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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에 의해 조작된 백제의 왕도 '부여' (1부)
백제의 도읍이라는 충남 부여는 백제의 도읍일까?
 
편집부 기사입력  2012/06/04 [13:45]
인기가수 주현미가 ‘쌍쌍파티’로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불러 히트한 <백마강>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가사는 아래와 같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님은 임 사랑도 끊었구나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칠백년의 한이 맺힌 물새가 날면
일편단심 목숨 끊은 남치마가 애닯구나
아~ 낙화삼천 몸을 던진 백마강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위 노래는 나당연합군에게 마지막 수도 사비성에서 패망하는 백제를 그린 노래로 가사와 곡조에 애절함이 서려있어 듣는 이로 하여금 항상 심금을 울리게 만든다. 그것이 주현미라는 가수의 노래실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라 잃은 망국의 아픔이 절절이 서려 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과연 백제가 패망한 사비성은 과연 충남 부여가 맞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 부여의 낙화암에서 내려다 본 백마강. 원래 금강의 지류로 부여 근처에 와서 역사적으로 백마강으로 불린다.    


전 문화재청장과 일본인이 답사한 부여는 백제의 왕도인가?

아래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베스트셀러였던 기행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의 329쪽에 나와 있는 문장이다.
(인용) 부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원 세상에, 부여가 이렇게 작을 수 있어요?” 
“아니, 부여가 아직까지 읍이었단 말예요?”
“아직도 관광호텔 하나 없다고요?”

부여는 정말로 작은 읍이다. 인구 3만 명에 시가지라고 해야 사방 1km도 안되는 소읍이다. 그래서 가람 이병도선생도 <낙화암>이라는 기행문에서 부여의 첫 인상을 “이것이 과연 고도(古都) 부여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허망부터 말했다. 부여에 대한 이런 허망은 어쩌면 우리 머리 속에 은연중 들어앉은 부여에 대한 환상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부여는 백제의 123년간 도읍지로 백제 왕도의 유적이 있으리라 기대해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부여에 당도해 보면 왕도의 위용은커녕 조그만 시골 읍내의 퇴락한 풍광뿐인 것이다. (인용 끝)

일본인들은 백제가 일본의 원천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백제의 고도였다고 하는 한성(서울), 웅진(공주), 사비(부여)에 관심이 아주 많다. 그런데 막상 가보면 전부 실망한다. 해양대제국이었던 백제의 고도가 너무 형편없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적 느낌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풍납토성, 공주, 부여가 백제의 왕도로 조작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일제 때인 1937년 일본인이 쓴 기행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인용) “정작 부여에 도착하니 시가지라고 하는 것이 함석 지붕과 나무판자집들이 두 블럭 정도 줄지어 있는 것이 전부였고 그 안쪽으로는 울타리도 없는 초가지붕에 박이 널려있는 평범한 시골 풍경뿐이어서 도저히 자신이 생각한 부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부여를 다녀온 뒤 그가 다시 친구들을 만나서 부여를 가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니 모두들 아직 못 가봤다고 대답해서 또 한 번 놀랐다고 했다. 부여는 이처럼 가보지 않은 자에게는 환상을, 가본 자에게는 실망을 주는 곳으로 어떤 답사객은 “꼭 네다바이 당한 것 같다.”고 까지 했다.”

현재 부여에 가서 백제 유적을 만나는 것은 오직 정림사 오층석탑 하나 뿐이다. 또 있다면 반은 뭉개진 해발 100m의 부소산과 가난한 물줄기의 백마강가의 낙화암이 있을 뿐이다. (중략) 그래서 부여에 오면 우선 부소산에 올라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떨어졌다는 거지같은 전설의 절벽과 백마강을 내려다보고, 고란사에 가서 고란초라도 봐야 부여에 다녀왔다 소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부소산에 오르는 사람은 또다시 부여를 욕되게 말할 지도 모른다. 엉겹결에 보는 낙화암은 그 스케일이 전설에 어림없고, 고란사는 초라한 암자로 절 맛이 전혀 없으며, 부소산성이라는 것은 말이 산성이지 뒷동산 언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모든 게 잔망스러워서 무슨 전설과 역사를 여기다 갖다 붙인 것이 가당치 않다는 생각이 절로 날 것이다. (인용 끝)

