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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고구려공정 (3부)
고구려 등 동북민족은 중국고대 지방민족정권에 속한다
 
정인갑 전 칭화대교수 기사입력  2014/12/24 [16:24]

3. 고구려공정 질의     

  이 부분의 내용은 한국학자들이 아주 충분하게 거론하였으므로 필자가 취급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므로 간단히 언급하고 말련다.     

  고구려공정에서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이유는 아래의 4가지다.
a. 고구려 등 동북민족은 중국고대 지방민족정권에 속한다.
b. 고구려와 고려는 같지 않은 나라이며 양자 사이에는 필연적 내연관계가 없다. 
c. 고구려와 현 한국·조선 정권 사이에는 필연적 내연관계가 없다.
d. 고구려의 주체는 이미 중화민족에 융합되었고 그의 일부가 현 조선민족에 융합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모순의 주요 면이 사물의 성격을 규정지으므로 고구려와 현 조선민족 간에는 필연적 내연관계가 없다.     

  b와 c의 뜻은 그사이 중국사학계에서 고구려를 한국사에 넣은 원인은 중국고서에 ‘고구려’와 ‘고려’ 두 단어를 혼동해 썼기 때문에 개념상의 착각을 빚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고려가 바로 고구려인가 했고 고려를 이은 나라가 조선왕조이고, 조선왕조를 이은 나라가 지금의 조선·한국이므로 고구려를 한국사로 취급했다. 지금 그 오류를 시정하여야 한다.    

  고구려가 망하고(668) 통일신라를 거쳐 250년이 지나 고려가 생겼다는(918) 것을 중국사학가들이 몰랐을 수 없다. 보통 지식인들도 알며 <설례동정(薛禮東征)>과 같은 화본(話本)·소설 등을 통하여 삼척동자도 아는데 하물며 세계적인 역사학 대가 곽말약, 당란, 전백찬 등이 몰랐으며 그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중국 권위의 역사책과 역사 교과서를 썼단 말인가?      

  역사학고수들이 써준 재료를 가지고 모택동과 주은래가 북한 대표들에게 한 말―동북이 원래 조선 땅이었는데 우리 선조가 침략하여 조선 땅이 좁아졌으므로 조상을 대신해 사과한다―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모택동과 주은래, 그리고 그들에게 발언내용을 써준 최고수준의 학자들이 고구려와 고려를 구분할 줄도 몰랐단 말인가?     

  중국 역사상 서로 다른 나라이지만 국명이 같은 나라는 수없이 많다. 국호를 위(魏)라는 나라는 위(661BC멸망), 위(403BC~225BC), 위(220~265), 위(420~550), 위(617) 등 5개나 된다. 국호를 송(宋)이란 나라도 송(11세기BC~286BC), 송(420~479), 송(623~ 624), 송(960~1279), 송(1355~1366) 등 5개나 된다. 이 외에도 서로 다른 나라이지만 국명이 같은 나라는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중국 사학자들은 이런 문제에 아주 민감하며 이런 나라들을 잘 구분하는 도사들이다. 그런데 당나라 초기에 망한 고구려와 송나라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고려를 구분할 줄 몰랐을 수 있나? 고구려와 고려를 구분할 줄 몰라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취급했다는 말은 한낱 궤변에 불과하다.     

  ‘고구려의 주체는 이미 중화민족에 융합되었다’도 사실이 아니다. 중국 최초의 국가는 중원민족이 21BC에 세운 하(夏)나라이다. 16BC에 동이(东夷)민족이 중원에 쳐들어가 상(商)을 세웠고, 11BC에 서융(西戎)민족이 중원에 쳐들어가 주(周)를 세웠으며 317~1279에 북적(北狄) 민족이 중원에 쳐들어가 원(元) 등 많은 나라를 세웠다. 1644년에는 만주족이 북경에 쳐들어가 대청제국을 세웠다.     

  상기 민족들은 중화민족에 융합되었다. 지금 상세히 분석하면 그들이 중화민족에 끼친 정치, 경제, 문화·풍속·습관·언어 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언어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중국어의 기본 틀은 서융민족 언어이므로 세계 어학계에서 중국어를 차이나-티베트어라 부른다. 그러나 고대로 올라갈수록 동이민족의 언어가 많이 포함돼 있다. 근대에는 선비족, 탁발족 등 북적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으로 현대중국어의 표준어 북경어는 중국어에 동화된 만주족의 구어(口語)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중원에 진출하지 못했다. 고구려는 요동으로부터 한반도에 이르는 백제, 신라 등의 인간과 언어가 같은 동일민족의 집단 및 체계에 속하지 변방으로부터 중원과 연결되는 인간의 집단 및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잡혀간 20만 명의 고구려 포로는 중국의 변방 미개척지로 끌려가 노예로 되었으며 동화되고 말았다. 정치 문화 등 면에서 고구려는 중국에서 이슬처럼 사라졌다.     

  사실 고구려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모든 나라―고구려, 신라, 백제, 고려, 조선이 모두 중국의 속국 즉 지방정권이었다. 1897년에야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만약 속국(지방정권)이냐 아니냐를 표준으로 하면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 백제, 고려, 조선도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켜야 마땅하다. 중국사냐 아니냐는 다른 표준 즉 현 중국영토를 본위로 한다. 중국의 현 판도 안에 있었던 역사상의 나라는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중국의 현 판도밖에 있었던 역사상의 나라는 외국사로 취급한다. 이것이 중국의 국사서술의 기본 원칙이다.     

  고구려는 현 중국판도 안에 절반(어림잡아), 현 중국판도 밖에 절반이 있다. 영토 본위로 보더라도 고구려의 영토가 현 중국판도 밖에 절반이나 있는 한 중국지방정권이라고 할 수 없다. 최소한 중국판도 안에 있던 고구려는 중국사에, 중국판도밖에 있던 고구려는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어떤 중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양속론(兩屬論)이다.      

  그러나 고구려의 양속론은 불가능하다. 고구려는 두 개 나라가 아니라 한 개 나라이고, 문화적으로 중원권이 아니라 반반도-요동권이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한국역사로서는 그 지위가 심장이고, 중국역사로서는 그 지위가 ‘발가락’이다. 한 나라의 심장을 떼 내어 자기 나라의 발가락을 만들겠다는 것은 얼마나 상식 이하의 처사인가? 아마 그러므로 역대 중국사학의 대가들이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킬 근거가 조금은 있어도 한국사로 밀어주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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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2/24 [16:2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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