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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빈‧기 점령 때 만든 서안 피라미드 (11-2부)
조선의 강역은 동쪽 한반도부터 중국대륙을 지나 중앙아시아까지
 
편집부 기사입력  2016/11/29 [23:10]

<단군세기>에는 조선이 기를 점령했다는 기록이  또 하나 있다. "22세 색불루단군 을묘 20(B.C 1266) 이때에 람국이 매우 강성하여 고죽군과 더불어 여러 적들을 쫓고 남으로 이동하여 엄독골(奄瀆忽)에 이르러 그곳에 머물렀으니 은나라 땅과 매우 가까웠다. 이에 여파달로 하여금 병사를 나눠 진격하여 빈.(.)에 웅거하도록 하면서 그곳의 유민과 서로 단결하여 나라를 세워 여()라 칭하고 서융(西戎)과 함께 은나라 제후들 사이를 차지하고 있도록 하였으니 람씨(藍氏)의 위세가 매우 성하여 황제의 교화는 멀리 항산(恒山) 이남의 땅에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고죽군(孤竹君)은 고죽국의 왕으로 고사리를 캐먹다 죽은 청절지사로 유명한 백이.숙제의 부왕이다.

고죽국의 땅은 산서성 남부 운성시의 서쪽에 있는 영제(永濟)시 일대로 이곳이 바로 요서군(遼西郡)의 땅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유적으로는 고죽국의 왕자였던 백이.숙제의 묘가 산서성 황하가 꺾이는 곳에서 2008년 발견되었다.

   

遼西郡(요서군)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屬幽州(유주에 속한다)戶七萬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萬二千三百二十五縣十四且慮有高廟莽曰鉏慮師古曰:「且音子余反慮音廬。」 海陽龍鮮水東入封大水封大水綏虛水皆南入海有鹽官新安平夷水東入塞外柳城(유성)馬首山在西南參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영지)有孤竹城莽曰令氏亭應劭曰:「故伯夷國今有孤竹城令音鈴。」 孟康曰:「支音秪。」 師古曰:「令又音郎定反。」 肥如(비여)玄水東入濡水濡水南入海陽又有盧水南入玄莽曰肥而應劭曰:「肥子奔燕燕封於此也。」 師古曰:「濡音乃官反。」 賔從莽曰勉武交黎(교려)渝水首受塞外南入海東部都尉治莽曰禽虜應劭曰:「今昌黎。」 師古曰:「渝音喻其下並同。」 陽樂狐蘇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虜臨渝(임유)渝水首受白狼東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馮德師古曰:「馮讀曰憑。」 ()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賔水皆南入官莽曰選武師古曰:「絫音力追反。」

 

▲ 대청광여도에 그려진 백이숙제의 무덤. 이곳은 유주에 속하는 요서군의 땅    © 편집부
▲ 산서성 서남단 황하 굴곡지점에서 발견된 백이숙제의 무덤. 이 부근이 요서군의 땅이다.     © 편집부

 

엄독골(奄瀆忽)의 현재 지명은 불분명하나 엄()이란 지명이 산동성 곡부(曲阜) 또는 황하 남부 하남성 평정산시 서쪽에 있는 노산현(魯山縣)으로 나오며, 고 임승국교수는 험독현(險瀆縣)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노나라 사람인 공자의 고향이라는 산동성 곡부는 역사왜곡을 위해 지명이동된 것이고, 노산현은 약간 멀기는 하나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여하튼 엄독골이 은나라 땅과 가까웠다 하니 은나라 도읍인 조가(朝歌:하남성 기현) 사방 오백리 안쪽 어딘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맹자가 말하기를 하나라 뒤의 은나라 주나라가 융성했을 때의 강역도 일천리가 넘지 않았다.(夏后殷周之盛地未過千里者也) ”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국(黎國)에 대해 아래 여러 문헌에서는 산서성 장치시(상당군) 일대로 말하고 있으나 이는 춘추시기에 도읍을 옮겨간 곳으로 보이며, 최초 여국은 주 문왕(서백창)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아 섬서성 서안 일대가 확실하다. <단군세기>의 문맥으로 보아도 섬서성 서안 부근으로 읽힌다.

* <설문> : 은나라 제후국으로 상당군 동북에 있다

说文殷诸侯国在上党东北

* <괄지지> : 옛 여성으로 여후국이며 로주의 여성현 동북 18리에 있다.

扩地志故黎城黎侯国也在潞州黎城县东北十八里

* <원화군현지> : 상당군 호소현에 여정이 잇다. 고대 여국이다.

