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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한 칼 (2부)
허구인 신공왕후의 삼한정벌론을 입증하는 도구로 쓰인 칠지도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10/05 [11:14]


고구리 고국원제와 적대적 라이벌 관계였던 백제 근초고왕(재위 346~375년)은 29년간 보위에 있으면서 출중한 자질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백제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대영웅이었다. 즉위 직후 가장 강력한 호족인 진씨(眞氏) 가문에서 왕비를 맞아들여 지지세력을 확대해 왕권을 강화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부국강병을 이끌어내 사방으로 정복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그때까지 대륙의 최강자였던 고구리의 고국원제를 전사시키고, 백제의 시국처인 요서·진평 지역을 수복했으며 왜 땅에도 진출해 백제는 건국 이래 가장 넓은 강역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박사 고흥으로 하여금 백제의 역사를 정리한 <서기(書記)>를 편찬케 했으며, 왜(일본)에 선진문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칠지도도 근초고왕이 이때 왜왕에게 하사한 것이라고 한다.
 
근초고왕은 즉위 2년(347)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올렸고, 24년(369년) 겨울 11월에 한수의 남쪽에서 군사를 사열하면서 황제만이 쓸 수 있다는 황색 깃발을 사용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아 천자(天子)를 자칭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고구리가 아닌 백제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개념으로 제국을 통치했다는 뜻인 것이다.

 

▲ 한수 남쪽에서 군대를 사열하면서 천자의 상징 황색깃발을 사용한 백제 근초고왕     © 편집부

  
이에 대해 대단히 화가 난 고구리 고국원제가 “근초고가 감히 천자 노릇을 하고 있고, 진정의 행실 또한 좋지 못하니 벌해야 되지 않겠소.”라고 하문하니, 신하들이 “백제 임금(계)이 죽어 새로운 이가 대신하고 있으나 근초고는 멀리 볼 줄 아는 식견이 있고 조상도 숭상하며, 진정은 인망을 얻지는 못하고 있으나 재간이 능하니 준비 없이 갑자기 토벌한다는 것은 불가합니다.”라고 아뢰어 토벌을 그만두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였다.
 
이번 연재에서는 백제 근초고왕의 수많은 치적 중 왜 땅에 진출한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로 하겠다.
‘백제와 대화일본의 기원’이라는 책을 저술한 홍원탁 교수는 ‘일본서기’와 ‘고사기(古事記)’ 등 여러 기록을 근거로 “일본의 15대 왕인 오진(응신應神)이 일본의 첫 고대국가인 야마토(大和) 왕국의 실제 설립자이고, 그는 백제 왕족의 후손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에 의하면, 백제에서 비류계와 온조계가 왕위 주도권 쟁탈전을 하던 중 온조계인 근초고왕이 정변을 일으켜 비류계인 계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고는 계왕의 후손들인 비류계를 계속 추격한다. 최초 가야로 들어간 비류계는 근구수 태자의 공격을 받자 다시 왜 땅으로 쫓겨가지 않을 수 없었고, 왜로 도망간 비류계는 그곳에서 반격의 기반을 마련하고, 백제 역시 왜로 들어간 비류계의 토벌을 위해 그곳에 담로를 설치한다. 근초고왕은 근구수 태자를 왕자를 왜왕으로 보내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신임장으로 하사한 것이 칠지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홍교수의 이러한 비류계 주장은 그야말로 가설로 <고구리사초략>에 의해 ‘비류왕(온조계)이 6대 구수왕의 아들’이라는 <삼국사기> 기록이 오류라는 것이 입증되었으며, 만약 백제에 온조계와 비류계의 치열한 왕위쟁탈전이 있었다면 과연 백제가 고구리 고국원제를 전사시키고 시국처인 요서·진평을 수복할 정도로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었겠는가? 또한 칠지도 역시 근초고왕이 하사한 신임장이 아니라는 것이 최근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었다. 그러나 백제가 왜에 선진문물을 전해주고 왜왕을 임명해 통치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하겠다.
 

▲ 일본 나라현 이소노가미 신궁에 보관되어 있는 칠지도     © 편집부

 
지금부터 칠지도가 과연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일본 나라현 이소노가미 신궁(石上神宮)에는 고대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희귀한 칼 한 자루가 있는데 이름하여 칠지도(七支刀)라고 한다. 이 칼은 75cm 되는 칼날 양 옆에 각각 3개의 가지칼(支刀)이 있는데 그 형태가 사슴뿔이나 나뭇가지 모양의 창(槍)과도 같은 형태의 칼이다.
 