유홍준씨의 <나의 문화유적답사기>란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세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문화유적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손에는 꼭 이 책이 들려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 전문가의 눈에도 “부여는 과연 백제의 왕도인가?”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또한 일제 때 백제의 고도라는 부여의 모습은 촌락 그 자체였다는 것을 일본인의 기행문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 그의 느낌은 정확했다. 그의 느낌대로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왕도가 아니다. 일제는 고대 삼국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반도사관을 정착시키기 위해, 백제의 수도로 한성(서울) 웅진(공주) 사비(부여)로 조작하고, 논산을 황산벌이라 했고 금강을 백마강으로 조작해 버렸다. 그리고 노랫말로 허구의 삼천궁녀와 낙화암이라는 전설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백제 부흥운동의 주역인 흑치상지가 활동했던 임존성(任存城), 주류성(周留城)도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조작해 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반도사관의 이론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그대로 전해져, 백제가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 신라는 경상도 일대에 있었다고 국민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생겨난 잘못된 역사이론이 정치인들에게 이용되어 전라도 백제, 경상도 신라로 나뉘어 대립을 하는 지역주의로까지 발전한다. 그런 지역주의가 얼마나 허황되고 창피스럽고 무지한 것인지 사서의 기록을 더듬어 보기로 하자.

▲ 식민사관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부여의 유적지들. 저렇게 좁은 곳이 700년 해양대제국 백제의 수도일까?    


백제가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여러가지 증거들

현 국사책에 나오는 백제의 줄거리는 "백제는 B.C 18년 온조대왕이 하남 위례성(서울)에 개국했고, 전성기인 13대 근초고왕 때 마한을 병합하고 대륙에 진출해 요서/진평에 무역기지를 두었으며, 21대 개로왕 때 한강변에 제방을 쌓았으며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자, 아들 문주왕이 웅진(공주)로 천도하고, 26대 성왕 때 사비(부여)로 천도했다가 660년 나당연합군에게 망했다."고 되어 있다.

물론 교과서 내용은 사실(史實)과 많이 다르다.
백제의 본거지는 중국대륙이었고, 거기서 활동하다가 패망도 역시 거기서 했다.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핵심은 한반도에 있던 백제가 잠시 대륙으로 진출한 건지, 아니면 백제는 아예 대륙에 있었는 지가 논쟁의 관건이다.
 
우선 아래는 백제의 수도가 한반도에 없었다는 증거들이다.
(1) 근초고왕 때 한반도에서 대륙에 진출해 요서(遼西)와 진평(晋平)의 땅을 차지했다고 하는데 그곳은 산서성 남부에 있는 지역이다. 또한 백제의 고토를 대방고지(帶方故地)라고 하는데 그곳은 북부 하남성 일대이다. 그 이유는 대방현은 유주의 낙랑군에 속한 현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있던 백제가 과연 대륙 깊숙히까지 진출할 수 있었을까?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유주에 속한다)。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현)。莽曰令氏亭。肥如(비여),玄水东入濡水。濡水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CB63。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乐浪郡 낙랑군) 武帝元封三年开。莽曰乐鲜。属幽州。户六万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万六千七百四十八。有云鄣。县二十五:朝鲜,讑邯,浿水(패수),水西至增地入海。莽曰乐鲜亭。含资,带水西至带方入海。黏蝉,遂成,增地,莽曰增土。带方(대방),驷望,海冥,莽曰海桓,列口,长岑,屯有,昭明,高部都尉治。镂方,提奚,浑弥,吞列,分黎山,列水所出。西至黏蝉入海,行八百二十里。东暆,不而,东部都尉治。蚕台,华丽,邪头昧,前莫,夫租。

