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세종대왕도 일본어를 베껴 썼다는 이상한 논리
물론, 봉안, 납골 등 억지춘향식 해석, 문제는 사회지도층의 인식
 
한눌 한문수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06/26 [09:01]
우리말의 우수성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보급되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크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漢字로 번역되어 써지고 있는 우리글 거의가 일본어에서 유입되어 써지고 있다고 단언하는
<우리말 ㅇㅇㅇ> <우리말 xxx> 등 보급자들이 늘면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조선 때, 삼국 때, 고려와 조선 초기 써졌던 한자말이 일본어라 우기는 촌극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도외시 한  또 다른 역사 왜곡을 주도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우리말 보급자가 나열한 실례를 먼저 보자.

- 우리말 보급자의 글.
설명하면서 자주 나오는 "말할 것도 없음"이라는 뜻의 '물론'이라는 낱말은 일본어 勿論(もちろん[모찌롱])에서 왔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말할 것도 없음'으로 바꿔 쓰시면 됩니다.
..................................................................................................................

- 세종실록 검증 내용.
* 세종 11년 기유(1429, 선덕 4) 5월11일 (병진) 하극상을 금하는 법금을 엄격히 세우다
“이후로 고소(告訴)를 당한 수령(守令)은 물론(勿論)하고, 몰래 사주한 품관(品官)과
이민(吏民)은 모두 장 1백 대에, 도(徒) 3년에 처하게 할 것이며,... ”
(今後陰嗾者, 則被訴守令勿論, 品官吏民, 竝杖一百 徒三年) ........................................

* 세종 21년 기미(1439,정통 4) 11월22일 (병인) 경상도 좌도 도절제사 이징옥이 비변책을 올리다
“각 고을 수령(守令)이 상·하번(上下番)을 물론(勿論)하고 다 거느리고 응적(應敵)하게 하고”
(各官守令, 勿論上下番, 皆率領應敵) ....................................................................

윗글의 사례를 보면, 세종대왕도 일본어를 빌어다 왕조실록에 썼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勿論‘이라는 이 한 단어만 해도 조선왕조실록 61건, 고전번역총서 22건, 승정원일기(원문) 66건,
한국문집총간 1725건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들 낱말이 일본어를 빌어다 썼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연유함인가?.
한자는 무조건 외래어라는 식, 무식의 소치라고 밖에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 우리말 보급자들이 사회적 명성을 가진 유력 인사들이라는 데 있다.

▲ 일제강점기 하 일본어 교육의 연향은?                                      © 편집부


아래 글들은 그 일부분으로 보급자에게 띄운 글이다.
ㅅ 선생님께, 우리말 알리기에 얼마나 노고가 많으신지요? 선생님으로 인해 더욱 밝아지는 듯합니다. 일전에도 참고 글을 보내 드렸습니다만, 오늘 글 중(아래)에도 사례가 있어 보내드립니다. 한글만이 우리글이라 하지만, 한자 또한 상형문에서 갑골문으로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날 써지는 한자가 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상형문과 갑골문이 우리의 선조인 고조선인들이 만들었다는 전거는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한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일부 변형되기도 했으나, 그대로 쓰고 있는 한자가 더 많습니다.
백제시대 왕인 박사가 왜인들을 가르쳤다는 예 등도 있습니다.

아래 예를 보시듯 고려와 조선 때 이미 일본어를 차용해 썼다는 논리가 성립되니 다소 당황스럽습니다. 이후 한자가 거의 일본어에 기초하고 있다는 설(?)은 역사 기록을 참조하시어 발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보급자가 일본어라고 주장하는 한자 내용과 사료 중 참고할 글 (일부분)
...............................................................................................................
1) 산업자원부에서 권하는 봉안당은?
실은 이 봉안도 奉安(ほう-あん, [보우앙])이라는 일본어에서 왔습니다.
..................................................................................................................

*고려사절요 제18권/  원종 순효대왕 1(元宗順孝大王一) 갑자 5년(1264), 송 경정 5년ㆍ몽고 지원 원년 "일찍이 (고려 23대 황제)고종(高宗 1213-1259)께 아뢰어 크게 불사(佛事)를 열고 임금의 의대(衣帶)를 봉안(奉安)하였더니, 얼마 안 되어 고종이 승하하셨다."  .............................

*태조실록 1년 임신(1392, 홍무 25) 8월8일 (정사) 고려 태조를 마전군에 이안시켜 제사지내게 하다
"명하여 고려 태조를 마전군(麻田郡)에 옮겨 봉안(奉安)하여 사시(四時)에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원전】 1 집 26 면 ............................................

*태조실록 3년 갑술(1394, 홍무 27) 4월29일 (무술)
환왕의 기일이므로 왕비와 함께 경천사에 가서 재를 올리다 
"환왕(桓王)의 기신(忌晨)이므로, 임금이 중궁(中宮)과 더불어 경천사(敬天寺)에 거동하여 환왕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하고, 이내 재(齋)를 베풀고 《화엄삼매참(華嚴三昧懺)》을 강(講)하게 하였다.
【원전】 1 집 62 면 ....................................

