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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는 언제 변조되었을까? (1부)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는 조선왕조 때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편집부 기사입력  2012/06/04 [15:19]
위화도회군(쿠데타)으로 정권을 잡은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인 조선을 개국하나 대의명분이 약했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받지 못했다. 부도덕하게 무력으로 정권을 잡다보니 내부의 인정보다는 강력한 외부의 힘이 필요해 명나라를 끌여들이고 스스로 속국임을 자청하고는 자신의 정치 뒷배경을 명나라로 하게 된다. 이는 해방 후 쿠데타로 집권한 세력들이 제일 먼저 미국에게 승인을 받고 미국을 자신의 후원자로 섬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선초기의 사대와 역사테러

명나라는 이런 이성계에게 국호를 '조선'이라 정해주고는, 예전에 지나족이 단군조선에게 지배당했던 역사의 한을 풀게 된다. 즉 그때와 입장이 180도 뒤바뀌어, 이제는 한족(명나라)이 상국이 되어 속국인 조선에게 역사 보복을 하기 시작한다. 조선 초 삼봉 정도전이 지은 <조선경국전>을 보면 ‘조선’이란 국호가 정해진 이야기가 상세히 나온다.

▲ 삼봉 정도전이 쓴 <조선경국전>.     © 편집부
“해동(海東)은 국호가 일정하지 않았다. 조선(朝鮮)이라고 일컬은 이가 셋 있었으니, 단군(檀君) 기자(箕子) 위만(衛滿)이 바로 그들이다. (중략) 이들은 모두 한 지역을 몰래 차지하여 중국의 명령을 받지 않고 스스로 국호를 세우고 서로를 침탈하였다. (중략) 단 기자만은 주 무왕의 명령을 받아 조선후(朝鮮候)에 봉해졌다.

지금 천자(명태조 주원장)가 “오직 조선이란 칭호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유래가 구원하다. 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다스리면, 후손이 길이 창성하리라.”고 명하였는데, 아마 주 무왕이 기자에게 명하던 것으로 전하에게 명한 것이리니, (중략)

기자는 무왕에게 홍범(洪範)을 설명하고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의 교(敎)를 지어서 나라 안에 실시하니,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러므로 조선이란 이름이 천하 후세에 이처럼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제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기자의 선정(善政) 또한 당연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아 ! 명나라 천자의 덕도 주 무왕에게 부끄러울 게 없거니와, 전하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게 부끄러울 게 있겠는가? 장차 홍범의 배움과 8조의 가르침이 금일에 다시 시행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위 구역질나는 정도전의 글에서 알 수 있다시피, 조선왕조는 단군조선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기자조선을 계승한 것으로 자청하고 있다. 명나라는 속국을 자청한 이성계에게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해줌으로서, <기자조선>이 주 무왕의 제후였듯이 조선은 명나라의 제후국인 소중화(小中華)라는 것을 말하려 함이었다.
 
▲ 조선왕조가 평양에 조선한 기자능(?) 사대중화사상의 극치이다.     ©편집부

세종대왕은 성군(聖君)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사실은 그 역시 고려 이전의 역사를 배척했다. 개국 이래 조선은 중국인인 기자의 후예이지 단군의 후예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명나라 영락제가 죽자 자신은 군신(君臣)관계라 하며 21일간이나 상복을 입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이것이 조선왕조의 실상이고,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는 세종대왕이 민족사를 바라보는 역사관이었던 것이다.