元和郡县志上党郡壶关有黎亭故黎国

* <후한서군국지> 호소현 여정이 고대 여국이다

后汉书郡国志壶关县黎亭故黎国

 

<중국백과사전>에서의 여국(黎國)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여국 : 은나라 말기 주 문왕이 여국을 멸하고, 주 문왕이 제후를 나누어 봉할 때 요임금의 후예에게 작위를 내려 제후로 삼았다. 이러한 연유로 여국이라는 별칭을 쓴 것이다. 춘추 때 여국은 산서성 여성현 동북에 있는 여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후에 산서성 서남부에 있던 진국이 멸했다.(黎国 : 商末为周文王所灭的黎国,在周武王分封诸侯时,被封给帝尧的后裔,赐爵为侯,并且仍然沿用黎国的名称春秋时黎国迁都于山西黎城县东北的黎侯城,后为晋国(在今山西西南部)所灭)"

  

또한 사마천이 쓴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빈 땅에) 고공단부(古公亶父)가 살고 있었는데 훈육과 융적(戎狄)이 쳐들어와 재물을 요구하고 땅과 백성들을 차지하려 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융적에 맞서 싸우자고 하였으나 고공단부는 백성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면서 기산 기슭으로 옮겨가자 백성들 역시 그를 따라 기산으로 모였다. (중략) 주나라를 세운 문왕 서백창은 영토를 넓히기 위해 서쪽에 있는 견융(犬戎)과 밀수숙(密須國)과 기국(耆國)을 정벌하였다.”

 

고공단부는 주 문왕의 조부이며, 기국과 여국이 같다는 근거는 <사기 주본기 정의>에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 때 세워진 여국(=기국)이 서백창에 의해 망해 산서성 장치시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 <사기>의 기록이 <단군세기>의 빈.기 점령사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겠다.

 

▲ 조선의 빈기 점령 기록은 조선이 섬서성 서안과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증거.     © 편집부

 

그런데 맹자의 <이루장구 하>에 따르면, “문왕(서백창)은 기주(岐周)에서 태어나고 필영(畢郢)에서 돌아가셨으니 그는 서이(西夷) 사람이다.(文王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라고 기록되어 있어 주나라를 세운 문왕도 이족(夷族)으로 단군의 후예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주나라가 기국(=여국)을 정벌한 것이 아니라, 여국에서 주나라를 세운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듯 <단군세기>에 기록된 조선의 빈.(.) 점령 사실은 중국사서의 여러 기록에서 이를 입증해주고 있으며, 상당 기간 그곳을 점령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기>의 기록 액면 그대로 주 문왕이 여국을 멸했다 하더라도 여국은 섬서성 서안 부근에서 약 100년 이상 존재했던 나라이다.

 

진시황의 병마용갱으로 알려진 유적은 이 때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진시황은 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겨우 11년간 재위에 있었으며, 그 후 진제국은 약 5년간 존재하다가 망한 짧은 수명의 나라였다. 그러한 진나라가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과 병마용갱까지 만들었다는 것은 너무도 과장된 역사해석이라고 본다.

 

특히 죽지 않으려고 불로초(不老草)까지 구하려 했던 진시황이 자기 무덤을 생전에 만들었다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또한 진시황이 아들 호해에게 죽임을 당한 후 진나라는 제위를 둘러싼 거듭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그러한 병마용갱을 만들 여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병마용갱은 조선이 빈.(.)를 점령하고 있을 때 단군조선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토용들의 상투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서안 서쪽에서 발견된 피라미드를 발굴할 때 그 안에서 한족의 유물이 아닌 동이족의 유물이 출토되자 중국 정부는 발굴을 중단하고 출입을 통제시키고 항공사진에 찍히지 않도록 나무를 심어 위장했다. 왜 그랬을까? 이 서안 서쪽의 피라미드도 조선의 빈.(,) 점령 때 만들어진 유적이 아닌가 한다.

 

▲ 항공사진 촬영을 피하기 위해 나무를 심어 위장한 섬서성 서안 피라미드     © 편집부

 

단군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만 있던 작은 나라가 아니었다. 조선의 빈.기 점령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이 대동강 평양에 있었다면 너무 멀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이 실현될 수가 없다. 섬서성과 조선이 서로 가깝게 있었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필자는 단군조선의 핵심강역을 산서성으로 보며, 동으로부터 한반도와 만주, 몽고와 시베리아, 섬서성 또는 하남성 일부인 옛 중국땅을 제외한 중국대륙 대부분, 티베트와 위그르, 중앙아시아를 거쳐 터어키까지 광대한 영토를 연방 형태로 다스렸던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나라였던 것이다. 단지 조선왕조와 일제의 식민사학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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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29 [23:10]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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