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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초기 도읍지 금성(金城)
산서성 임부시에서 발견된 신라의 초기도읍지 금성
 
편집부 기사입력  2012/06/07 [14:55]
초기 신라의 위치는 어디인가?

<수서 신라전>에, "신라국은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다. 한나라의 낙랑 땅에 사는데, 혹은 사라라고도 부른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북사(北史)>에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辰韓)의 종족이다. 땅이 고구려의 동남쪽에 있는데, 한나라의 낙랑에 산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신.구당서>에도 “신라가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신라국본기>에 “ 조선의 유민이 산 계곡 사이를 나누어 살아 여섯 마을(村)을 이루었다. 이것을 진한(辰韓)의 육부(六部)라고 하였다. (중략) 박혁거세 19년(bc39년) 변한(卞韓)이 나라를 바치고 항복하였다. (중략) 예전에 중국인들이 진(秦)나라의 난리에 시달려 동쪽으로 건너온 자가 많았는데 대개 마한의 동쪽에 자리 잡아 진한(辰韓)과 더불어 섞여 살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의 기록에 적혀있기를, “사로(신라)의 시왕(始王)은 선도산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 부여 제실(帝室:황제집안)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애를 뱄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로부터 도망쳐 동옥저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辰韓)의 나을촌에 와 닿았다. 이 때 소벌도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집에 데려다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며 성덕이 있는지라, 진한 6부의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여 거세간(居世干)이 되니 도읍을 서라벌(徐羅伐)에 세우고 나라를 진한(辰韓)으로 하고 또한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

같은 내용을 <삼국사기>에서는 부여황실과의 관계와 진한으로 내려온 과정을 생략하고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로 설명한다. 위의 거세간 대신 거서간(居西干)으로, 국호를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어느 기록이 맞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한단고기>의 내용이 상세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산서성 임분시에서 발견된 신라의 초기도읍지 금성 유적. 정문 위에 金城이라는 글자가 뚜렷하다     ©

금성에 대한 <삼국사기>의 기록들

“박혁거세 21년(bc 37년) 경성을 쌓고 이름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 26년 금성에 궁실을 지었다. 60년(ad 3년)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 나타나더니 소나기가 쏟아지고 성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 남해차차웅 원년 낙랑의 군사가 와서 금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유리이사금 33년 용이 금성 안 우물에 나타나더니 이윽고 폭우가 서북방에서 몰려왔다.”

“탈해이사금 9년(ad 65년) 금성 서편 숲 사이에서 닭울음소리가 났다. 금색으로 된 괘짝 안에 작은 사내아이가 들어있었다. 성은 김(金)이라 짓고, 이름을 알지(閼智)라 하였다. 시림을 고치어 계림(鷄林)이라 하고 국호로 삼았다.” 신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김알지는 흉노 출신으로 전한에서 높은 벼슬을 지낸 김일제의 후손이다.

“파사이사금 17년 남쪽에서 불어오는 폭풍으로 금성 남쪽에 있는 큰 나무가 뽑혔다. 22년(ad 101년) 2월 성을 쌓고 월성(月城)이라 이름 하였고, 7월 왕이 월성으로 이거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새로운 도읍지인 월성이 어디인지는 추적이 되지 않고 있으나 아마 동남쪽으로 꽤 멀리 내려간 것이 아닌가 한다.

신라가 월성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또 도읍을 옮기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보인다. “자비마립간 18년(ad 475년)에 명활성(明活城)으로 이거한다.” 이때는 장수왕이 백제의 개로왕을 죽이고 한창 세력을 확장할 때였다. 그리고 소지마립간 때 다시 월성으로 천도한다. 이와 같이 신라는 도읍도 여러 차례 옮겨지고 국호도 여러 차례 바뀐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도읍지인 금성과 월성으로 천도 이후 기록에 나타나는 금성이 같은 위치인지는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초기 금성이 있던 산서성 임분시 일대는 ad 100년 전후로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고, 장수왕 때(ad 427년)는 아예 그곳(평양성)으로 도읍이 옮겨옴에도 불구하고 계속 금성이란 지명이 등장하는데, 지명이 옮겨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필자가 신라 초도 금성의 위치가 산서성 임분시라고 주장하면, 식민사학자들은 임분시에 있는 금성유적은 중국의 금성이라 신라와 상관없다고 우길 지도 모른다. 아래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가르키는 중국의 금성은 감숙성 황하북안 난주 또는 섬서성으로 나와 있어, 임분시 금성유적은 동이족 신라의 것임을 알 수 있으니 괜한 이의제기하지 말기 바란다.

(金城郡 금성군) 汉置,今甘肃旧兰州、西宁二府地,治允吾,在今甘肃皋兰县西北黄河北岸,晋初治榆中,在今甘肃榆中县西北,东晋移治金城,在今甘肃皋兰县西南,(后魏金城郡初亦治榆中,后徙金城,)隋废郡,改置兰州,寻复故,移今皋兰县治,唐复曰兰州,改金城郡,复改尘州,宋曰兰州金城郡,金曰兰州。(한나라 때 설치, 감숙성 황하북안 난주)
南朝宋置,并置县,南齐因之,今陕西南郑县地。 (남조송나라 설치, 섬서성 남쪽 정현 땅)
后魏置隋废,故治在今陕西汉阴县西 (후위때 설치 수나라 폐, 섬서성 한음현 서쪽)

신(新)나라 왕망이 망하자 김일제의 후손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간 땅은 과거 김일제와 관련있는 요동(遼東) 땅으로 산서성 임분 일대였던 것이다. 지금도 김일제로부터 시작된 김씨의 종가(宗家)가 산서성 임분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고, 산서성 임분에 초기 신라의 도읍지인 금성(金城)이 발견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 산서성 임분에 살고 있는 김씨의 종손이 시조 김일제의 화상을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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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6/07 [14:5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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