왕이 이곳에서 곽거병에게 여러 차례 패했다는 것은 바로 여기서 멀지않은 곳에 당시 휴도왕의 본거지가 있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 대청광여도에 산서성 서남단 황하굴곡지점에 그려진 백이·숙제의 실제 무덤     © 편집부
 
▲ 유주는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일대. 백이숙제의 무덤 있는 곳이 요서군이다.     © 편집부
 

또한 김씨 집안이 피난간 요동이 어디인지는 <한서지리지>에서 유주(幽州)를 설명한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유주에는 요동군과 요서군 외에 낙랑군과 현토군, 상곡군, 우북평군, 어양군, 발해군, 탁군, 대군의 10개 군이 속해 있는데, 요서군은 백이·숙제의 나라인 고죽국성이 있는 산서성 남부 운성시의 서부에 있는 영제시 일대이다. 따라서 요서군의 동쪽에 있는 요동군은 산서성 남부 운성시와 임분시 일대일 수밖에 없다.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유주에 속한다)。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현)。莽曰令氏亭。肥如,玄水东入濡水。濡水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絫。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당시 김씨들은 자신들의 조상인 휴도왕과 깊은 관련이 있는 요동(遼東)에 있던 서라벌로 피난했던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김씨들이 섬서성 서안에서 신라의 천년 고도인 한반도 경주까지 피난 온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의 교통사정으로 볼 때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어불성설의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의 조상이 흉노 출신 김일제라는 사실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역사의 진실대로 최초 신라를 산서성 임분에다 놓고 보면 김일제에 관한 스토리가 기가 막히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설명이 된다 하겠다.
 
▲ 김씨들이 피난간 곳은 한반도가 아닌 옛 조선 땅 요동     © 편집부
 
 
신나라가 망하고 후한이 성립되는 때가 A.D 23년으로 서나벌(신라)의 2대 남해차차웅 20년이다. <삼국사기>에 “20년 가을 태백성(太白星)이 태미성(太微星)의 위치로 들어갔다. 21년 9월 왕이 죽으니 사능원에 장사지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뭔가 심상찮은 일이 발생했음을 암시해주고 있다.
 
신라 문무왕비와 서안 김씨부인의 비문에서 공히 자신들의 조상은 김일제라고 밝혔다. 따라서 중국 김씨와 신라 김씨는 같은 조상의 후손인 것이다. 1998년 중국 언론은 산서성 임분시에 살고 있는 중국 김씨들이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임이 밝혀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왜 중국 김씨들이 산서성에 많이 살고 있고, 종가가 임분시에 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초기 신라가 있던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 산서성 임분시에 사는 김씨 종손이 보관하고 있는 김일제의 화상과 김씨 족보 
▲ 김씨 족보. 신라 김씨는 물론 중국 김씨의 조상도 김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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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3/15 [12:33]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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