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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주원장의 계략에 의해 말살된 우리 고대사
명나라 때문에 환인·환웅·단군의 목상을 부셔버린 조선왕조
 
한눌 한문수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08/11 [11:24]
1472년 2월 황해도관찰사 이예(李芮 1419-1480)가 성종에게 상주(上奏)했다.
“태종조(太宗朝)에 하륜(河崙)이 제사(諸祠)의 목상(木像)을 혁파할 것을 건의하여 삼성(三聖)의 목상도 또한 예(例)에 따라 파하였다 하며, 의물(儀物)의 설치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구월산(九月山) 삼성당(三聖堂)의 한인(桓因) 한웅(桓雄) 단군(檀君) 세 분 천왕(天王)의 목상과 위패가 있었는데 이를 부숴 없애버렸다는 사적(事跡) 기록을 올린 것이다.

▲ 조선왕조에 의해 부셔져 없어진 우리 민족의 삼성(三聖)     ©편집부

여말선초에는 ‘삼성당 아래 근처에는 인가가 많았으나, 평양부(平壤府)에 옮기고 치제(致祭)하지 않자 그 뒤로부터 악병(惡病)이 발생하기 시작하여 인가가 텅 비었다’고 했다.

이예는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평양의 단군묘(檀君廟)의 예(例)에 의하여 해마다 봄·가을로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를 행하게 해달라’고 소원했고, 왕명에 의해 시행되었다고 했다.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이는 삼성당을 옮김으로 해서 괴병(怪病)으로 인한 백성들의 불안과 원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왕명에 의해 시행’된 것은 반정에 대한 두려움 더 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예가 추정한 시기는 태종 즉위년과 15년(1415) 경으로 그 당기(堂基)를 일찍이 본 사람이 없고 상고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삼성당의 기록 자체를 말살하여 백성들의 눈을 가리고 그 자체를 인정할 수 없도록 차단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당을 부숴 없애버린 하륜(河崙 1347-1416)은 누구인가? 이방원(李芳遠)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승승장구한 인물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측근이 되어 국사를 전단했다.

목은 이색(李穡)의 제자로 동문인 정도전(鄭道傳)과는 연안 차씨 외예얼속(外裔孽屬)으로 동반하여 차씨의 족보를 불태우고 멸문지화를 시켰으나, 항상 각을 세웠다. 정도전에 의해 스승 이색이 짐주(鴆酒)로 어이없이 생을 마감할 때도 방관인이었다.

▲ KBS 드라마 '정도전'에서의 하륜(좌)과 정도전(우)     © 편집부

태종대에 숨 가쁘게 진행된 고사서의 수거와 지리지명의 변동사항은 권력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음모의 시기였다. 1412년에는 역대 사서로 알려진 신지비사(神誌秘詞) 즉 신비집(神秘集)이 괴탄, 불경하다 하여 불태워 졌다. 이색의 문집 일부도 이 범주에 넣어 수거했고 사라져 버렸다.

이듬해인 1413년 태종은 군현제(郡縣制)를 대대적으로 정비하였다. 대륙의 지역지명이 한반도로 이동되는 시기로 보여 진다. 군현제는 세종이 야심차게 만든 신찬팔도지리지와 연계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1428년(세종 10) 우의정으로 물러난 유관(柳寬 1346-1433)이 삼성사(三聖祠)에 관한 상서(上書)를 올려 ‘날이 가물 때 삼성신에게 기도하면 즉시 비를 내려준다고 합니다.’라 했고, 기자(箕子)보다도 천년이 앞선 단군왕검의 신위를 ‘어찌 아래로 내려와 기자묘와 합치하여야 한단 말입니까.?’라 하여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 유관은 ‘단군 조선 때는 아사달산(阿斯達山)이며, 신라 때에 궐산(闕山)이라고 고쳐 불렀으며 산 이름의 ‘궐’자를 느린 소리로 발음하여 구월산(九月山)이라 하였다‘고 말했다. 고구리의 음가가 고굴이 되고, 고굴이 또 ‘궐’이 되니, 원래 이름은 고구리산이다. 신라가 고구리를 초토화시키며, 지명을 왜곡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한자는 그저 음가에 끼어 맞췄음이다.

그러나 세종은 이 상서에 대해 보류(保留)하라고 지시했다. 참으로 껄끄러운 부분을 유관이 건드렸다. 명나라와의 관계가 몹시 난감했을 터이다. 대륙의 역사를 절단하여 사대(事大)에 충실하고자 하는 절대 권력자의 속셈과 이에 부화뇌동했던 사대부들의 야합이다. 한 나라의 역사는 어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주도하는가로 판가름 나기 마련이었음을 보여준 사례이다.

주원장(朱元璋)이 권근(權近)으로 하여금 시고개벽동이주(始古開闢東夷主)를 짓게 하여 조선의 의중을 의도적으로 시험했다. 주원장의 계략에 숨겨진 무서운 음모와 술책으로 삼성당이 부숴지고 역사가 말살된 것이다.


- 한눌의 '고대사 메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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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11 [11:2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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