1) 세조 3년 팔도관찰사에게 유시하기를,
“<고조선비사> <대변설> <조대기>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삼성밀기> <안함노.원동중 삼성기> 등의 1백여 권과 <동천록> <마슬록> <통천록> <호중록> <지화록> <도선한도참기> 등의 문서는 마땅히 사처에 간직해서는 안 되니,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허가하고, 자원하는 서책을 가지고 회사할 것이니 그것을 관청·민간 및 사사에 널리 효유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2) 예종 1년 비슷한 어명을 예조에 내린다.
“<주남일사기>·<지공기>·<표훈천사>·<삼성밀기>·<도증기>·<지이성모하사량훈>, 문태와 옥거인과 설업 세 사람의 기(記) 1백여 권과 <호중록>·<지화록>·<명경수> 및 모든 천문·지리·음양에 관계되는 서적들을 집에 간수하고 있는 자는, 도성에서는 10월 그믐날까지 한정하여 승정원에 바치고, 외지에서는 가까운 도는 11월 그믐날까지, 먼 도는 12월 그믐날까지 거주하는 고을에 바치라.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되, 상받기를 원하는 자 및 공사천구에게는 면포 50필을를 상으로 주며,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의 진고를 받아들여 진고한 자에게 위의 항목에 따라 논상하고,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 그것을 중외에 속히 유시하라.”

3) 성종 1년 팔도관찰사에게 교서를 내린다.
“전일에 <주남일사기>·<지공기>·<표훈천사>·<삼성밀기>·<도증기>·<지리성모>.<하소량훈>  문태와 왕거인과 설업의 삼인이 쓴 1백여 권과, <호중록>·<지화록>·<명경수>와 무릇 천문·지리·음양 등 여러 서책을 빠짐없이 찾아내어 서울로 올려 보낼 일을 이미 하유했으니, 상항(上項) <명경수> 이상의 9책과 <태일금경식>·<도선참기>는 전일의 하유에 의거하여 서울로 올려 보내고 나머지 책은 다시 수납하지 말도록 하고, 그 이미 수납한 것은 돌려주도록 하라.” 고 명령을 내렸다.

이후로 조선에서는 단군조선과 삼국에 대한 고대서적을 가진 자가 발각되면 엄벌에 처했다. 세  임금의 위 어명은 조선이 실제 조상인 단군과 삼국에게 저지른 실로 엄청난 역사테러였던 것이다.  조상의 사서를 숨긴 자에게 참형이라니? 원 세상에 이런 나라도 다 있나?

이 고대서적들이란 대륙을 지배했던 위대했던 조상들의 역사서로 주로 단군조선에 관한 책들이었다. 스스로 명나라의 속국임을 자처한 조선왕조는 기자를 조상으로 삼고 단군은 남의 조상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그들이 상국의 땅인 대륙을 지배했다는 역사 기록은 지극히 불충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관련 사서의 수거령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조가 언급한 목록에는 <환단고기>에서 인용한 책들이 많이 보인다. 일제 때 20만권이 넘는 고대 사서를 불태우고 중요한 사서들을 일본으로 가져간 목록에 세조가 언급한 사서 중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세조는 계유정난(쿠데타)을 통하여 집권하고는 결국 조카인 단종을 보위에서 끌어내리고 왕위에 오른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왕이 되다보니 명나라에게 고명(승인)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명나라에서는 고명을 해주는 대신에 대륙을 지배했던 단군조선과 삼국의 역사를 없애라고 압력을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고명을 받은 직후인 세조 3년에 이런 어명이 내려진 것이다. 부도덕한 방법(쿠데타)으로 정권을 쥐면 항상 뭔가 이상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중종 25년 1530년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을 마친 대제학 이행(李荇)은 “우리 조선이라는 나라는 기자(箕子)가 교화를 일으킨 데서 비롯되었다.”고 적었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과 함께 중화 사대주의가 극치를 이루는 대목이다.
 
▲ 세조, 예종, 성종 때의 사서수거령은 계유정난의 주역으로 정치적 실세였던 한명회가 주도했을 가능성이 크다     © 편집부


김부식은 삼국의 역사를 변질시켰을까? 
▲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

조선 세조 때 내린 명령에서 보듯이 이미 민간에 많은 고대사서들이 있었다. 그런데 김부식은 민간에 있던 이 책들을 사료로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있다. 참고서적의 목록을 김부식이 쓴 것인지 후대에 <삼국사기>를 조작한 사람이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도 모화 사대주의 유학자로 주로 중국 사서를 참조했기 때문에 대륙을 지배했던 조상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단지 사가로서의 양심은 있어서인지 (대륙에 있었던) 360개 지명을 모르겠다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썼다.

