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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리치 <천주실의>의 天主(하늘)의 의미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하늘(天)과 상제(上帝)의 비유
 
한눌 한문수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04/08 [09:52]
천주실의(天主實義)를 지은 마테오리치(Matteo Ricci 1552-1610)는 중국에 카톨릭을 뿌리 내린 인물이다. 서방의 현사(賢士)라는 뜻에서 서태(西泰)라 하고, 이름은 마태의 음사인 마두(瑪竇), 성은 리치를 본 떠 리(利)라 하여 중국식 이름을 가졌다. 예수회 소속의 이탈리아인 신부인 그는 선교사로 중국에 와 사서오경을 비롯하여 유교, 불교, 도교를 공부했다.

천주실의는 '천주에 대한 참된 토론'이라는 뜻이며, 첫 머리에 자신이 믿는 '천주님'이 곧 '상제님(天主何? 上帝也)'라고 썼다. 그는 복음전파를 위해 동료였던 루지에리와 함께 삭발을 하고 불교 승려의 옷을 입기도 하였다. 이후 불교 승복을 유학자의 복장으로 바꿔 입었다. 이유는 유교가 중국 종교였기 때문에 많은 존경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홍콩 마카오에 있는 마테오리치의 동상     © 편집부


그는 유교는 단지 철학과 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중국인들에게 보여주면 기독교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중국화' 일환으로 공묘에 가서 제사하고, 개종자들에게 예법에 따라 공자와 조상에게 제사지낼 것을 허락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경전 중의 '天'과 '上帝'를 기독교의 '하느님'으로 비유하였다.

“天”은 단제(檀帝) 이전부터 한민족의 유일 신(神)이었으며, 사상이었다.
<단군세기(檀君世紀)>에서 보듯, 단제의 사상은 학문적 발전과 더불어 도학(道學)과 유교, 불교에 교훈을 주었다. “上帝”는 도가(道家) 용어이고, 서경(書經)에서는 ‘위대하신 상제(上帝)께서 지상의 사람들에게 참된 진리를 내리셨으니...’ 하였다. 시경(詩經)에서도 이 용어를 사용했음을 볼 때 천손민족의 사상이 그대로 대물림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천주사상을 유교에 접목한 이유는 이 시기의 사회 전반적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를 받아드리도록 유도되었기 때문이리라. 이의 실례를 살펴 보자.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지(李贄 자;탁오 1527~1602))는 명(明)나라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였다. 그는 孔子를 신격화하는 황당함과 가소로움을 조소한 유해칭찬(贊劉諧)이란 글이 빌미가 되어 성인을 비난하고, 법을 어겼다는 죄명을 썼다. 그의 저서인 분서(焚書), 속분서 續焚書), 장서(藏書), 속장서(續藏書) 등이 있었으나, 이들 모두 명대에 금서가 되었다.

당시 중국은 宋나라 이후, 朱子의 주석으로 고정된 유교 경전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학문 체계로 孔子는 신성불가침한 권위로 세상을 지배했다. 부처와 老子 보다 훨씬 파괴력을 지닌 공자를 비판하거나, 경전의 진리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마테오리치와 예수회의 이러한 선교방법은 후에 우상숭배 문제로 '전례논쟁'을 일으켜 급기야 청나라 황제와 교황 사이의 권위의 충돌로까지 발전하였다.

1704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중국의 전례를 금하고 1715년 이를 재확인하였고, 강희제(康熙帝)도 이에 대한 상응 조치로 교황의 회칙 수렴을 거부하였다. 이 사건으로 1720년 강희제가 금교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옹정제(雍正帝)와 건륭제(乾隆帝)도 서양선교사에 대해 엄격한 조치를 취했다. 1724년에는 황제가 칙령을 발표, 천문학자를 제외한 모든 서양선교사들을 추방하기에 이른다.

▲ <천주실의.의 내용 ; 천주는 곧 상제     ©편집부

 
조선조에서는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과 이수광(李晬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을 통해서 내용이 요약, 소개되었다. 이후 많은 실학자들이 이에 대해 논평, 반론을 제기했다. 특히 이익(李瀷)의 천주실의발(天主實義跋), 신후담(愼後聃)의 서학변(西學辨), 안정복의 천학고(天學考), 이헌경(李獻慶)의 천학문답(天學問答), 홍정하(洪正河)의 실의증의(實義證疑) 등은 비판적 관점을 취했다. 반면 이벽(李檗), 권철신(權哲身), 정약종(丁若鍾) 등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천주교도가 되기도 했다.

고기(古記)에서 "天"의 계념을 다시 살펴 보자
戊辰唐堯時 來自檀國 至阿斯達檀木之墟 國人 推爲天帝子 混一九桓 神化遠曁 是謂檀君王儉.
무진년(BC 2333) 제요도당 때에 단국으로부터 아사달의 단목의 터에 이르니 온 나라 사람들이 받들어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이에 구한이 하나로 통합하게 되었고 신과 같은 교화가 멀리까지 미치게 되었다. 이를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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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4/08 [09:52]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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