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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 그 많던 책들은 다 어디로 갔나?
고려어로 우박은 ‘얼음의 아들[氷子 빙자]’
 
한눌 한문수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4/11/21 [09:41]

958년 주(周)나라에서 사신 한언경(韓彦卿) 등이 고려에 들어와 구리를 사갔다. 이 기록은 명나라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설부(說郛)에 보인다. 설부는 1103년 송나라 사람 손목(孫穆)이 고려를 다녀간 뒤 편찬한 견문록인 「계림유사(鷄林類事)」의 일부 내용을 뽑아 재편찬한 것이다.

 

고려에 사신으로 왔던 한언경은 박학기(博學記)라는 서책을 보았고, 고려의 말이 새롭다고 했다.

계림유사에는 고려 말 단어 361개가 수록되어 있는데 설부와 청이록(淸異錄)에 기록된 것을 보면,

안개[霧 무]를 ‘하늘을 가려 걷기에 장애되는 것[迷天步障 미천보장]’이라 하였고,

서리[霜 상]를 ‘두려운 가루[威屑 위설]’,

이슬[露 로]을 ‘물이 맺힌 것[敎水 교수]’이라 하였고,

우박[雹 박]을 ‘얼음의 아들[氷子 빙자]’,

무지개[虹 홍]를 ‘공기의 어미[氣母 기모]’라 하였고,

은하수[天河 천하]를 '가을 하늘의 큰 노인[秋明大老 추명대로]',                           

별[星 성]을 ‘금 가루를 뿌린 것[屑金 설금]’이라 하였다.

 

우유나 양유를 끓여서 만든 음료수(酥 수)를 대도규(大刀圭)

우락(牛酪) 위에 엉긴, 기름덩이 모양의 맛이 좋은 액체 (醍醐 제호)를 소도규(小刀圭)

우유나 양유를 끓여서 만든 죽(酪 낙)을 수도규(水刀圭)라 하고,

우락(牛酪)의 한 종류로, (乳腐 유부 또는 腐乳 부유)를 초창도규(草創刀圭)라 한다. 

이 외에도 ‘젓가락’은 ’절‘, ‘흔하다'는 ’흡합다‘, ‘얼굴'은 ’나시' 등으로 고려어가 사용되었다. 또한 ‘빈대'를 뜻하는 고려시대 우리말은 ’갈보'로 설부에는 ‘취충왈갈포(臭蟲曰蝎鋪)'라 적혀있는데 ’포(鋪)'의 송대 발음이 ‘보'이기 때문에 빈대의 고려말은 ‘갈보'였다는 것이다. 현재 ‘갈보'는 매춘부를 뜻하는 말로 뜻이 전이되어 사용되고 있다.  


고려의 국속(國俗)에 국왕을 신하나 백성들이 부를 때에는 성상(聖上)이라고 부르고, 사사로이 칭할 때에는 엄공(嚴公)이라고 한다. 후비(后妃)는 궁주(宮主)라고 한다. 《송사(宋史)》

 

고려에서는 중국의 사신들을 일러 모두 천거(天車)라 하고《중주집(中州集)》

삿갓[笠]을 알(軋)이라 했으며, 고슴도치 털[刺蝟毛]을 고섬섬(苦苫苫)이라고 한다. 《고려도경》

 

▲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의 원명은 '선화봉사고려도경'     © 편집부


고려는 북쪽을 별십팔(別十八)이라 하는데, 중국말로 다섯 성(城)을 연결하였다는 말이다.《철경록(輟耕錄)》 매[鷹]를 결운아(決雲兒)라고 부른다. 《화경(花鏡)》

1774년 안정복(安鼎福)은 그의 저술인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박학기》라는 것은 지금 어떤 책인지 모르겠다' 라 했다.

 

 1091년 송(宋)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호부 상서 이자의(李資義)와 예부 시랑 위계정(魏繼廷) 등은  “중국 황제가 우리나라의 책 중에 좋은 판본이 많다는 말을 듣고 관반(館伴)에게 명하여 구하고 싶은 책의 목록을 적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설사 권질(卷帙)이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이를 베껴서 부쳐 보내기 바란다.’ 하였는데 그 숫자가 무려 128종이나 되었습니다.” 하였다.

 

임하필기(林下筆記)의 이 기록으로 보면 고려에 양질의 서적이 무척 많았음을 보여 준다.

고려의 부침과 조선왕조 초기의 혼란기에 사라진 귀중한 서책들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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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1/21 [09:41]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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