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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황오제 요임금은 단군왕검에게 항복했다 (5부)
순임금은 동이족으로 단군왕검이 파견한 중국총독
 
편집부 기사입력  2016/08/07 [17:32]
<단군세기>에 “ 단군왕검 정사 50년(B.C 2284) 홍수가 크게 나서 백성들이 쉴 수가 없었다. 단제께서는 풍백(風伯)에게 명하여 물을 다스리게 하고 높은 산과 큰 강을 평정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였으니 우수주(牛首州)에 그 비석이 있다.
무오 51년(B.C 2283) 임금께서 운사인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三郞城)을 짓고 제천의 단을 마리산(摩璃山)에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 그것이다.
갑술 67년(B.C 2267) 왕검께서는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도산(塗山)에서 우사공(虞司空=순)과 만나게 하였다. 오행치수의 방법을 전하고 나라의 경계를 정하니 유주(幽州)와 영주(營州)가 속했으며, 회대(淮岱)지방의 제후를 평정하여 분조(分朝)를 두고 다스렸는데 우순(虞舜=순임금)에게 그 일을 감독케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해설) 위 홍수에 대한 기록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하찮은 기록이 아니라 아주 중요한 기록이다. 왜냐하면 당시 홍수는 단군왕검이 다스리던 조선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중국의 4번째 삼황오제인 요임금이 다스리던 땅에서도 동시에 큰 홍수가 났는데, 왕검은 이 홍수를 슬기롭게 극복했으나 요임금은 홍수를 다스리지 못해 민심이 흉흉해져 곧 그 땅을 단군왕검에게 잃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우수주(牛首州)는 춘추시대 정읍 즉 하남성 통허현 서북쪽으로 지금의 황하변 정주 근처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을 것으로 보인다. “牛首(우수) : 春秋郑邑,在今河南通许县西北,《左传》桓公十四年,宋人以诸候伐郑,取牛首,《杜注》郑邑,《九域志》咸平县有牛首城。(함평현=통허현)”

당시 홍수가 발생한 이유는 북에서 남으로 흐르던 황하와 분하가 만나기 직전에 있는 맹문(孟門)산이 황하의 물길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황하의 물의 양이 많을 경우 막혀서 범람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맹문에서부터 정주까지의 황하변 주변이 당시 피해침수 지역이었던 것이다. 

▲ 북에서 남으로 흐르던 황하를 가로막고 있는 맹문산으로 인해 하류 정주까지 홍수 피해지역이었다.    © 편집부

당시 홍수가 요임금의 땅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는 말은 왕검의 도읍지 아사달과 요임금의 도읍지 평양이 서로 가깝게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인 것이다.  당시 요임금의 도읍지는 평양(平陽)으로 지금의 산서성 남부에 있는 임분시이다. 중국은 그곳 동쪽에 있는 큰 무덤을 요릉(堯陵)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실제 요임금의 무덤은 하남성과 산동성이 만나는 지역인 산동성 하택시 견성현(菏澤市 鄄城县)에 있다. 필자는 임분시 요릉은 단군왕검의 릉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B.C 2283년에 참성단(塹城壇)을 쌓았다는 마리산(摩璃山)은 지금의 강화도 마니산(摩尼山) 참성단(塹星壇)과는 다른 곳이다. 강화도 마니산은 우리 민족이 중국대륙에서 쫓겨 들어온 고려 후기나 조선왕조 때 새로 조성한 천제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단군왕검 때의 마리산이 어디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아마 단군조선의 도읍지였을 가능성이 큰 산서성 태원 북쪽에 있는 산서천지 부근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하화족의 왕통이 동이족 순임금에게 넘어간 이유 

황제헌원의 계보로 이어지던 하화족(夏華族)의 왕통이 왜 4번째 삼황오제인 요임금 다음에 느닷없이 동이족인 순임금이 즉위하게 되는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은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의 기록에 있다. 황제헌원에서 이어진 고대중국의 왕통이 이때부터 끊기고 조선의 제후국이나 다름없는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로 이어지는 동이족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원문) "단군왕검은 제요도당(帝堯陶唐=요임금)과 나란히 군림했다. 요임금의 덕이 날로 쇠퇴하자 서로 땅을 다투는 일을 쉬지 않았다. 천왕(天王=단군)은 마침내 우순(虞舜=순임금)에게 명하여 땅을 나누어 다스리도록 병력을 파견하여 주둔시키더니 함께 요임금의 당(唐)나라를 치도록 약속하니 요임금이 마침내 힘이 딸려 순임금에 의지해 생명을 보전하고 나라를 양보하였다. 이에 순임금의 부자 형제가 다시 돌아와 같은 집에 살게 되었으니 대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공경스럽게 효도함을 앞세우게 되었다.

