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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로 축소된 대륙의 패자 고구려 (1부)
고구려의 남쪽 경계인 패수는 어디인가?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5/08/09 [19:27]
                         목  차
  1. 고구려의 남쪽경계는 어디인가?
  2. 고구려의 요동·요서는 어디인가?
  3. 중국 만리장성의 허구를 밝힌다.

 
들어가는 말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인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 우리의 민족정신이며 혼인 역사를 말살했다. 20만권이 넘는 우리 사서를 불태워가며 조작된 일제식민사학은 크게 ‘단군신화’와 ‘반도사관’으로 대변된다. 그 중 반도사관이란 한마디로 대륙을 호령한 야생호랑이였던 우리 역사의 활동무대를 애완용 고양이의 한반도 내 작은 역사로 축소시킨 것을 말한다. 

  문제는 이렇게 가공된 허구의 역사이론을 현재 한국의 제도권사학계에서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이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교육하고 있어 우리의 혼을 스스로 말살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에 있어 매우 큰 위험요소라 할 수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론적으로 적극 뒷받침해주고 있는 현실이다. 

  반도사관의 핵심 중의 핵심은 중국 대륙에 있었던 패수와 허구의 한사군을 억지로 한반도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먼저 조선총독부와 그 추종자들이 어떤 근거로 패수가 한반도에 있다고 했는지, 왜 그것이 잘못인지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요동군의 서쪽에 있는 요서군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만리장성의 허구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 우리 민족은 원래 대륙을 호령하던 엄청난 호랑이의 후손이었는데, 중국과 일제는 우리의 역사를 왜곡해 조선인을 고양이라는 애완동물로 만들어     ©편집부


1. 고구려의 남쪽경계는 어디인가?

 아아! 후세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을 죄다 압록강 안쪽으로 몰아넣어 억지로 역사적 사실로 만들다보니, 패수를 그 속에서 찾되 혹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며 혹은 대동강을 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1) 패수는 가장 중요한 역사지명

  패수는 우리 고대사의 무대가 어디였는지를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사지명이다. 그 이유는 
① 패수현은  『한서』지리지에 유주(幽州)의 낙랑군에 속한 현이라는 기록이 있어,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군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강이며,
② 『수경』에 위만이 조선으로 망명하면서 건넌 강으로 당시 조선과 漢과의 경계였고,
③ 『신당서』에 고구려의 남쪽경계로 기록되어 있고,
④ 백제 시조 온조가 위례성에서 한산 아래로 천도해 북쪽경계로 했던 곳이며,
⑤ 고구려가 쳐들어오자 근초고왕이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기습해 승리한 곳이며,
⑥ 광개토태왕이 남쪽에 있는 백제를 공격해 8천명을 사로잡는 대승을 거둔 곳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④~⑥은 『삼국사(기)』의 기록이다. 

  패수의 정확한 위치를 비정하려면 위 6가지 조건을 반드시 충족시켜야 된다. 혹자는 패수가 시대에 따라 점차로 이동되어 여러 개의 패수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는 패수의 위치가 바뀌지 않았음에도 학자들마다 위치를 다양하게 비정해 역사를 임의대로 해석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1권 도강록에서 “아아! 후세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을 죄다 압록강 안쪽으로 몰아넣어 억지로 역사적 사실로 만들다보니, 패수를 그 속에서 찾되 혹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을 패수라 하며 혹은 대동강을 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이는 무슨 까닭일까. 평양을 한곳에 정해 놓고 패수의 위치를 앞으로 나감과 뒤로 물리는 것은 그때그때 사정에 따르는 까닭이다.”라고 밝혔듯이, 이미 『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서 패수의 위치를 한반도 내로 비정함으로써 우리의 역사강역이 축소되었음을 한탄하며 지적한 문구이다. 

  이렇듯 반도사관은 고려 김부식 때부터 시작되어 명나라의 속국이 된 조선왕조의 중화사대주의 사관으로 이어졌고, 조선총독부가 잘못된 이 기록들을 악용하여 이론적으로 정립해 우리의 고대사를 철저하게 왜곡했던 것이다. 