<삼국사기>는 애초 편찬될 때부터 변질된 역사도 상당부분 있었을 것이나, 지금의 <삼국사기>와 같은 왜곡내용은 분명 아니었을 것으로 본다. 만일 지금과 같은 내용이었다면, 민간에 고대사서가 많았기 때문에 분명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므로 함부로 임의대로 심한 역사왜곡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록상으로 <삼국사기>가 최초 간행된 것이 태조 2년(1394년)인데, 이 때도 민간에 많은 고대사서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내용으로 간행되었더라면 분명 민간에서 심한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도덕하게 왕위에 오른 세조는 명나라의 고명을 받기 위해서는 단군과 삼국의 역사를 말살하려면 먼저 민간에 있는 고대사서부터 거둬들여야겠다고 판단해 명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제 때 역사왜곡을 위해 <조선사 35권>을 편찬하기 전에 고대사서 20만권을 불태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조선 중기의 사대와 역사말살

분명 현 <삼국사기>는 조선 세조, 예종, 성종 때 많은 고대사서를 거둬들인 이후에나 본격적인 조작이 가능했을 것이다. 성종까지의 임금들은 역사기록은 사관들의 고유권한이라며 비록 왕이라 할지라도 사초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연산군이 봐서는 안될 김일손의 사초를 보고는 감히 조부인 세조임금을 능멸했다며 무오사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그 이전에는 역사조작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연암 박지원선생은 <열하일기>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자’가 평양에 도읍했다면 지금의 평양에 도읍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만주의 봉황성이 평양이었다면 크게 놀랄 것이다. 더구나 만주의 요동 땅에 또 다른 평양이 있었다고 하면 해괴망칙한 소리라고 꾸짖을 것이다. 이것은 요동 숙신 예맥이 모두 조선에 소속된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후세 사람들은 영토의 경계를 밝힐 생각도 않고 청천강이나 대동강을 ‘패수’라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의 땅덩어리는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저절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한탄하였다. 이 내용은 연암선생이 활동하던 영.정조시대 이전에 이미 역사왜곡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연산군 ~ 숙종 사이에 <삼국사기>를 비롯한 역사왜곡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조선시대 벼슬깨나 했던 사대부의 비석을 보면 어김없이 유명조선(有明朝鮮)으로 시작한다. 유명조선이란 '명나라가 있기에 조선이 있다.'는 뜻이다. 조선왕조 사대부들의 조국은 조선이 아니라 명나라였고, 조상은 단군이 아니라 기자였던 것이다. 결국 조선왕조과 일제는 환국 3,301년, 배달국 1,565년, 단군조선 2,096년 합계 7천년의 역사를 다 말살해 버린다.

게다가 삼국의 대륙지배 사실까지 조작하는 엄청난 패륜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그럼 <삼국사기>는 언제 조작되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삼국사기의 조작은 조선왕조 5백년 역사 중 가장 강력했던 임금인 연산군을 반정(쿠데타)으로 끌어내리고 대신들이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중종조일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왕위에서 끌어내린 박원종 일파가 <삼국사기>를 최종적으로 변조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당시 반정군은 최초 명나라로부터 중종의 등극 고명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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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6/04 [15:19]  최종편집: ⓒ greatcorea.kr
 
위글의 2분는 어느 것인지 ? 우리역사 12/12/21 [20:45] 수정 삭제
  앞뒤가 헤깔리네요
아베가 춤을 추겠네요. 과객 15/06/17 [10:20] 수정 삭제
  식민사관에는 식민사관의 내용과 식민사관의 목적이 있다. 조상을 욕하게 하고 조상을 혐오하게 하고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 식민사관의 목적이다. 귀하는 식민사관의 목적에 충실하여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군요. 남이 조상을 욕하더라도 후손으로서 변명하는 것이 의리가 아닐까요?
아베가 춤을 추겠네요 과객 15/06/17 [10:27] 수정 삭제
  어느 민족이든 조상이 모두 성인현자인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 못하는 조상에 대해 "서운하게도..." 정도로 말하면 되지 그것을 그렇게 욕하고 비방하는 것이 후손의 의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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