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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 능은 산서성 임분시에 있는 가짜 요임금 무덤? (7부)
단군왕검이 파견한 중국총독 순임금이 다스린 유주는 산서성 남부 일대
 
편집부 기사입력  2016/08/24 [10:45]
<단군세기> 1세 단군왕검 재위 93년
경자 93년 (B.C 2241) 나라 안에는 큰 모임이 있었으니 10월 상달이면 하늘에 제사지내고 백성들 모두 기쁨에 넘쳐서 환호하며 스스로 즐겼다. 이로부터 단군님의 교화는 온 누리를 가득 덮어서 멀리 탐랑(耽浪)에까지 미쳤으며 가르침은 점차로 널리 퍼져갔다. 이에 천하의 땅을 새로 갈라서 삼한(三韓)으로 나누어 다스렸으니 삼한은 모두 5가 64족을 포함하였다.
 
이해 3월 15일 단군께서 봉정(蓬亭)에서 붕어하시니 교외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장사지냈다. 이에 백성들은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신 듯 단군님의 기를 받들어 모시고 아침저녁으로 함께 앉아 경배하며 생각하여 마음속에서 잊지 못하더라. 이에 태자 부루(扶婁)가 새로 단군이 되었다. 

1) 조선 때는 10월을 한해의 시작인 상월(上月)로 했으며, 하늘에 제사지내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을 거행했다. 이러한 제천의식은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동예의 무천(舞天)으로 이어져 내려온다. 우리 민족은 천손민족이기 때문에 고려 때까지 하늘에 제사를 올렸었다.
 
그러나 중화모화사상에 물들은 조선왕조 때 사대주의 유학자들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세조 때 잠시 부활되었고 이후 명나라의 압력으로 중단되었으나, 1897년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원구단을 세워 하늘에 제사를 올리게 된다. 이후 일제는 하늘에 올리는 제사는 천황(天皇=일왕)만이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원구단을 파괴한 후 아직까지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위에 오르면서 하늘에 제사지냈던 원구단의 모습. 지금은 없어지고 그 그 자리에 조선호텔이 서 있다.     © 편집부

2) 삼한은 진한(辰韓), 마한(馬韓), 번한(番韓)으로 나누었으며, 진한은 직접 천왕(단군)이 통치했으며, 달지국(達支國:일명 白牙岡)이 도읍인 마한(부단군)에는 웅백다(熊伯多)를 봉했고, 험독(險瀆:일명 왕검성)이 도읍인 번한(부단군)에는 치우천왕의 후손인 치두남(蚩頭男)을 봉했고 겸직하여 우(虞:순임금)의 정치를 감독케 하였다. 즉 순임금은 조선의 부단군인 번한의 통제를 받아 중국에 파견된 중국총독(中國總督)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에 “치두남이 경자년에 요중(遼中)에 12개의 성을 쌓았으니 험독(險瀆), 영지(令支), 탕지(湯池=안시), 통도(桶道), 거용(渠鄘), 한성(汗城). 개평(蓋平), 대방(帶方), 백제(百濟), 장령(長嶺), 갈산(碣山), 여성(黎城)이 그것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위 문구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조선 때 이미 백제라는 지명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온조가 세운 백제(百濟)라는 국호가 백가제해(百家濟海)를 줄인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현토군에 속한 고구려(高句驪)현이라는 지명에서 가져온 고구리(高句麗)처럼 백제라는 지명에서 국호를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백제는 산서성 남부에서 출발한 나라였다.

여기서의 요중(遼中)은 바로 유주(幽州)를 말하는 것으로, 험독과 탕지(=안시)는 요동군, 영지와 개평은 요서군, 대방과 여성은 낙랑군, 거용(渠鄘)이 居庸이라면 상곡군에 속한 현임을 <한서지리지>를 통해 알 수 있다. 갈산=갈석산으로 북평군과 요서군과 낙랑군에 걸쳐있는 지금의 산서성 남단에 있는 중조산(中條山)이며, 통도와 한성과 백제와 장령은 위치미상이다.
 
이 지역은 순임금이 다스린 유주와 중복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순임금의 도읍을 포주(蒲州)라 하는데, 이곳은 바로 요서군의 땅으로 조선의 제후국이었던 고죽국(孤竹國)이 있던 곳으로 지금의 산서성 남부 운성시에 속한 영제시 일대였다. 

3) 5가(五家)는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豬加), 구가(狗加), 양가(羊加)로 보이며, 64족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광대한 영토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 중국이 56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은 64족이니 통치강역이 중국 대륙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라는 것을 은연 중에 나타내는 문구이기 때문이다. 

4) 음력 3월 15일은 어천절(御天節)로 단군왕검께서 붕어하신 날이다. 조선 때 천왕의 제위는 장자승계의 원칙이나, 태자(직계)로 후사가 이어지지 않을 경우 가까운 종친 중에서 추대해 승계한 것으로 보인다.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5대 태우의환웅은 1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맏이를 다의발환웅이라 하고 막내를 태호라 하니 복희씨라고도 한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배달국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5) 필자는 단군왕검이 봉정에서 붕어해 교외로 10리쯤 떨어진 곳에 조성한 능이 바로 지금 중국에서 요임금의 능이라고 선전하고 있는 산서성 임분시 동쪽 10리에 있는 무덤으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진짜 요임금의 무덤은 산동성 견야현에 있기 때문이다. 
 
