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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같이 늘어난 만리장성의 허구 (6부)
대륙을 호령한 호랑이를 애완용 고양이로 바꾼 중국과 일제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5/12/04 [11:36]

  고무줄 만리장성의 허구를 밝힌다.

  만리장성은 그야말로 중국의 상징이요 자존심 그 자체이고, 중국 동북공정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러한 만리장성의 허구에 대해 밝힘으로써 조선과 고구려의 역사강역이 과연 어떠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1) 진시황 만리장성의 허구
  진시황은 39세인 B.C 221년 중국의 전국시대를 통일해 황제가 되었으며, 11년간 재위하다 B.C 210년 49세로 사망했다. 진시황이 장성을 쌓기 시작한 때는 B.C 214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떠났던 노생이 돌아와 ˹천록비결(天籙秘決)˼을 바치며 “도참설에 이르기를 진나라를 망하게 하는 자는 호(胡)입니다”라고 아뢰자, 진시황은 이 호를 북쪽 흉노로 알고 장성의 보강을 명령한다.

이에 B.C 214년부터 몽념장군이 장성을 쌓다가, 4년 후 진시황이 죽자 차남 호해가 형을 죽이고 황제로 등극하여 장성축조가 중단된다. 이어 최초의 통일제국 진나라는 이내 망하고, 황우와 유방이 나타나 천하의 주인을 놓고 자웅을 겨루게 된다. 사연이 이와 같은데 4년 만에 서쪽 우루무치에서 동쪽으로 한반도 황해도까지 만리가 넘는 장성을 과연 쌓을 수 있었을까? 

▲ 고무줄처럼 임의대로 늘어난 중국의 진장성     © 편집부

  2) 진장성의 위치
  『사기』몽염열전에 “진시황이 천하를 병합하고 몽염 장군과 30만으로 하여금 북쪽 융적을 몰아내고 하남을 빼앗아 장성을 쌓았다. 서쪽 임조에서 일어나 동쪽은 요동까지이다. 길이가 만 여리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의 하남(河南)은 황하의 남쪽이 아니라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진장성의 서쪽 임조와 동쪽 요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① 서쪽 임조의 위치: ˹중국백과사전˼에서 임조의 역사연혁에 “진나라 때 적도현을 설치해 롱서군의 치소로 했다. 서진 말기에 적도군의 치소로 했다. 당나라 때 적도군 임주, 송나라 때 희주, 균이 적도군의 치소였다. 청 건륭제 때 주를 바꿨다. 민국 초기에 적도현으로 했고, 후에 임조로 바꿨다. 적도라고 한 이유는 이 땅에 적인들이 다니는 길이라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1929년 적도현을 임조현으로 바꿨는데, 그 땅의 임조하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하여 롱서군=적도군(현)=임조현임을 알 수 있다.   
 
▲ 산서성 남단과 황하북부 하남성에 있던 진장성이 고무줄처럼 늘어난 상태     ©편집부

   ② 진장성의 동단 맹강녀곡장성: 『사기』몽염열전에 기록된 진장성의 동쪽 끝인 요동은 바로 중국 4대민화의 하나인 맹강녀(孟姜女)의 설화가 있는 곳이다. “맹강녀가 결혼한 첫날밤에 난데없이 병사들이 들어와 남편을 장성축조장으로 끌고 간다. 남편으로부터 소식이 끊기자 궁금해진 맹강녀는 장성축조장으로 남편을 직접 찾아간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장성 안쪽에서 남편의 시신을 발견하고는 대성통곡을 하고 만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진시황이 그녀의 통곡소리를 듣고 왔다가 맹강녀의 미모에 반해 청혼을 하게 되고, 맹강녀는 진시황에게 탈상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탈상이 끝나자 맹강녀는 높은 바위에 올라가 진시황의 폭정을 성토하고는 떨어져 죽는다. 이후 맹강녀는 절개를 지킨 열녀로 그 이름을 남기게 된다.”는 내용이다.
 
▲ 하남성 위휘현에서 역사왜곡을 위해 하북성 진황도시 산해관으로 옮겨진 맹강녀     ©편집부

  그 장성이 바로 진장성의 동쪽 끝인 맹강녀곡장성(孟姜女哭長城)이며, 그 장성이 있는 곳이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 위휘현인 것이다. ˹중국백과사전˼의 자료에 “맹강녀가 위휘지 산단장성까지 남편을 찾아가자 천지가 감동해 장성이 무너져 남편의 시신이 노출되자 통곡했다. 지금의 위휘지 산향왜뇌촌 일대에서 아직도 전해지는 고사이다. 산 위에 가면 맹강녀가 곡을 하고 장성이 무너진 누적석을 볼 수 있다. 하남성 신향시에는 맹강녀하와 맹강녀길와 맹강녀다리 등의 명칭이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원래 하남성 위휘현에 있던 맹강녀 관련 유적을 하북성 동단 진황도시에 만들어놓고 그곳에 있는 장성을 진시황 때 쌓은 장성이라는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맹강녀의 남편이 첫날밤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집에서 끌려가 수천 리 밖에 있는 하북성 동단 산해관에 있는 장성축조에 동원되었다는 이야기가 상식적으로 성립될 수 있는지? 또 그곳까지 여자 혼자서 남편을 찾아갔다는 말이 과연 가능한지? 
 