*고봉집 제2권   옥천서원기(玉川書院記) /기대승(奇大升, 1527 ~ 1572) 지음  
"한훤 선생의 위패(位牌)를 당의 왼쪽 한 칸에 봉안(奉安)하여 당을 사당으로 만들어서 조두(俎豆)의 의식을 정하고는, 매년 중춘(仲春)과 중추(仲秋)의 중정일(中丁日)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

*국조보감 제31권 선조조 8. 25년(임진, 1592)
-이 책은 조선시대 역대 군주의 업적 가운데 선정(善政)만을 모아 편찬한 편년체(編年體) 사서(史書)인 《국조보감(國朝寶鑑)》(奎章閣所藏本, 90卷 28冊, 壬辰活字本, 隆熙 3年 1909年 刊行)을 대본(臺本)으로 하여 8책으로 국역(國譯)하고, 이 국역된 《국조보감》을 대상으로 1책의 색인(索引)을 편찬하여 모두 9책으로 새롭게 엮은 것이다.

당시 종묘 사직의 위패를 개성의 목청전(穆淸殿)에 봉안(奉安)했다가 그대로 묻게 하였는데,
.............................................................................

*이하 계속된 발표문 사례와 검증내용.
“납골당(納骨堂, のうこつどう[노우고츠도우])은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거든요.”
.............................................................

<納骨>에 대해 동사강목 제13상  병진년 충숙왕 3년(원 인종 원우 3, 1316) 
추7월 의비(懿妃)가 원에서 훙하였다. 8월에 상(喪)이 돌아와 연릉(衍陵)에 장사하였다.
"처음 비가 훙하였으나 상구(喪具)가 준비되지 않아 평리(評理) 김이(金怡)가 시체를 화장하여 함(凾)에 납골(納骨)하여 몸소 묻어 주고 삭망(朔望) 때마다 양주(羊酒)를 갖추어 전제(奠祭)하였다."

* <勿論> 추가내용

1) 동국이상국후집 제1권  고율시(古律詩) 1백 5수 / 이규보(李奎報, 1168년 ~1241년) 지음
 승첩(僧帖)을 받았던 중이 파계하여 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시를 지어 희롱하다
<머리 기른 속인이나 삭발한 중이나 / 勿論髮在與頭鬜> ............................

2) 동국이상국후집 제4권    고율시(古律詩) 98수 집 안 채마밭의 여섯 노래
<높고 낮은 데 가리지 않고 옥병 매달리는 것이네 / 勿論高下掛瑤甁> .....................................

3) 태조 6년 정축(1397, 홍무 30) 4월20일 (임인)
정도전이 무고하여 양천식·설장수·권근을 탄핵하였으나 임금이 불문에 붙이다
"임금이 이에 허락하였다. 그때의 물론(勿論)이 근의 가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고, 도전(道傳)을 그르게 여기는 자가 있었다." ..............................................

4) 만기요람(萬機要覽) 재용편 3    해세(海稅) 어(魚)ㆍ염(鹽)ㆍ선(船)
양선록안(量船錄案) /조선 왕조 제23대 순조왕(純祖王) 8년(1808년)경에 시임(時任) 호조 판서(戶曹判書) 서영보(徐榮輔)와 부제학(副提學) 심상규(沈象奎)가 같이 비국유사당상(備局有司堂上)으로 있으면서 왕명을 받들어 찬진(撰進)한 것이다. "사대부(士大夫) 집안은 만들어서 준 배나 다른 배를 물론(勿論)하고 세(稅)를 상납하지 않고,.."   ....................................

5) 세종 11년 기유(1429, 선덕 4)  5월11일 (병진) 하극상을 금하는 법금을 엄격히 세우다
"이후로 고소(告訴)를 당한 수령(守令)은 물론(勿論)하고, 몰래 사주한 품관(品官)과 이민(吏民)은 모두 장 1백 대에, 도(徒) 3년에 처하게 할 것이며," ...................

6) <筆者>에 대해 東國李相國全集卷第二十二   雜文 論走筆事略言 / 이규보(李奎報, 1168 ∼1241)
夫唱韻走筆者 (중략)  則後進之走筆者。........................

세종 11년 기유(1429,선덕 4)   8월12일 (병술) 형조에서 법손 노비의 처리 문제에 대해 아뢰니 그대로 따르다. "관에서는 재주(財主)와 증인과 증서(證書)의 집필자(執筆者)의 공술(供述)을 받은 뒤에 입안을 내주는 것인데," 【원전】3 집 194 면  ..............................

7) 국역일성록/ 정조8년 갑진(1784,건륭 49) 9월18일(경오)
상존호도감 도제조(上尊號都監都提調)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였다.
"필자 서리(筆者書吏)와 견맹 차비(牽盲差備), 그 나머지 원역들도 해조로 하여금 전례를 참고하여 등급을 나누어 시상하게 하라."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4/06/26 [09:01]  최종편집: ⓒ greatcorea.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