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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리와 친했던 5호16국시대의 강자 전진 (3부)
불법·형법 등 교류…전진 3대왕 부견, 고구리에 청혼·적토마 선물까지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2/11 [13:54]

14(384) 갑신 11, 소수림제가 사냥하다가 갑자기 몸이 심하게 아파 온탕에 들어갔다가 춘추 46세로 붕어해 유언에 따라 소수림(小獸林)에 장사지냈다사인은 잘못된 음식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요리사들 서로가 남에게 잘못을 미루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자 조의들이 대신 죄를 받아 멀리 유배된 자가 30여명이나 되었다.

 

당시 낙()()()()()()()()의 여덟 집안이 서로 앞 다투어 전진(前晉)에 자식을 보내 조리법을 배워와 도장에서 가르쳤다. 큰 집안의 요리사들은 심히 거만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가 주()씨와 부()씨의 후예들이어서 귀족들과 서로 혼인했다. 이때부터 각자 자신의 생업을 성씨로 했는데, 중외선인에 예속시켜 불만의 뜻이 있었다고 한다.

 

고구리와 친했던 516국시대의 강자 전진

 

고구리 소수림제는 중국의 516국시대의 강자였던 전진(前秦)3대왕 부견(苻堅)과 사이가 아주 좋았다. 부견은 소수림제 2(372) 고구리에 불법을 전해주고 고구리에 미인이 많다고 하여 청혼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듬해 새로운 율령을 반포한 소수림제는 사자를 전진에 보내 그곳에서는 형법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아보도록 했다.

 

소수림제 8(378) 전진의 부견이 대완마(大宛馬) 두 필을 보내오자 용산에서 길러 종자를 받게 했는데, 대완마는 중앙아시아 페르가나 지방에 있던 대완국에서 생산되는 천리마로 붉은 피 같은 땀을 흘린다 하여 한혈마(汗血馬)라고도 한다. 한나라 무제는 그곳의 준마들이 탐나 대완국을 침략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고구리 소수림제와 우호가 돈독했던 전진의 부견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 전설의 말 적토마는 대완말(한혈마)의 일종                                                          © 편집부

 

미천대제의 즉위 초기인 304년부터 분열되기 시작된 중국은 이후 갈기갈기 찢어져 사분오열의 516국 시대를 맞게 된다. 초기에는 흉노족의 전조(前趙, 304~329)가 주도권을 쥐었으나, 이후 전조를 멸망시킨 갈족의 후조(後趙, 319~351)와 모용선비족의 전연(前燕, 307~370)과 한족이 세운 전량(前涼, 317~376)3파전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다가 감숙성 일대에 거주하던 티베트계 저족(氐族)이 세운 전진(前秦, 351~394)3대 왕 부견이 왕맹(王猛)이라는 걸출한 한족 인재를 등용하면서부터 동진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멸망시켜 중국의 통일을 목전에 두게 되었으나, 383년 동진과의 비수(淝水)전투에서 크게 패해 중국은 다시 급속도로 분열되고 만다.

 

저족은 처음에는 전조 및 후조의 용병으로 활동하다가, 349년 후조의 3대왕 폭군 석호(石虎)가 죽자 저족의 지도자였던 부홍(苻洪)이 자립을 선언했고, 그 뒤를 이은 부건(苻健)351(고국원제 21)에 장안을 차지하고는 전진을 세웠다. 관중까지 평정했던 부건이 355년에 죽고 이어 즉위한 아들 부생(苻生)이 폭정으로 민심을 잃자, 357년 부홍의 손자 부견이 반정을 일으켜 부생을 폐위시키고는 3대 왕으로 즉위했다.

 

부견은 왕맹을 중용해 내치를 다지고 개혁을 실시하고자 했고, 왕맹은 법을 엄하게 적용하고 정치를 바로잡아 전진의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부견은 370(고국원제 40)에 그동안 고구리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모용선비가 세운 전연을 멸망시켰으며, 373(소수림제 3)에 동진의 사천(四川) 지방을 정복하고 376년에는 전량과 대()까지 멸망시켰다. 그러나 이듬해 재상 왕맹의 죽자 평정심을 잃은 부견은 사치를 일삼고 무리하게 전쟁을 거듭했다.

 

<고구리사초략>에는 전연의 멸망과 대()의 멸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소수림제 6(376) 병자 12, 대를 다스리던 십익건(什翼犍)이 자신의 서자에게 죽었다. 부견이 그 서자를 잡아서 찢어죽이고 대의 땅을 동서로 나누었다. 서쪽은 흉노의 위진에게 속하게 하고, 동쪽은 고인에게 속하게 했다. 십익건의 손자 규()가 어미 하씨와 함께 달아나 하눌(賀訥)에게 의탁하자, 고인이 이들을 찾아가 모셨으니 폐하지 않고 더불어 다스려보려 했음이다.”