9년 홍수를 당해 그 피해가 만백성에 미치니 단군왕검은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순임금과 약속하고 초청하여 도산(塗山)에서 만났다. 순임금은 사공인 우(禹:하나라 시조)를 파견하여 조선의 오행치수(五行治水)의 법을 배우게 하니 마침내 홍수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에 우를 낭야성(琅耶城)에 두어서 이로써 구리분정(九黎分政)의 뜻을 정했다. 바로 <서경>에서 말하는 '동순(東巡)하여 망제(望祭)를 지내고 마침내 동후(東后)를 찾아뵙다.'라는 기록이 바로 이것이다. 진국(辰國)은 천제의 아들(=단군)이 다스리는 곳이다. 고로 5년마다 순수하는데 낭야에 한번씩 이른다. 순의 제후는 때문에 진한(辰韓)에 조근(朝覲=알현)하기를 네번씩 하였다.”(인용 끝)
 
단군왕검이 우순(=순임금)에게 요임금을 치라고 명한 것은 순임금이 단군왕검의 신하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요․순을 태평성세를 이룩한 성인이라고 하며 자기네 조상인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넣었으며, 요임금이 순임금의 인간됨을 보고 스스로 왕위를 넘겨주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조선에게 굴복하여 어쩔 수 없어 왕위를 동이족인 순임금에게 잃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당시 요임금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다. 맏아들 단주가 거만하고 포악하고 항상 게으르고 놀기만 좋아해 요임금은 단주를 남방으로 추방하여 제후로 삼았는데, 순임금에게 왕위가 넘어간다하자 단주가 반란을 일으켜 부자간에 전쟁이 일어나는데 요임금이 두 번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한다. 부자간에 전쟁을 했다는 것은 정권쟁취 이외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맏아들이 방탕하면 다른 9명의 아들 중 똑똑한 아들에게 왕위를 넘길 수도 있었으나 혈통이 전혀 다른 동이족인 순임금에게 왕위가 넘어갔다는 것은 뭔가 외부의 압력이 작용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자의가 아니라 단군왕검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요임금은 순임금을 사위로 삼아 왕위를 양위했다고 하는데, 박제상의 <부도지>에서는 요임금이 두 딸로 미인계를 써 순임금을 유혹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죽서기년>에서는 순이 군사를 동원해 요를 폐위 감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 산서남부 임분시 동쪽에 있는 요릉은 가짜가 확실하다. 혹 단군왕검의 능일 가능성이 크다  ©편집부
▲ 산동성 서쪽 끝 견성현에 있는 고림 요릉이 진짜 요임금의 무덤이다. 따라서 요는 쫓겨난 것이 확실하다.     ©편집부
또한 <태백일사>의 위 내용은 요순의 치세가 기록되어 있는 상서순전(尙書舜典)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행하여 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동쪽의 후를 알현하고 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 잡았으며 악률과 도량형을 일치시키고, 오례와 오옥 세 가지 비단, 두 가지 산 짐승, 한 가지 죽은 짐승 및 예물을 정리하였다. 다섯 가지 옥기는 예가 끝난 후 돌려 드렸다.

(원문) 月東巡守至于 垈宗柴望秩于山川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 脩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卒乃復)”이 그것이다. 중국은 동후(東后)를 동쪽에 있는 제후로 해석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으로 사근동후의 근(覲)자는 아랫사람이 웃어른을 찾아뵙는 뜻이므로 당시 동후는 동쪽의 상제(上帝)인 단제(檀帝) 즉 단군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원문에 나오는 낭야성(琅耶城)은 아래 <수경주>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남성과 산동성과의 경계에 있던 발해(渤海=대야택) 부근의 하남성에서 찾아야 하는데 현재 중국에서는 이를 산동성 청도로 지명을 옮겨 놓았다. (琅邪台:《水经注》琅邪台在渤海之间琅邪之东,《注》按秦始皇二十八年,作琅邪台,立石刻,颂秦德 번역: 낭야대는 발해와의 사이에 있는 낭야의 동쪽에 있다. 진시황28년 낭야대를 만들고 석각을 세우고 공덕을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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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07 [17:32]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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