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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로 도량형을 통일하고 태양력을 쓴 조선 (13부)
고대 태산은 현 산서성 임분시 동쪽 30리 곽태산(霍太山)
 
편집부 기사입력  2017/02/12 [13:03]

 

(단군세기 원문) 2세 부루단군 재위 58

  * 계묘 3(B.C 2238) 9월 조서를 내려 백성들로 하여금 머리카락을 땋아서 목을 덮도록 하고 푸른 옷을 입게 하였다. 쌀되와 저울을 모두 통일하도록 하였고, 베와 모시의 시장가격이 서로 다른 곳이 없으며, 백성들 서로 속이지 않으니 어디서나 두루 편안하였다.

  * 경술 10(B.C 2231) 4월 밭을 나누고 밭문서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지 않도록 하였다.

  * 임자 12(B.C 2229) 신지(神誌) 귀기가 칠회력(七回歷)과 구정도(邱井圖)를 만들어 바쳤다.

무술 58(B.C 2183) 단제께서 붕어하셨는데 이날 일식이 있었다. 산 짐승도 무리를 지어 미친 듯 산 위에서 소리를 질렀고 백성들은 심하게 통곡하였다.

  * 뒤에 백성들은 집안에 있는 땅을 골라 단을 만들어 제사를 올릴 때 토기에 쌀과 곡식을 가득 담아 단 위에 올려놓았다. 이를 부루단지(扶婁壇地)라 부르고 업신(業神)으로 삼았으며, 또 완전한 사람이 받는 계명이라 하여 전계(佺戒)라고도 불렀고, 업주가리(業主嘉利)라 하였으니 바로 사람과 업이 함께 완전하다는 뜻이다. 태자 가륵이 새로 즉위했다.

 

위 계묘 3년(기원전 2238) 기록의“쌀되와 저울을 모두 통일하도록 하였고는 도량형의 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원전 221년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역사상 최초로 도량형을 통일했다고 알고 있으나, 위 기록은 진시황 이전 이천년 전에 이조선에서 도량형을 통일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기록이다. 또한 위 도량형통일에 대한 기록은 중국 사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상서순전(尙書舜典)에 따르면 순임금이 이해 이월에 동쪽을 순행하여 대종(태산)에 이르러 제사를 지내고 동후를 알현하고 철과 달을 맞추고 날짜를 바로 잡았으며 악률과 도량형을 일치시키고, 오례와 오옥 세 가지 비단, 두 가지 산 짐승, 한 가지 죽은 짐승 및 예물을 정리하였다. 다섯 가지 옥기는 예가 끝난 후 돌려 드렸다.(歲二月東巡守至于垈宗 柴望秩于山川 肆覲東后 協時月正日 同律度量衡脩五禮五玉三帛二生一死贄 如五器卒乃復)”라는 기록이 있어, 이미 순임금이 조선의 부루단군을 알현하고 조선과 중국이 서로 도량형을 통일해 B.C 2238년 시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율도량형이란 율(소리), 도(길이), 량(부피), 형(무게)를 통일시키는 것이다.     © 편집부

 

고대 태산은 어디인가? 

 

여기서의 대종(岱宗)은 바로 태산(泰山)을 말하는 것으로 고대 태산은 산동성에 있는 해발 1,545m의 태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산서성 임분시 동쪽에 있는 해발 2,566m의 곽태산(霍太山)을 말하는 것이다. 아래 <주례직방>其山镇曰이라는 같은 문구가 있어 泰山 = 太岳으로 볼 수 있다. 즉 중국은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위해 산서성에 있는 태산을 산동성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번역) 태산 : 태산을 동으로 했다. 역시 대종이라 말한다. <수순전>에 동쪽으로 순행해 대종까지 이르렀다.<주례직방> 하동을 충주라고 한다. 기산진을 대산이라 한다.