  2) 패수는 고구려의 남쪽경계

  대부분의 국민들이 학교에서 국사교과서를 통해 배워서 알고 있는 고구려의 강역은 시대별로 약간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남쪽으로는 한강 이북까지이고 서쪽으로는 요녕성에 있는 요하까지로 알고 있다. 이게 과연 맞는 말인지 지금부터 고구려가 남쪽으로 어디까지 갔는지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을 아차산성에서 처형하자 백제는 한성(서울)에서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겨간다. 장수왕은 충주 땅까지 내려갔다는 표시로 중원고구려비를 세웠고, 이후 고구려는 신라 진흥왕에게 한강 이북의 땅을 빼앗기고 북쪽으로 밀린 적도 있으나 대략적인 고구려의 남쪽경계는 한강이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신당서』 열전145-동이에 “고구려의 남쪽 끝에는 패수가 있다.(南涯浿水)”라는 기록이 있어, 고구려의 남쪽경계가 패수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서울을 가로질러 흐르는 한강이거나 가까운 강이 패수여야 상식적으로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방강역고』를 쓴 다산 정약용과 이병도의 스승으로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던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는 압록강 패수설을 주장했다. 반면에 『삼국사기』 잡지 지리 4편에서는 『당서』와 『지리지』와 ‘수양제 동정조서’의 문구를 근거로 대며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임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를 그대로 인용한 『세종실록지리지』와 만선사관의 대가로 조선사편수회 간사로 근무했던 이나바 이와기치(稻葉岩吉)는 대동강을 패수라고 했다.

▲ 조선사편수회의 일본인 핵심 3인방은 식민사학자 이병도의 스승. 그들이 만든 식민사학이 아직까지 대한민국 사학계의 정설로 되어 있다.     © 편집부

  『삼국사기』의 근거라는 『당서』의 “평양성은 한의 낙랑군이다. 산 형세를 따라 구부러지고 돌아서 성을 쌓았고, 남쪽으로 패수와 닿아있다.”는 문구와, 『당서』지리지의 “등주(登州)에서 동북쪽으로 가서 남쪽으로 海를 끼고 패강의 어귀 초도를 지나면 바로 신라의 서북이 된다.”는 기록과 ‘수양제 동정조서’의 “창해의 도군이 주로 천리에 높은 돛은 번개같이 가고, 큰 배는 구름 가듯하여 패강을 지나 평양에 도착한다.”라고 하면서 “고구려의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인 것 같고, 패수는 바로 대동강이다.”라고 쓴 기록은 이미 고구려 평양성이 대동강에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므로 확실한 근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패수=청천강이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패수가 청천강으로 비정된 것은 식민사학자 이병도가 『한국고대사연구』에서 “패수현은 역사상에 저명한 패수(청천강) 유역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을 취하게 된 것이다. 『한서지리지』패수현조를 보면 패수가 패수의 상류처에 위치한 것을 말하여주거니와 그러면 본류의 상류처냐, 또는 북지류의 그것이냐가 문제인데, 고래로 교통상 요지요 또 웅주(雄州)로 이름난 곳을 든다면, 북지류의 영변(평남)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영변이라 하면 유명한 묘향산의 보현사와 낙산의 철옹성을 연상케 한다. 이곳이 평북의 태천, 귀성 등지와 연결되고 평남의 개천 또는 안주와 연결되는 요지인 만큼, 고려 성종 때에는 방어사(防禦使)가 되고, 근조선 세종 때에는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되어 내려오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패수현의 위치를 영변 일대로 비정하여 왔다.”라고 했고, 

  또한 그의 <국사대관>의 ‘위만조선과 한의 동방침략도’에 그려진 청천강 패수설을 서울대 노태돈과 교원대 송호정 등 주류사학계가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교원대학교 송호정 교수팀이 만든 ‘아틀라스 한국사’에도 패수가 청천강으로 그려져 있다. 압록강·대동강·청천강설 모두 한나라와 조선의 경계를 말하는 것으로, 한사군의 중심 낙랑군이 현재의 평양에 있었다는 학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하겠다.
 
▲ 패수를 청천강으로 비정한 이병도의 국사대관     ©편집부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을 패수가 고구려의 남쪽경계라는 기록에 갖다 대면 전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일 청천강이 패수라면 고구려의 남쪽경계(패수)의 남쪽에 북한군의 전초기지처럼 평양성이 있고, 그 북쪽 패수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전투를 벌였다는 어불성설의 우스운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즉 백제의 최전성기인 근초고왕 때의 영토가 북쪽으로 황해도까지였다고 하면서, 아신왕 때 백제가 청천강에서 광개토태왕과 싸웠다는 말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 평양 북쪽 패수에서 싸우는 고구리와 백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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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8/09 [19:27]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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