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리.대진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사라져버린 고구려 이전의 고대사 (1부)
존재하지 않았던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천년
 
편집부 기사입력  2016/11/04 [17:28]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일제가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만든 단군신화에 중독되어 국조 단군을 환웅과 곰 사이에서 태어난 신화적 인물로 알고 있으며, 그러다보니 단군이 다스리던 조선이라는 나라까지 실체가 없는 국가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조상인 단군왕검이 먼저 조선이라는 국호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생긴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한다는 이유로 먼저 생긴 조상의 나라에 자를 붙여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나중에 생긴 조선왕조를 後조선으로 불러야 온당할 것이다.

 

현재 한국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을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북한은 단군조선, 후조선, 만조선으로 구분하고 있다BC 2333년 세워진 단군조선이 한사람의 단군에 의해 천년 넘게 부족 형태로 존재하다가, 중국인 기자가 망명해 기자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워 약 천년 동안 통치되다가, 준왕 때 이르러 연나라 망명객 위만에게 나라를 잃어 위만조선이 세워져 단군조선을 계승한 것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BC 108년 위만의 손자 우거 왕이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조선이 망하고, 그 땅에 식민지 한사군이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고려 말 공민왕 때 문하시중(국무총리)을 지냈던 행촌 이암선생이 저술한 <단군세기>에 의하면, 위와 같은 역사는 근거 없이 조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군은 한사람이 아니라 47분의 단군이 역년 2,096년의 조선을 다스렸으며, 11세기 경 기자가 와서 나라를 세운 적이 없으며, 위만 역시 조선 전체가 아닌 북부여의 일부인 번조선의 정권을 탈취한 것으로 되어 있다 

 

▲ 식민사학계의 잘못된 역사체계     ©편집부

 

단군의 수명

 

<삼국유사> 등에는 단군의 수명을 1,908세라고 언급했고, 다른 책들에는 1,048세라고 기술하였다. 그러면서 모두 조선을 다스린 단군을 마치 한 사람인양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생물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잘못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이러한 설들은 일제가 조작한 단군신화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단군세기> 기록에 따르면, 이러한 설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1,048년의 의미 : BC 2333년 단군왕검에 의해 세워진 조선은 21세 소태 단군 52년인 BC 1286년에 엄청난 일을 겪게 된다. 흉노출신 우현왕 색불루가 정변을 일으켜 스스로 단군으로 즉위하자, 소태 단군이 어쩔 수 없이 옥쇄를 전하고는 은퇴하여 마침내 붕어하고 만다. 이후 조선은 22세 색불루 단군에 의해 통치되는데, 이 때 제도를 개정하여 삼한을 삼조선으로 바꾼다. 그래서 단군의 수명이 1,048년이라는 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는 천년 기자조선을 합리화시키는데도 악용되고 있다.

 

1,908년의 의미 : 43세 물리 단군이 BC 426년에 붕어하고 장수 구물이 반란을 일으킨 우화충을 없애자, 이듬해 장수들의 추대를 받아 44세 단군으로 즉위하여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바꾸고 삼한을 삼조선으로 바꿨다는 기록이 있는데, 국호가 바뀌다보니 조선이 망해 단군이 없어진 것으로 착각하여 1,908년이라는 설이 나온 것이다 

 

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한 북부여

 

BC 239년 정변을 일으켜 2,096역년의 대부여(조선)를 폐국시킨 해모수는 6년간 오가에 의한 공화정치를 실시하다가, BC 232년 공화정을 철폐하고 만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단군이 되어 조선(대부여)의 정통성을 그대로 이어가게 된다. 최고통치자의 혈통이 바뀌다보니 국호도 바꾸어 북부여라 칭한다. 즉 조선은 대부여에서 북부여로 국호만 바뀌어 이어진 것이다 

 

경진 19(BC221) 연나라 장수 진개가 북부여의 서쪽 변두리 땅을 침략하니 만번한에 이르러 국경으로 삼게 되었고, 임진 31(BC209) 진나라에서 진승이 군대를 일으키니 ··조나라의 백성들이 도망하여 번조선으로 귀순하는 자가 수 만 명이나 되어 이들을 상하의 운장에 나누어 살게 하고 장수를 파견시켜 감독하도록 하였다. 

 

을미 33(BC206) 한나라 유방이 북부여의 해모수 단군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연나라 군사와 함께 군대를 파견하여 항우의 군사를 크게 패퇴시키고는 장안을 점령하여 왕이 되도록 해주었으며, 병오 45(BC195) 연왕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했고, 그의 부장 위만도 번조선의 기준 왕에게 망명을 하게 된다.  

 

▲ 북부여 시조 해모수와 5세 고두막 단군. 김산호 화백 작품     © 편집부

 

북부여는 시조 해모수 단군 이후 2세 모수리 단군 25년 재위 후, 3세 고해사 단군 49년 재위 후, 4세 고우루 단군이 34년간 통치한 후 이어 고두막한이 나타난다. 졸본을 도읍으로 하여 동명(東明)국을 세운 고두막한은 한나라 무제가 4군을 두려고 사방으로 병력을 침략시키자 의병을 일으켜 가는 곳마다 한나라 침략군을 연파했고, 그 지방의 백성들 모두가 사방에서 일어나 호응함으로써 싸우는 군사를 도와 크게 보답하였다. 

 

갑오 22(BC87) 장수를 보내 배천에 있는 한나라 군대를 쳐부수고 유민과 힘을 합하여 향하는 곳마다 한나라 군대를 연파하더니 그 수비장수까지 사로잡고, 이듬해 가을 8월에 서압록하의 상류에서 한나라 군사들과 여러 차례 싸워 크게 이겼다. 

 

이렇게 한나라 군대를 격파하면서 힘을 비축한 고두막한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북부여 4세 고우루 단군을 윽박질러 도성을 비우라하고는 나라이름까지 빼앗아 북부여 5세 단군에 오르게 된다. 고두막 단군이 자신이 젊을 때 세운 동명이라는 국호를 버리고 북부여의 5세 단군이 된 이유는 북부여가 배달국과 조선(대부여)의 정통성을 계승한 천제국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6대 고무서 단군 때 슬하에 아들이 없었다. 고주몽이 그의 사위가 되어 제위를 계승하게 되어 나중에 국호가 다시 고구리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북부여의 존재가 <북부여기>에 상세히 언급되어 있으며, 광개토호태왕 비문 서두에도 북부여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북부여는 고구리의 전신으로 대부여(조선)과 고구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나라이다. 고구려 패망전쟁 당시 당나라 가언충이 북부여와 고구리의 역년을 합쳐서 900으로 말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북부여를 고구리와 같은 나라로 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이러한 북부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보니, 대부분 북부여는 아예 없었던 나라로 알게 된 것이다

 

단군이 신화로 바뀌다보니 조선이란 나라도 실체가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고, 그 정통성을 계승한 북부여까지 그 존재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비어있는 역사를 이민족인 기자와 위만이 세웠다는 기자·위만조선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사학계는 단군의 후손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의 후예라고 보아야 활 것이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6/11/04 [17:28]  최종편집: ⓒ greatcorea.kr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