(전연의 멸망은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4999참조)

 

대는 유주에 속하는 대군(代郡)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현재 중국에서는 산서성 북부에 있는 대동(大同)시 일대를 대군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아래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유주에 속한 대군의 내용에 고수(沽水)와 구하(滱河)가 있는 것으로 보아 <수경주>의 물길에 따르면 산서성 동남부 또는 동안양(東安陽)이라는 지명으로 볼 때 황하북부 하남성의 동부지역으로 읽혀진다.

 

(代郡 대군)秦置莽曰厌狄有五原关常山关属幽州(유주)户五万六千七百七十一口二十七万八千七百五十四县十八桑乾莽曰安德道人莽曰道仁当城高柳西部都尉治马城东部都尉治班氏秦地图书班氏莽曰班副延陵狋氏莽曰狋聚且如于延水出塞外东至宁入沽()中部都尉治平邑莽曰平胡阳原东安阳(동안양)莽曰竟安参合平舒祁夷水北至桑乾入沽莽曰平葆莽曰厌狄亭灵丘滱河(구하)东至文安入大河过郡五行九百四十里并州川广昌涞水东南至容城入河过郡三行五百里并州浸莽曰广屏卤城虖池河东至参户入虖池别过郡九行千三百四十里并州川从河东至文安入海过郡六行千三百七十里莽曰鲁盾

 

383(소수림제 13) 부견은 통일을 위해 대군을 휘몰아 동진을 총공격해 들어갔다가 비수(淝水)에서 크게 패하고 만다. 그 여파로 전진은 대혼란에 빠졌으며, 모용수가 후연(後燕), 강족이 후진(後秦), 선비족의 걸복국인이 서진(西秦), 저족이 후량(後凉), 모용홍이 서연(西燕) 등을 세우게 된다. 부견은 서연의 공격으로 도성인 장안을 버리고 도주했다가, 385(고국양제 2) 후진의 요장에게 잡혀 죽임을 당함으로써 전진은 사실상 망하게 된다 

 

▲ 중국이 제멋대로 그린 비수대전 지도. 비수대전은 회수 부근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당시 동진은 오나라 도읍이었던 건업(호북성 악주)에 있었음에도, 건업(건겅)을 남경이라 하여 신라의 강역을 지웠으며, 대를 대동시라 하며 고구리의 강역을 축소시켰다.                                                                                                © 편집부

 

당시 동진의 도읍은 건업이었다. 동진은 서진 말기 영가의 난이 일어나 낙양이 함락되고 회왕이 붙잡혀 서진이 멸망하자 왕족이었던 사마예가 건업으로 피신해 그 지방호족 왕도의 힘을 빌려 세운 나라이다. 건업은 중국의 삼국시대 오나라 도성이 있었던 곳으로, 그곳에서 서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한 적벽이 있는 곳으로 지금의 호북성 악주시이다.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0670 참조)

                 

▲ 건업이 호북성 악주시라는 결정적 증거인 오왕성 유적     © 편집부

 

부견의 죽음을 듣은 아들 부비(苻丕)가 진양(晉陽)에서 즉위했으나, 이듬해 모용선비의 공격을 받아 패배하고 동진군에 의해 살해된다. 부비의 사망 소식을 듣은 부등(苻登)이 즉위해 전열을 재정비한 후 후진을 공격했으나 389년에 본거지를 기습당해 세력이 쇠퇴되었고, 393년 후진을 공격했다가 크게 패배해 살해되고 만다.이어 태자 부숭(苻崇)이 왕위에 올랐다가 서진의 공격으로 죽임을 당함으로써 전진은 완전히 멸망했다. 전진은 불과 43년 밖에 존속하지 못했던 단명한 나라였지만, 부견이 통치할 때는 516국시대를 호령했던 강자였던 것이다.

 

<고구리사초략>에는 고국양제 2(385) 을유 6, 부견이 나이 48살에 요장에게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많은 종친들이 불법은 믿을 바가 못 되니 절을 폐하고 중을 내치자고 청했다. 이에 황상은 선제께서는 승려들을 써서 청정·고행하는 것을 법으로 삼으셨소. 짐 역시 호색하지만 그들의 청정함의 정도는 선도들의 음란·추악함과 같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두 절과 고승들의 존폐를 의론하지 마시오.”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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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11 [13:5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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