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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화와 식민사관에 대한 종합적 회고 (6부)
우리 국학을 완성해야 일제식민사학 극복이 가능
 
박정진 인류문화학자 기사입력  2015/11/03 [17:23]

전쟁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를 이끌어야

고대사는 독립적이고 웅활하고 대륙적이었음에도, 오늘의 역사학이 사대식민을 정당화해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없고, 현재의 의식만 있을 뿐이다. 한국인은 왜 주체적인 해석을 하지 못하는 것인가에 이르면 절망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의 의식이 세계를 압도하지 못하면 사대식민지가 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 역사학의 현실이다.

역사는 단순히 물리적 사실이나 사건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증사학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역사기술 방법이나 태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실증이 마치 요지부동의 역사를 만드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 식민사학만의 주장이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기 전, 구석기후기 빙하기에 수많은 몽골리언들이 얼음으로 뒤덮인 베링해협을 걸어서 이주해 살았던 것인데 근대서양사는 서양인의 시각에서 콜럼버스가 1492년에 발견한 것으로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기록자의 승리이다. 역사학은 사실의 학이 아니라 관점의 학이다. 

지금은 서구중심의 정복전쟁의 시대가 아니고 평화공존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가부장-국가(제국)사회가 거의 끝나가고 지구촌이 하나가 되어 함께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까닭에 모계-여성중심의 평화사상을 간직해온 한민족이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갈 시점이다. 역학적으로 볼 때도 지금은 ‘지천(地天)시대’이다. 땅의 시대, 여성의 시대이다. 과거 천지(天地)의 막힐 비(否)자의 시대가 아니라 통할 태(泰)자의 지천시대이다.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 고대 동이문명을 일으켰던 진방(震方)의 시대가 다시 돌아왔다. 이는 현실적으로 바로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전개를 말한다. 여성시대, 평화시대의 전개를 앞두고 한국인이 세계사의 전면에 나서야 할 때이다. 지구촌시대, 글로벌 시대를 맞아 한국이 세계사를 선도하기 위해서도 민족사관의 회복이 절실한 것이다.

인류는 이제 가부장-국가제국사회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런 사회는 전쟁과 정복으로 얼룩졌으며, 평화는 말뿐이었다. 지구촌 시대와 더불어 이제 진정한 인류의 평화의 시대, 한 가족시대를 이룩하는 데에 한민족이 기여할 때가 되었다.     

  일본의 근대화와 식민사관에 대한 종합적 회고

우리의 역사를 제물로 만들어버린 일본의 식민사학조차도 실은 자신의 국학(일본국학) 완성을 통해서 출발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우리의 식민사학 극복이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학(한국국학)이 완성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반면교사로 삼게 된다. 근대 이후 서양의 근대 산업과학문명을 가장 먼저 제대로 받아들인 일본은 문명의 흐름을 역전시켜 동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하게 된다. 일본이 근대에서 동아시아를 지배하고 서구열강과 어깨를 겨룬 것은 바로 그들의 인문학인 국학을 정립한 힘 때문이다.   

▲ 천안에 있는 국학원 이구에 서있는 삼족오상     © 편집부

일본의 근대철학이라고 할 수 있는 니시다키타로(西田幾多郞)의 ‘선(善)의 연구’가 출판된 것이 1911년이다. 우리는 그 한 해 전(1910년) 9월 28일에 일본으로부터 강제병합을 당하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맞았다. 한 나라의 침략과 피침이 단순히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능력과 주체성(정체성)의 확립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은 단순히 무력이 앞서서 한국을 침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문화능력인 문력과 무력이 대동아공영권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궁극적으로 실패하였지만 말이다.

일본은 이에 앞서 일본의 근대적 국학이라고 할 수 있는 리가쿠(理學: 주쯔), 코지가쿠(古義學: 진사이), 그리고 코분지가쿠(古文義學: 소라이), 노리나가가쿠(宣長學)를 완성시킴으로써 근대적 국가를 완성했다. 여기서 이들 학문의 내용을 상술할 수는 없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결국 일본지식인들이 동양문화를 서양적 기준으로 자기 나름으로 집대성하고 해석한 것을 토대로 서양의 근대로 들어간 ‘탈아입구(脫亞入歐)’위한 준비적 정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니시다철학의 ‘절대무(無)’는 동양의 선불교의 무(無)사상을 서양철학으로 해석한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통칭되는 일본의 고학(古學)은 주자학의 관념성을 탈피하고 고전의 뜻을 되살리는 것이었는데, 합리적인 천도(天道)는 비합리적인 천명(天命)으로 대체되었고 궁리(窮理)는 능력 면에서 성인과 일반인이 구별되게 되었다. 규범과 자연의 연속성은 끊어졌으며 주자학적 엄격주의를 폐기하여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와 수신제가(修身齊家)도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나누었던 것이다.    

