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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 고국원제 (8부)
고국원제가 전사한 곳은 평양성인가? 한산성인가?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08/21 [18:25]

고국원제가 352년에 백제 근초고왕과의 천 전투지인 관미령에서 대승을 거둔 이후, 고구리는  17년간 벌어진 백제와의 4차례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다. 그러나 백제에서 또 다른 영웅인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 태자가 전쟁에 참여하면서부터 고구리는 백제에게 급격하게 밀리기 시작했다.    

369년 기사년 정월에 백제는 고구리에게 빼앗겼던 이진성(伊珍城)을 5년 만에 수복했으나, 이 때 고구리 군사들이 많이 죽고 상했다. 최체(最彘) 태수 우눌이 상장(上將)으로서 선극을 포용하지 못하고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패하고 만 것이었다. 이에 고국원제가 크게 노해 우눌을 불러들이고 람풍으로 하여금 상장을 대신하게 했다. (최체의 위치는 (6부) '평화시대 내치에 힘쓴 성군 고국원제' 참조)    

백제는 승승장구하면서도 병사의 수를 늘려 마침내 곧 수곡(水谷)성까지 탈취할 참이었다. 백제 장수 막고해는 용병을 잘할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신임도 얻고 있었는데, 반면에 고구리 군은 힘을 씀에 어딘가 틈이 있고 싸울 뜻도 없었기에 패배가 예견되었다. 5월에 분기탱천한 백제군이 수곡성을 깨려고 진군했을 때 근구수 태자가 선봉이 되어 진영을 이끄니 병사들 모두 “태자께서 항시 이러하시거늘 우리들은 어찌해야 하겠는가!”라며 죽기로 싸우기를 원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은 고국원제가 직접 친정하기로 결심하니 태보가 극력 말려도 듣지 않았다. 직접 친위군 2만을 추가로 징발해 남쪽으로 내려가 대암산을 거점으로 삼고 치양(雉壤)으로 나아가, 진영을 치고 북한산을 포위하니 백제는 대적하지 못하고 성을 비우고 물러갔다. 이에 고구리군은 승승장구하며 멀리 있는 이진천(伊珍川)까지 이르렀다.

치양(雉壤)에 대해서는 <중국고대지명대사전>나와 있지 않으나, 치양(雉阳)현은 하남성 서부에 있는 평정산(平頂山)시 보풍(寶豊)현 남쪽으로 나오며, ()현은 하남성 서남부에 있는 남양(南陽)시 남소(南召)현 남쪽으로 나타난다. 분명 고구려와 백제가 싸운 치양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백제 땅 하남성 서부에 있는 치현(남소)과 치양현(보풍), 반도사관에 의한 백제전성기 지도              © 편집부

그러나 날씨가 무더워 산에 뱀·호랑이·범들이 많았으며 양군 모두에게 역병이 돌았기에 할 수 없이 산 밑에 진을 치고는 민가를 약탈하며 가을이 되기를 기다렸다. 고구리가 약탈했다는 문구로 미루어 보아 치양과 이진성 일대는 원래 고구려가 아니라 백제의 영역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산에 호랑이와 범이 많았다는 것은 산이 깊었다는 의미이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공교롭게도 하남성 보풍(치양)과 남소(치)는 평야와 산이 만나는 지역이다.    

9월, 백제가 해로(海路)로 군사를 보충하고는 치양을 습격하자, 고구리군은 크게 피로해 죽는 자들이 끊이지 않는데다가 호랑이 피해도 많았다. 이에 고국원제는 날래고 건장한 자들을 뽑아 호랑이를 산으로 쫒아내도록 했다. 백제군은 고구리군이 지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새로이 온 정예군을 동원해 갑자기 치니 고구리 군이 크게 무너져, 고국원제는 단기로 무산(撫山)으로 피해 들어갔다.     

비가 그치지 않으니 날씨가 갑자기 겨울같이 추워졌고 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고국원제는 좌우를 돌아보며 “짐이 태보의 말을 듣지 않았다가 이렇게 패하게 되었소.”라고 말하고는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돌리라고 명했다. 10월, 낙랑공 주영이 치양에서 종군했다가 병이 들어 죽으니, 상은 그의 충성에 감사하며 후하게 묻어주었고 아직 젊은 그의 처는 점선(秥蝉)태수에게 개가토록 했다.     

점선(黏蝉)은 <한서지리지>에 유주의 낙랑군에 속한 현으로 우리에게는 일명 ‘점제현 신사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지명이다. 1913년 9월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 때 평안남도 용강군 해운면에서 ‘秥蟬’이라는 비문이 있는 비석이 발견되었는데, 일제식민사학은 이를 근거로 낙랑군 점선현의 위치를 평안남도 용강군으로 비정했다. 물론 반도사관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비석을 몰래 옮겨다 놓은 것이었다. 
 