태악 : 즉 지금의 산서성 곽산이다. <정의> 지리지에 하동 체현 동쪽에 곽태산이 있다. <주례직방씨>에서 기주 기산진을 곽산이라 말한다. 즉 이것이 태악이다. <장정석 상서지리지 주해> 태악 일명 곽태산 산서 평양부(임분) 곽주 동쪽 30리에 있다, 산 둘레는 200여리, 남으로 악양현과 월성현과 접하고, 북으로 영석현, 동으로 심원현 경계와 접한다)

 

(원문) 泰山:是为东亦曰岱宗书舜典东巡狩至于岱宗 周礼职方河东曰充州其山镇曰岱山

太岳:即今山西之霍山正义地理志河东彘县东有霍太山周礼职方氏冀州其山镇曰霍山即此太岳是也,《蒋廷锡尚书地理今释太岳一名霍太山今为中镇在山西平阳府霍州东三十里山周二百余里南接岳阳赵城二县北接灵石县东接沁源县界

 

경술 10년(B.C 2231)에 밭문서를 만들었다는 기록은 당시 조선 때 이미 그런 문서를 만들 만한 어떤 문자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직 가림토문자가 나오기 전이므로 이 문자는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한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 고대 지도에 산서성 임분시 부근에 태악이 그려져있다. 이것이 고대 태산이다.                                  © 편집부

 

▲ 산서성 남부 임분시 부근에 있던 태산은 역사왜곡을 위해 산동성 제남 아래로 이동되었다.     © 편집부


인류 최초로 태양력을 만든 조선 

 

임자 12(B.C 2229) 신지(神誌) 귀기가 만들어 바쳤다는 칠회력(七回歷)에 대해서는 <태백일사 신시본기>에 신시 때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이 있었다. 첫 회의 날에는 천신(天神)에게, 2회의 날에는 월신(月神)에게, 3회 날에는 수신(水神)에게, 4회의 날에는 화신(火神)에게, 5회 날에는 목신(木神)에게, 6회 날에는 금신(金神)에게, 7회 날에는 토신(土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대저 책력을 만듦은 이에서 비롯됨이라.”라는 기록이 있다.

 

즉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토가 아니라, 원래는 천......토 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중국은 일요일을 성기천(星期天)으로 표시한다. 최초 칠회제신의 책력은 황제헌원의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자부선생(紫府先生)이 만들었으며, 3655시간 4846초를 일년으로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세계 최초의 태양력은 조선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대만사학자 서량지박사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란 책에서 중국의 책력법(冊曆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나라, ()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해 위 <태백일사 신시본기>의 책력에 관한 기록의 진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업주가리의 의미

 

()은 벼와 곡식이 풍성하게 익기를 기원(祈願)하고 축원(祝願)하는 대상이다. 또한 생산(生産)과 작업(作業)의 신이다. 업주가리(業主嘉利)라고도 한다. 또한 항간의 민가에서는 흰 항아리에 쌀을 채워 넣고 거처하는 방안에 안치를 하고 이를 삼신단지라고 하였으며 혹은 삼신항아리라고 불리던 것이 있었다.

 

매년 가을에 곡식이 익어 추수를 하면 햅쌀로 다시 채워 넣고 그 보관하였던 묵은 쌀로 백설병(白屑餠)을 쪄서 만들고 또한 평소에 먹던 밥으로 현주(玄酒)를 빚어 삼신께 공양을 하였다. 음식은 오직 집안사람들만이 먹고 외부의 사람에게는 나누어 주지 않은 것은 대개 삼신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년 316일을 태백(太白)이라 부르고, 55일은 수릿날(戌衣. 或首里=卽上日)이라 하며, 103일은 한맹(寒盟), 영고(迎鼓). 무천(舞天) 즉 동맹(東盟)이라 하여, 각 집안에서 신을 부르고 사람을 모셔 삼신을 안좌(安坐)시키고 타령하며 소원을 빌었는데 이와 같은 풍속은 신시 이래로 전해진 것이다. 삼신(三神)은 우주를 창조한 신이며, 생산(生産)과 작업(作業)의 신()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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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12 [13:03]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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