(2) 북위와 5차례 큰 전쟁을 치룬 백제 동성대왕의 무대는 중국대륙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북위의 주력부대는 기병 10만이었는데 그들이 배를 타고 한반도까지 온 기록은 문헌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북위의 1차 도읍인 평성(平城)은 낙양 북쪽에 있는 맹진 부근이며, 백제와의 전쟁 후 국력이 약해져 낙양으로 도읍을 옮긴다.
평음현 : 한나라 때 평음현이 설치되었으며, 응소가 말하기를 “평성의 남쪽에 있다. 옛날에 평음이라 했다.” 진나라 때 폐했다. 지금의 하남성 맹진현 동쪽이다. 삼국 위나라 때 하음으로 바뀌었다. (平阴县: 秋时平阴邑,《左传昭公二十三年》“二师围郊,晋师在平阴,王师在泽邑。”汉置平阴县,应劭曰:“在平城南,故曰平阴。”晋废,故城今河南孟津县东,三国魏改曰河阴。)

(3) 당나라가 한반도에 있는 백제의 본국을 멸하려면 중국 땅에 있는 대륙백제와 먼저 전쟁해야 하는데 그런 기록이 없고, 황해를 건너왔다면 당나라와 해상강국 백제와의 해전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5)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일식기록을 분석한 결과 최적관측지가 발해만으로 나온다. (한반도에서도 부분일식을 볼 수 있기는 하다)
▲ 전 서울대 천문학과 박창범교수가 <삼국사기>의 일식기록을 분석한 도표에 따르면 백제의 최적관측지는 발해만 근처 북경지역으로 나타난다.     ©편집부

(6) 만약 한반도 백제가 본토라면, 본토의 몇 배 크기의 땅을 수백 년간 다스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7) 인구의 역사로 보아도 백제의 수도는 중국대륙에 있어야 합리적이다.
(8) 백제의 8대 성씨가 반도에는 없고 대륙에만 있다.
(9) 그 외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가 많다. (향도,조공,제방,기상,특산물, ...) 
 
▲ 부여 백제박물관에 전시된 내저성 비문. 부여는 내지성이었지 사비성이 아니다.    
위의 나중에 하나하나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지금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성이 한반도에 있었는지 대륙에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부여박물관에 가면 거기서 발견된 비문 탁본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분명 내지성(奈祗城)으로 되어 있다. 이 탁본만 봐도 부여는 사비성이 아니라 내지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시흥시는 관내의 소래(蘇來)포구를 소정방이 왔기 때문에 '소래포구'라 한다고 시민들에게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다.
 
제주도 정방폭포의 이름은 소정방이 제주도에 온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 '정방폭포'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런 어불성설의 이야기는 일제가 지어내 유포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 부여를 흐르는 강이 백마강으로 불리게 된 것은 당나라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하여 나라를 지키고자 호국의 용이 된 무왕을 낚았다는 엉터리 같은 전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소정방이 백말을 미끼로 용을 낚았다는 바위가 백마강에 조룡대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남아있다고 자랑스럽게 떠들고 있다.

참으로 엄청난 무지의 소치라 아니할 수 없다.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의 약발이 아직까지 듣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소정방은 한반도에 온 적이 없다. 왜냐하면 백제가 한반도에 없었기 때문이다. 소정방이 왔다는 것은 백제 패망지이므로 소정방의 위치를 추적해 보면 백제의 위치를 저절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부여의 옆을 휘감아 도는 강 이름을 백마강이라 하나, <삼국사기>와 <신.구 당서> 등 모든 역사기록에는 "백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서>에 보면 소정방은 백제패망 전에도 백강에서 낚시를 가끔 했다고 적혀있다. 그럼 소정방은 한반도 백마강까지 바다 건너 낚시하러 왔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백강이 당나라의 영역이든가 국경선이었고, 백제와 당나라가 대륙에서 국경을 접하고 있었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곧 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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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6/04 [13:4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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