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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터어키 고구려국제학술대회, "터키의 선조 오구즈칸과 칭기즈칸은 고구려 왕족의 혈통"
왜는 고구리의 식민지, 아시아의 지배자 고구려는 고구리로 불러야
 
편집부 기사입력  2015/11/10 [11:11]

  고구려의 기상이 시정구호인 구리시가 후원하고 (사)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이사장 김진만)과 이스탄불문화원, (사)한배달이 공동주최한 제2회 한국·터키 高句麗국제학술대회가 11월 7일(토) 오후에 성황리에 열렸다. 많은 시민·학생들과 역사메니아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열린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준비된 초록집과 기념품이 조기에 동나고 좌석이 모자라 상당수가 서서 경청할 정도로 붐볐다.

▲   250석 좌석이 모자라 서서 경청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룬 한국.터키 고구려국제학술대회                      © 편집부

구리시의회 신동화 의장은 축사에서 터키의 6.25 참전과 2002년 월드컵 3·4위전의 감동을 회상하며 향후 한국·터어키 간에 우호친선이 지속되기를 바란다면서, 본인도 돌궐(터키)와 고구려가 어떤 관계였는지 배우고 싶다면서 학생들과 함께 늦게까지 강연을 경청하기도 했다.

윤호중 국회의원은 고구리는 고씨의 구리라고 운을 떼고는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은 몽구리 인도의 무굴제국은 무구리라고 하면서, ~~스탄이 들어간 중앙아시아 민족은 모두 단군의 후예이며 고구리와는 형제였던 투르크족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상호 존중과 융화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박창식 국회의원은 주몽과 태왕사신기와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역사가 책보다 훨씬 파급력이 크다고 전제하고는, 고구려와 돌궐의 관계도 스토리텔링을 잘하면 동북공정에 대처할 수 있는 좋은 역사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먼저 우리의 역사를 정확히 알아야 세계 속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의 초점은 우리와 서쪽으로 12,000km나 멀리 떨어져있는 터키와 한국이 과연 어떠한 역사적 인연 때문에 서로 형제국이라고 하는 지에 있었다.

후세인 이지트 이스탄불문화원장의 터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소개 후 터키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터어키에서 10년 이상 살면서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느껴보지 못했는데 이것이 ‘피끌림’이라고 하면서, 예전부터 터키 국민들은 한국인을 아주 가까운 형제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우리가 터키의 짝사랑에 화답할 때라고 말하면서, 이번 국제학술대회가 자칫하면 잊고 잃어버릴 뻔 했던 지구상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역설했다.

▲ 발제가 끝나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발제자와 토론자들.                                                                 ©편집부

주몽이 세운 高句麗는 고구려가 아니라 고구리로 불러야
학술계의 노벨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흄볼트상을 4번이나 수상한 경력이 있는 이스탄불대학교의 오스만 세르트카야 교수는 서울대 이용성 교수의 통역을 통해 한국어와 터키어는 친척이라고 설명하면서, 돌궐비문에 뵉클리(bök li)로 새겨진 나라는 ‘맥고리(貊高麗=맥족들이 사는 고구리)’로 지금의 한반도보다 10배 이상 넓은 초원과 사막지대에서 살고 있었다고 하면서, 당시 돌궐은 황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사)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성헌식 학술위원장은 “주몽이 세운 나라 高句麗는 고구려가 아닌 고구리로 불렸다는 중요하고도 확실한 단서”라고 하면서, “나라이름 高句麗를 고구리로 올바르게 불러야 역사가 바로 설수 있다. 구리시가 고구리의 도시를 표방한 것도 이러한 인연 때문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터키의 선조 오구즈칸과 칭기즈칸은 고구려 왕족의 혈통
얼마 전 ‘칭기즈 칸은 고구려·발해인’이라는 책을 출간해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고 20여개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아는 전원철 박사는 족보 연구를 통해 예전부터 터키가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한 이유를 확실하게 밝혔다.


전 박사는 터키의 선조 오구즈칸은 대진국(발해)을 세운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의 4대조가 되며, 또한 대야발의 19대손이 바로 세계의 정복자 칭기즈 칸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아울러 과거 고구려의 영토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뿐만이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나일본부가 아니라 오히려 왜고구려부일 가능성 크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사)한배달 박정학 회장은 올해 광복 70주년이라는 주제에 맞게 일제가 호태왕 비문을 조작해 만든 임나일본부(가야=임나 지방이 일본의 식민지)설은 한마디로 허구라고 하면서, 일제의 소행으로 보이는 글자가 깨어지고 없어진 부분을 복원해보면 “호태왕이 기마병 5만을 보내 왜를 유린하자 왜국이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는 高句麗의 식민지가 되었다.”라고 해설했다.

즉 임나일본부가 아니라 오히려 ‘왜고구리부(왜가 고구리의 식민지)’가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 이유는 <고구리사초략>의 기록에 당시 왜왕이 인덕으로 교체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사)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 김진만 이사장은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우리의 역사 고구려에 대해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많이 발표되었고, 터키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보도되어 향후 한국·터키간의 우호증진 및 학술교류의 확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많은 성과를 낸 한국터키 고구려국제학술대회를 마치고 기념촬영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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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1/10 [11:11]  최종편집: ⓒ greatcorea.kr
 
왜국의 식민지 강역 ㅎㄱㅇ 15/11/16 [11:57] 수정 삭제
  동경을 경계로 해서 그 북쪽은 고구려의 영토였고, 그 남쪽은 기원전후 초기는 가야의 영토였다가 후에 백제의 영토로 된 것으로 보임. 후에 고구려와 백제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난 후 한동안은 처음부터 백제의 왕족에 의해 다스려지던 남부지역의 세력이 왜의 통치 주체세력(덴노)으로 남았고 식민지지배에 자율성을 많이 줬던 고구려지역은 호족세력으로 변해서 왜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다 무신 세력이 구데타를 해서 막부정권으로 통치권은 넘어가고... 왜의 통치 주체세력(덴노)이라 해도 사실 막강한 중앙집권적인 권력은 갖지 못했고, 그냥 허울뿐인 국왕으로 있었고, 또 그렇기 때문에 왜의 왕조는 현재까지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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