부도지 제17장에는 “도요가 천산의 남쪽에서 일어나는데 일차로 출성한 사람들의 후예이며 (중략) 스스로 제왕의 도를 주창하므로 소부와 허유 등이 심히 꾸짖고 거절했으며, (중략) 후대에 임검씨(왕검)가 여러 사람을 이끌고 부도를 나갔기 때문에 그 비어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그를 습격하니 묘예가 마침내 동.서.북의 삼방으로 흩어졌으며, 요가 곧 9주의 땅을 그어 나라를 만들고 당도를 세워 부도와 대립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부도가 바로 요임금의 도읍이라고 하는 평양(平陽)으로 지금의 산서성 남부에 있는 임분시이다. 
 
졸지에 요임금에게 부도를 잃은 단군왕검은 바로 아사달로 옮겨가 나라를 세우니 이가 곧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나라인 조선이었다. 훗날 단군왕검은 순임금을 파견해 요임금을 굴복시키고 왕위를 빼앗고는 도읍을 포주로 옮기게 된다. 즉 부도가 다시 조선의 땅이 된 것이다. 따라서 단군왕검이 붕어하자 잃었다가 되찾은 옛 도읍 부도에 장사지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 산동성 서쪽 끝 견성현에 있는 고림 요릉이 진짜 요임금의 무덤이다.     ©편집부
▲ 평양은 요임금의 도읍으로 우리의 옛 부도이다. 명조는 순임금의 무덤이고, 포주는 순임금의 도읍이다. 산서성 임분시 동쪽 10리에 있는 무덤은 단군왕검의 능일 가능성이 크다                                            ©편집부
▲ 산서성 남부 임분시 동쪽에 있는 가짜 요릉은 단군왕검의 능일 가능성이 크다     ©편집부



2세 부루단군 재위 58년
신축 원년 (B.C 2240) 여러 왕(諸汗)들의 잘잘못을 살피시고 상벌을 신중히 하였으며 도랑을 파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며 농사짓고 뽕나무 심을 것을 권장하였다. 또 기숙사를 설치하여 학문을 일으키니 문화는 크게 진보하여 그 명성이 날로 떨쳐졌다.
 
제순유우(帝舜有虞:순임금)가 유주(幽州)와 영주(營州)의 두 주를 람국(藍國)의 이웃에 두었기 때문에 단제께서 병사를 보내어 이를 정벌하여 그 왕들을 모두 다 쫓아내시고, 동무와 도라 등을 보내어 그곳의 제후로 봉하여 그 공을 표창하였다.  

6) 조선이 여러 왕들을 거느린 것으로 보아 단군은 연방대제국의 천제(天帝)였음이 분명하다. 

7) 유주와 영주는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 일대의 행정구역을 말한다. 이 유주가 산서성 남부라는 사서와 유적의 명확한 근거는 황하 굴곡지점에서 발견된 고죽국의 왕자 백이.숙제의 묘이다.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유주는 요서군 등 10개 군으로 구성되어 있는 행정구역이고, 요서군에는 14개 현이 속해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인 영지현을 설명하면서 “令支,有孤竹城(영지현에 고죽성이 있다)”라는 문구가 있기 때문이다. 영지현은 지금의 산서성 운성시 서부 황하변에 있는 영제(永濟)시를 말한다.
 
8) 중국통사 참고자료 고대부분(中國通史參考資料古代部分)-4에 따르면, “람수는 산서성 둔류현 서남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장으로 들어간다(蓝水,源出於山西屯留县西南,东流入漳。)”라는 문구가 있으며, 보다 상세한 자료로는 아래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나오는 “강수(絳水)는 산서성 동남부 둔류현을 흐르는 강”이라는 설명이 있다.
 
(강수) 산서성 둔류현 서남 80리 반수산 남쪽에서 나와 동으로 로성현 경계와 만나는 장촌까지 흘러 장수로 들어간다. <수경주>에서는 진수라 한다, <청일통지> ‘수경주’에 강수라고 있는데 무람수라 하는데 그 물길이 모두 같다. 다른 이름으로 진수라 한다. ‘위서지형지’에는 강수와 람수가 있는데 물길이 같다. 즉 강수=람수이다.
绛水 : 源出山西屯留县西南八十里盘秀山之阴,八泉涌出如珠,合而东流,至潞城县界交漳村入漳,水经注谓之陈水,《清一统志》水经注有绛水而无蓝水,其绛水所行之道,皆今蓝水也,而别有陈水,则今绛水所行之道也,与今府县诸志不合,惟魏书地形志有绛水,又有蓝水,与今水道相同。
 
또한 <한서지리지>의 설명에 따르면 둔유(屯有)현은 낙랑군에 속한 현이고, 낙랑군은 유주(幽州)에 속한 군이다. 위 둔유의 留자가 한서지리지에 언급된 有자와 서로 다르나, 같은 지명일 가능성이 높은 이유는 둔유가 속해있는 낙랑군이 속해있는 유주가 바로 황하북부 하남성과 산서 남부이기 때문이다.
 
▲ 유주에 속한 10군과 람국의 위치                                                                                      © 편집부

 
유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 연재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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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24 [10:4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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