▲ 원래 황하 북쪽에 있었던 낙랑군 점선현을 평남 용강군으로 비정하기 위해 옮겨진 점선현신사비     © 편집부
     
위와 같이 상세하게 기록된 <고구리사초략>의 내용이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에는 “고국원왕 39년(369) 가을 9월, 왕이 군사 2만을 보내 남쪽으로 백제를 공격했으나 치양 전투에서 패배했다.”라고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삼국사기 백제국본기>에는 “근초고왕 24년(369) 가을 9월에 고구려 왕 사유가 보·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에 와서 진을 치고 군사를 나누어 우리 민가를 침범하고 약탈했다. 왕이 태자에게 군사를 주어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게 하여 그들을 급히 쳐부수고 5천여 명의 목을 얻었으며, 노획한 물건들을 장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겨울 11월에 한수의 남쪽에서 군대를 크게 사열했는데, 깃발들은 모두 황색을 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국원제는 41년(371) 신미 정월에 연나라를 쳐서 지난날의 수모를 설욕하고자 우신을 정서(征西)대장군으로 삼고 10만 병력을 이끌게 했고, 주요 태수들의 인사를 단행했다. 10월, 백제가 고구리 군사들이 서쪽으로 움직여 정벌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허를 찔러 공격해왔다. 낙랑 또한 대거 쳐들어와 양주가 힘껏 싸우다 죽었다. 백제의 근구수 태자가 북한성을 공격해오자 고구리가 한수(漢水)에 복병을 깔았다가 이를 크게 깰 무렵, 근초고왕이 손수 3만 정병을 이끌고 와서 태자를 도우니 백제 군사들의 사기가 크게 진작되었다.     

고구리 군대는 서쪽을 정벌하기 위해 요동에 집결되어 있느라, 낙랑 및 백제 근초고왕과 근구수 태자의 공격을 나머지 군사로 나누어 막기에는 병력이 모자랐다. 이에 고국원제가 직접 친위군을 이끌고 달려가 선봉에 서서 장수와 병사들을 독려하니 모두가 잘 따랐다. 한성(漢城)의 서산(西山)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불운하게도 고국원제가 흐르는 화살 두 개를 맞았다. 하나는 어깨에 다른 하나는 가슴에 맞았다. 고국원제는 힘껏 화살을 뽑아내고 다시금 출진하려 했으나, 주위에서 극력 말렸다.     

해명은 고국원제의 상처가 심각할 정도로 위중하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를 숨기고 군사를 불러들여 진지를 굳게 지키게 했으며 선극과 람풍을 시켜 힘껏 싸우도록 했다. 해명이 옥체를 철저히 호위하던 중 고국원제는 극심한 고통 끝에 붕어하고 만다. 죽음을 앞두고는 입에서 해후와 태자비 천강을 부름이 끊이지를 않았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도 적이 알지 못하도록 장군의 죽음을 숨겼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외부로는 비밀로 하여 발상하지 않고 말을 몰아 왕천(王川)으로 가서 급히 국부 해현에게 알리니, 해현과 해후가 고국원제를 도성으로 모시고 들어가 발상했다. 동궁 구부(丘夫)가 천룡궁에서 즉위해서는 해후를 태후로, 국부 해현을 조왕(祖王)으로, 이련(고국양제)을 태제로 했다. 새 황상(소수림제)이 원수를 갚고자 친히 백제를 정벌하려 했으나, 조왕과 태후가 서쪽의 일이 더 중요하다며 말렸다고 한다. 
      
▲ KBS 드라마 근초고왕에서 고국원제가 화살에 맞기 직전 평양성에서 지휘하는 모습     © 편집부

<삼국사기 백제국본기>에는 “근초고왕 26년(371), 고구려가 군사를 동원해 공격해왔다. 왕이 이를 듣고 패강가에 복병을 배치하고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불시에 공격하니 고구려 군사가 패배했다. 겨울, 왕이 태자와 함께 정예군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침입해 평양성을 공격했다. 고구려왕 사유가 필사적으로 항전하다가 화살에 맞아 사망하자,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났다.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고구리사초략>에는 고국원제가 백제의 도성이었던 한성의 서산에서 싸우다 전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고구리의 평양성을 공격하던 중 고국원왕이 화살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어느 기록이 맞는지 확정하기는 쉽지 않으나,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으로 볼 때 백제의 한성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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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21 [18:2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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