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리.대진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광개토태왕은 고국양제가 아닌 소수림제의 아들 (2부)
담덕이 고국양왕의 태자라는 <삼국사기> 기록은 오류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12/28 [00:01]

371년 고국원제의 전사 이후 같은 핏줄이었던 고구리와 백제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 된다. 소수림제 2(372) 전진의 왕 부견이 고구리에 승려를 보내 불법을 전하는 등 두 나라가 서로 가깝게 지내자, 백제는 이에 반발해 근초고왕 27(372)에 전진과는 적대관계였던 동진과 교류를 트고, 이듬해 청목령(靑木嶺)에 성을 쌓아 고구리에 공격에 대비했다.

 

이즈음 백제의 독산(禿山)성주가 300명의 무리를 이끌고 신라로 투항하는 일이 발생했다. 백제는 서로 간에 잘 지내자는 도리가 이런 것이냐!”고 강하게 항의했고, 신라는 스스로 반성은 아니 하고, 오히려 남의 탓을 하는가!”라고 나무랬다. 두 나라 간에 서로 불만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불구대천의 원수 백제와의 전투

 

소수림제 5(375) 7월 고구리가 백제의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하자, 근초고왕이 장수를 보내 막았으나 이기지를 못했다. 다시 대병력을 출동시켜 보복하려고 했으나 흉년이 들어 결행하지 못하고 만다. 이 해 겨울 11월 백제의 대영웅 근초고왕이 붕어하고 아들 근구수왕이 보위에 오르게 된다. 라이벌이었던 고국원제와 근초고왕의 대를 이어 아들인 소수림제와 근구수왕이 자웅을 겨루게 되었다.

 

같은 해, 백제에서는 태사 고흥을 사서를 편찬하는 은솔로 삼아 <<서기> 50권과 <장경> 12권을 편찬했다. 이를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개국한 이래 문자의 기록이 없다가 박사 고흥에 의해 문자의 기록이 있었다라고 이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소수림제 6(376) 병자 11, 고구리가 백제의 북변을 쳤다. 그러자 이듬해 10, 백제 근근수왕이 3만 병력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하고, 11월에는 고구리가 백제를 공격해 정벌했다. 서로 장군멍군인 셈이었다. 백제에서는 근구수왕의 장인 진고도가 내신좌평이 되어 정사를 함부로 주무르고 황음했다고 한다.

 

소수림제 8(378) 무인 5월 가뭄이 심해 이삭이 여물지 않아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고, 9월 거란이 양맥곡(梁貊谷)의 여덟 부락을 노략질했다. 같은 해 백제에 가뭄기록이 없고, 382년에 6월까지 백제에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굶주려 자식을 매매하는 자도 있으므로 관곡을 내어 구휼했다고 하는데, 당시 고구리에 가뭄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당시 고구리와 백제의 강역은 한반도가 아니라 상당히 서로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맥 =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2152 참조)

 

심지어는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백제 기루왕 32(108) ·여름에 가물어 흉년이 드니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같은 해 신라의 기록에 파사아사금 29(108) 여름 5월 큰물이 져서 백성이 굶주리므로 사자를 10도에 파송하여 창고을 풀어 구호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108년에 백제에서는 큰 가뭄이 들었는데, 같은 해 신라에서는 큰 홍수가 졌다는 자연현상이 있었다.

 

만약 현 사학계의 이론대로 백제가 한반도의 서남부에 있고, 신라가 동남부에 위치했다면 이러한 자연현상은 도저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참고로 같은 해 고구려에서는 태조대왕 56(108) 봄에 크게 가물어 여름까지 이르니 땅이 빨개지고 백성이 굶주리므로 왕은 사자를 보내 곡물을 나눠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나마 백제와 고구리는 백제와 신라보다 가깝게 있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알 수 있다.

 

380년 경진 2월 백제에 돌림병이 크게 돌아 죽는 자들이 줄을 이었고, 5월에는 땅이 다섯 길이나 갈라지더니 3일이 지나서야 붙었다고 한다. 만약 백제가 한반도 남서부에 있었다면 이런 규모의 큰 지진기록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고구리와 백제는 별다른 충돌 없이 지내다, 384년 근구수왕과 소수림제가 4월과 11월에 각각 붕어하게 된다  

 

▲ 땅이 갈라지는 이런 지진이 과연 한반도 서남부에서 발생했을까?                                                © 편집부

 

 

광개토호태왕은 누구의 아들인가?