▲ 산서성 남단 황하변 중조산(갈석산)에 있는 실제 진장성     © 편집부
▲ 하남성 위휘현에 있는 실제 맹강녀곡장성(진장성)     © 편집부


 3) 북경 만리장성의 허구
  지금까지 중국역사 최고의 자부심으로 치부되던 만리장성(동쪽 산해관에서 북경을 지나 서쪽 감숙성 자위관까지 가는 장성)은 진시황이 쌓은 장성이 아님이 명백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장성을 누가 언제 쌓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산해관 현판의 방향과 각산장성의 봉화대 위치, 치양식, 화살구 방향 등으로 볼 때 이 장성은 서쪽에 있는 한족을 방어하기 위해 동이족이 쌓은 장성임이 확실하다. 

▲ 산해관장성을 쌓은 장본인은 동쪽 사람.     © 편집부

  진시황이 쌓은 진장성은 산서성 서남단 황하변에 있는 수양산에서 시작되어 갈석산(현 중조산)의 북쪽에 축성되었으며, 동쪽으로 북부 하남성 위휘시까지 이어지는 약 천리의 장성으로 당시 중국과 우리 민족과의 경계였다. 진장성의 북쪽은 당시 고구리의 전신인 북부여의 해모수단군이 통치하던 강역이었던 것이다. 그 이전 배달국과 조선의 강역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중국은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자행했고, 동북공정까지 추진하는 것이다.

▲ 약 천리도 안 되는 진장성이 역사왜곡을 위해 만리가 넘게 늘어난 상황도     ©편집부


  나오는 말

  고구려가 요서였던 산서성 남단을 지나 서쪽으로 어디까지 갔는지에 대해서는 감숙성 돈황석굴에서 고구려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서쪽으로 감숙성까지는 고구려의 직할령으로 보이며, 광개토태왕 비문에 호태왕이 토곡(土谷)을 순시했다는 문구로 보아 티베트와 청해성도 고구려가 통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사실은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자 티베트, 청해성, 위구르, 내몽골 등이 건륭제 때 청나라의 우산 속으로 편입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돌궐이 조상인 중앙아시아와 터어키에서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대제국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 감숙성 돈황석굴에서 발견된 고구려벽화의 의미는?     © 편집부

  고구려는 엄청나게 큰 영토를 가지고 있던 대제국이었다. 역사적 사실이 이와 같음에도 주류사학계는 일제의 영향으로 (단군)조선은 신화이고, 반도사관으로 고구려의 영토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였다고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에게 우주처럼 광대한 꿈을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민족의 군화발에 찌그러진 축소지향의 잘못된 식민지 역사관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라는 큰 호랑이를 애완용 고양이로 만든 건 바로 중국과 일제였다. 명나라의 속국인 조선왕조는 스스로 우리의 위대한 역사를 축소시켰으며, 일제는 조선을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해 위대했던 우리의 민족사를 말살시킨  것이다. 그렇게 변조·조작된 역사가 광복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사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는 실정이다. 이 나라 국사교과서가 바뀌는 날이 빨리 와야 위대했던 민족의 영광이 재현되고 민족의 희망이 보일 것이다.             <이상>

▲ 대륙을 호령하던 호랑이를 애완용 고양이로바꾼 중국과 일제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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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04 [11:36]  최종편집: ⓒ greatcorea.kr
 
요동,요서는 북쪽에 위치한다. 아리랑 15/12/06 [12:11] 수정 삭제
  《史記•燕世家》燕築長城,自造陽至襄平,置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秦二世發闾左戍 漁陽 即此, 燕의 장성 축조는 造陽부터 襄平이고,上谷、漁陽、右北平、遼西、遼東郡설치하고, 秦二世는 빈민을 증발하여 漁陽에 주둔하게 한곳이 이곳이다.
【索?】:案:太康地記“秦塞自五原北九里謂之造陽. 太康地記“에서 말하기를 秦의 장성은 五原북쪽 9리를 造陽이라고 한다. ..

五原(九原)는 현 섬서성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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