이런 형태의 칼은 지금까지 중국에서도 발견된 적이 없다. 이 칼이 주목을 받은 것은 형태도 형태이지만, 바로 칼의 앞면에 34자 뒷면에 27자 도합 61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중 7자는 글자의 훼손이 심해 전혀 알아볼 수 없으며, 다른 8자는 글자의 획이 확실치 않을 뿐 글자체는 그런대로 알아 볼 수 있는 상태이다.
 
(앞면) 泰X四年 X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七支刀 生辟白兵 宜供供 侯王XXXX作
(뒷면) 先世以來 末有此刀 百慈王世X 寄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지금까지 일본학자들의 통설은 '泰X四年'를 중국의 연호로 단정해 泰와 太가 같은 뜻이기는 하나 완연하게 다른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동진의‘太和’라는 연호를 끌어들였다. 太和 4년은 369년으로 <일본서기> 신공기 52년조의 ‘칠지도 헌상’의 기록과 맞는다는 주장으로, 기록에 언급된 침류(枕流)왕이 조부가 바로 근초고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번역) 신공왕후 52년 가을 9월 정묘삭 병자(10일) 구저가 천웅장언을 따라왔다. 칠지도 1구칠자경 1면 등 각종의 중보를 바치며 ‘신의 나라의 서쪽에 강이 있습니다. 수원은 곡나의 철산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 먼 곳은 7일을 가도 이르지 못합니다. 그 물을 마시고 그 산에서 철을 만들어 길이 성조에 바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손자인 침류왕에게 ‘지금 내가 소통하고 있는 해동의 귀국은 하늘이 열어주신 바이다. 이로써 하늘의 은혜를 내리시고, 바다 서쪽을 떼어 내게 주셨다. 때문에 국가의 기틀이 오래토록 단단해졌다. 너도 마땅히 화호를 거두고, 토산물을 모아서 봉헌하기를 끊이지 않는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후 매년 계속하여 조공했다.”
 
(원문) 久氐從千熊長彦詣之則獻七枝刀一口七子鏡一面及種種重寶仍啓曰臣國以西有水源出自谷那鐵山其邈七日行之不及當飮是水便取是鐵山以永奉聖朝乃渭孫枕流曰今我所通海東貴國是天所啓是以垂天恩割海西而賜我由是國基永固汝當善脩和好聚斂土物奉貢不絶雖死何恨自是後每年相續朝貢焉 
 

▲ 삼한 즉 고구려·백제·신라를 정벌해 복속시켰다는 신공왕후 이야기는 그야말로 허구     © 편집부


이 기록을 근거로 한 일본 금석문해석의 대가인 후꾸야마 교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앞면) 태화 4년 정월 십일일의 순양일중의 때에 백련의 철로 칠지도를 만든다. 이것으로서 백병을 벽제(辟除)하고 후왕의 공용(供用)에 마땅하고.....만든다. (뒷면) 선세 이래 아직 본 일이 없는 이 칼을 백제왕과 왕세자는 같이 삶을 임금의 은혜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왜왕의 상지에 의해서 만드니 길이 후세에 전할 것이다.”
 
위 후꾸야먀 교수의 해석은 있지도 않은 중국의 연호를 끌어들여 <일본서기 신공기>를 합리화하려는 해석이다. 학자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해석으로 상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일본의 사학을 추종하던 식민사학자 이병도조차 “칠지도 명문의 泰자 아래 글자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중국 연호가 아닌 백제의 연호이다.”라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분명한 것은 칠지도의 명문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하행문(下行文)의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즉 대왕(황제)인 백제왕이 후왕(제후)인 왜왕 지(旨)에게 하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여러 해석이 있으나 원광대 정치학과 소진철 교수의 해석이 가장 눈길을 끌고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앞면) 泰X 사년 X월 십육일 병오일의 정오에 무쇠를 백번이나 두들겨서 칠지도를 만든다. 이 칼은 백병(재앙)을 피할 수 있어 마땅히 후왕에게 줄만하다. (뒷면) 선세 이래 아무도 이런 칼을 가진 적이 없는데 백자(백제)왕은 세세로 기생성음(吉祥語)하므로 왜왕 지를 위해 이 칼을 만든다. 후세에 길이 전할 것이다.” 

소진철 교수는 백제왕이 만일 동진의 연호를 쓰는 제후였다면 왜왕 지를 후왕으로 부르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왜왕 지(旨)는 외자를 이름으로 쓰는 백제왕가의 일원이라고 주장했다. 여러 근거를 이유로 칠지도는 백제의 대왕인 근초고왕이 왜로 떠나가는 제후인 왜왕 지를 위해 제작해 하사한 것으로 본다면서, 백제대왕들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는 고문서가 1996년 9월 일본 큐슈 미야자끼현의 미카도(神門)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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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05 [11:1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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