 

<삼국사기>에서는 “14(384) 겨울 11, 왕이 죽으니 소수림에 장례를 지내고 호를 소수림왕이라고 했다. 고국양왕의 이름은 이연(혹은 어지지)으로 소수림왕의 아우이다. 소수림왕이 재위 14년에 죽었으나 아들이 없었으므로, 아우 이련이 왕위에 올랐다. 3(386) 봄 정월, 왕자 담덕을 태자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소수림왕과 고국양왕의 왕후에 대한 기록은 없다.

 

게다가 <삼국사기>에는 고국양왕이 9(392) 여름 5월에 죽어 고국양에 장례를 지내고, 호를 고국양왕이라 했다. 광개토왕의 이름은 담덕이며 고국양왕의 아들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생각이 대범했다. 고국양왕 3년에 태자가 되었다. 9년에 왕이 죽자 태자가 왕위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의 고국양왕(독고영재) [사진=드라마 캡처]     © 편집부

 

그래서 다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복군주 광개토태왕이 고국양왕의 아들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님이 <고구리사초략>에 의해 명백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그 기록을 따라 가보도록 하겠다. 고국원제가 전사하자 355년에 정윤(동궁)이 된 태자 구부(丘夫)가 제위에 오르니 이가 소수림제이다. 원년(371) 신미 11, 천원공의 딸 천강을 황후로 삼는다

 

소수림제 4(384) 11, 천강후가 태자를 낳았는데, 용모가 특이하게도 훌륭했다. 황상은 크게 기뻐하며 이름을 복()이라고 하려 했는데, 이 때 마침 승려 아도가 전진()에서 들어와 천자는 덕을 말하지 사익을 입에 담지 않습니다. 덕을 말하면 복은 저절로 내려집니다라고 아뢰자, 황상은 그 말에 크게 기뻐하며 담덕(談德)이라고 이름 지었다. 대략 열두 달을 채워서 태어났다. 이어 3년 후 천황후 몸에서 아우 용덕(勇德)이 태어난다.

 

10(380) 경진, 담덕이 새벽에 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는 어떤 새냐고 물으니, 모후가 이 새는 곡식농사를 널리 하게 하는 새인데, 참으로 일찍 일어나 우는구나라고 말해주자, 이에 담덕은 천하에서 가장 좋은 새입니다라고 말했다. 황상이 이 말을 듣고는 담덕은 역시 남다르다고 여겼다고 한다 

 

▲ MBC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의 광개토태왕(휘 담덕, 배용준 분) [사진=드라마캡처]     © 편집부

 

384년 갑신 4, 백제에서 근구수왕이 죽고, 그의 아들 침류왕이 보위에 올랐다. 같은 해 11월에 소수림제가 수림(獣林)에서 사냥하다가 갑자기 몸이 심하게 아파 온탕에 들어갔다가 춘추 46세의 나이로 붕어하고 만다. 유언에 따라 12월에 대행을 소수림에 모셨고, 태제였던 동복아우 이련(伊連, 또는 이지지於只支)이 즉위하니 이가 고국양제이다.

 

소수림제는 죽음을 앞두고 아우에게 보검과 옥새를 넘겨주며 중원의 나라들은 소란하나, 오직 동방만은 점점 고요해지는구나. 조상님들의 음덕이 있음인 게야. 자네도 잘 지켜서 담덕에게 물려주게나라고 말했더니, 상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보위를 받았다. 이 때 새 황상의 춘추 43세였고, 형수인 천강을 황후로 삼았는데 이는 대행의 유명에 의한 것이었다.

 

고국양제 3(386) 병술 정월, 담덕 태자를 정윤(동궁)으로 삼아 관료를 딸려주었다. 이 때 담덕의 나이 13살이었는데 힘은 능히 가마솥을 들어 올렸고, 활도 잘 쏘고 무리를 무척 잘 이끌었다. 선황의 장자 강() 또한 상당히 현명했으나, 선황의 유지를 받들어 끝내 담덕을 태자로 세웠다는 기록으로 볼 때 담덕(광개토호태왕)은 고국양제의 아들이 아닌 소수림제의 차자(次子)였던 것이다.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요즘 공감
기사입력: 2016/12/28 [00:01]  최종편집: ⓒ greatcorea.kr
 

선거 동안 정당후보자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의 글을 게시하고자 할 경우에는 '실명인증' 후 게시물을 등록하셔야 합니다. 실명확인이 되지 않은 선거관련 지지 혹은 반대 게시물은 선관위의 요청 또는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 본 실명확인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2017.04.17~2017-05.08)에만 제공됩니다.
일반 의견은 실명 인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