일본은 종교적으로도 노리나가가쿠(宣長學)가 신도(神道)를 중심으로 다른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다 포용하면서 󰡐그것은 모두 그 때의 신도(神道)󰡑라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일본이 종교적 주체성을 갖게 했다. ‘신도는 마음(心)의 바깥에 다른 신(神)이 없으며 다른 이치(理)도 없다󰡑‘인격신을 말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비인격적인 이(理)와 연속적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하며 동서양문화를 통합함으로써 일본이 자연스럽게 근대에 진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였던 것이다.

물론 신도는 나중에 일본 군국주의를 뒷받침하게 되어 일본 패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러한 패망은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비롯된 것이지 신도 자체의 패망은 아니었다. 일본이 전후에 빠른 시일 내에 복구된 것도,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경제대국이 된 것도 근대에 이룩한 일본문화의 힘에서 비록된 것이다.

주자학의 궁리(窮理)의 제한된 성격은 진사이에 있어서 ‘사람의 길󰡑을 󰡐하늘의 길󰡑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소라이에 있어서 정치의 경험적 관찰을 낳게 해주었다. 이것은 성인(聖人)에 대해서 조상신을 대치시킨 노리나가에 있어서도 그대로 발전하였다. 노리나가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 주자학 및 불교, 노장사상의 형이상학적 범주­음양오행, 인과응보였다.

일본의 고학(古學)은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적 인식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길을 열어주었다. 일본 고학의 이러한 일반적인 경향은 맹목적으로 공맹(孔孟)에 의존한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근대 과학문명의 대세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했다.    

오늘의 입장에서 일본이 당시에 이룬 국학과 철학을 평가한다면 서양의 과학문명과 민주주의에 적응하기 위한 ‘가교적인 국고정리사업’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문학적 통합노력은 정치적인 집단과 급기야 군국주의세력에 의해 도구로 이용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인문학 자체에도 서구문명이 내재한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제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음을 볼 수 있다. 일본은 도리어 서구제국보다 더 야만적인 군국주의 파시즘을 생산했던 것이다. 이것이 사무라이 전통의 일본문화의 한계이자, 대동아공영권을 실패로 몰아가게 된 문화적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선비전통의 한국문화는 어떤가. ‘잘 살아보세’라는 염원과 ‘하면 된다’라는 실천철학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경제개발에 성공하고 중선진국에 도달하였지만 아직도 서구의 좌우이데올로기의 종속성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즉 주체적인 몸통, 민족주체의 전통을 확립하지 못하고 좌우날개에 의해 흔들리면서, 즉 반체제와 국론분열과 무질서의 이상기류 속에 국가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제대로 비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주자학의 공맹(孔孟)을 극복하지 못하고, 이에 더하여 서구 이데올로기의 종속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는 조선후기 실학의 실패에 이은 피식민지로의 전락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립국가, 주인나라의 국민이 되는 문화능력, 선진일류국가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아직도 성인(聖人)을 이상적 목표로 교육을 하고 있거나 관념적으로 완전무결한 인물을 정치적 이상형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문명의 시대에 매우 불리한 여건이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안이한 사대적 문화운영을 계속한다면 결코 현실은 이러한 목표와 이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성인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시민을 목표로 교육하고 정치적 인물을 키워가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한국은 필연적으로 시민을 목표로 한 선진국보다도 훨씬 ‘질 나쁜 시민’, ‘위선적인 정치인’을 키우게 될 확률이 높다. 

일본이 19∼20세기 초에 국학과 철학의 정립을 통해 근대화를 달성했다면 오늘의 한국은 어떤가? 아직도 한국의 국학은 고금이 소통되고 있지 않으며, 남북분단 상황과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좌우대립의 와중에 있으며,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정체성, 한국사의 정체성은 확립되지 못하고, 사대식민사관의 논쟁 속에 휘말려있다. 철학에서도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이 백가쟁명하고 있지만 아직도 동서철학과 고금의 철학이 회통된 자생철학이 없다. 따라서 한국은 자생철학의 완성과 함께 사대식민사관 탈피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결국 자생철학의 완성과 그것에 따른 역사서술만이 모든 문제를 풀어줄 실마리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 한국과 일본 사이에 역사전쟁이 발생하면 누가 승리할까?     © 편집부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시대의 전개와 더불어 탈아입구(脫亞入歐)에서 탈구입아(脫歐入亞)를 위한 국민적 과제로 안고 있다. 이러한 때에 동아시아에서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중국과 한국으로 하여금 일제만행을 떠올리게 하는 일본은 현명하지 못하다. 중국도 세계 제2 경제대국으로의 부상과 함께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공자부활운동’을 전개하는 것은 문화적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동북공정’을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한중일 삼국은 그야말로 역사전쟁, 문화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이에 한국은 아시아평화의 정착과 지구촌 시대의 보편적 역사를 위해서 유라시아적 관점에서 한국사를 기술할 필요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영토전쟁이 아니라 한중일 삼국이 공유하는 고대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아시아평화를 달성하고자 함이다.


이상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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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1/03 [17:23]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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