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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왕의 탄생과 일생으로 시작하는 호태왕비문 (3부)
추모왕은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여랑
 
박정학 (사)한배달 회장 기사입력  2017/03/29 [14:49]

 

2) 문항별 학자들의 해석 내용 비교표 : 7명 학자들의 해석 비교

 

  전체 항목 비교를 보이기에는 공간이 좁으므로 샘플로 두 항만 소개한다. 각 학자들의 해석을 볼 때는 그들의 석문 내용이 연구회의 결론과 다르므로 해석내용이 달라졌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검은색은 대부분이 같은 석문을 했지만, 청색이나 갈색, 붉은색은 학자마다 다른 석문을 했으므로 자신의 석문대로 해석한 것을 그대로 여기에 옮겼다.

 

  항별 제목의 앞의 숫자는 시작되는 면--열이며, 내용은 연구회에서 원문 찾기를 통해 최종 결론을 낸 석문이다. 따라서 학자마다 석문이 다르므로 해석에 차이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1-1-1 추모왕의 탄생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出自北夫餘天帝之子母河伯女剖卵降有聖德

윤덕원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나라를 세웠느니라, 그는 이미 망해버린 부여(부리얕)에서 왔다. 천제의 아들로 하백의 딸인 어머니로부터 알을 깨고 강림했다.태어난 아들은 성덕이 있었다.

이유립

생각하옵건대 옛적에 시조 추모왕께옵서 나라 터를 창업하시었나니 북부여로부터 출하시었으며 천제님의 아들이시오 어머니는 하백 여랑이시니 알을 깨고 강출하시매 낳으신 아들은성스러운 덕이 있으시니라.

김덕중

예로부터 선조들의 비롯함이 한결 같아서 추모왕은 그 곳에 나라를 세우게 되었노라. 자신은 북부여에서 태어났으나 본래는 천제국의 자손이다. 어머니는 하백의 여식이라 바로 하늘에서 알을 내려주셔서 가르고 나오니 아들이었고 임금의 덕을 지니고 있었다.

광개토태왕광장

!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셨도다. [추모왕은] 북부여 출신으로 천제의 아드님이시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시다. 알을 가르고 세상에 내려오시니, 나면서부터성스러운 덕을 갖추셨다.

이형구

옛날에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북부여로부터 나왔다. (추모왕은) 천제의 아들로서 하백의 따님을 어머니로 하여 알에서 태어났는데성스럽고 덕이 있었다.

박시형

옛날에 시조(始祖) 추모왕(鄒牟王)이 고구려 국가를 창건할 때에 그 연원은 북부여(北夫餘)에서 나왔다. 추모왕은 천제(天帝: 하느님)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河伯: 물의 신)의 딸이었다. 알을 깨고 나왔는데나서부터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왕건군

옛날에 [우리들의] 시조인 추모왕이 나라를 건립할 때에 그의 부친은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며, 모친은 하신의 딸로서, [낳아 놓자 하나의 큰 알이었는데] 알을 깨고 그는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 곧 성명(聖明)의 덕()이 있었다.

 

1-8-34 영락 6년 백잔 정벌 이유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聯侵[隨破]新羅以爲臣民

윤덕원

백제와 신라의 예전부터 지금까지 왕을 따르던 사람들은길로 와서 조공을 바쳤지만 왜는 辛卯부터 수년간 바다를 건너(와서 조공을 바쳐)했다.(新羅 百濟는 이미 긴 세월을 조공했고 辛卯부터 조공했다. 辛卯 永樂 元年) 百殘가 신라를 침입하여 신민으로 삼으로 하는 것을 파하기 위해

이유립

백잔과 신라는 예전부터 우리의 속민으로 이때까지 조공해왔는데 왜가 신묘에 침범해 오니 왕께옵서 바다를 건너가서 깨뜨리시었더니 백잔이 왜를 끌어넣어다가 신라를 침노하게 되었다. 왕께옵서 말씀하시기를 모두 우리의 신민이었다고 하시면서

김덕중

백잔과 신라는 예전부터 이곳에 살던 권속과 동족이니 전통적으로 조공을 거래하였고 왜는 신묘년부터 해마다 바다를 건너 조공을 가지고 왔다.

백잔이 안라를 파()하고 신라를 신민을 삼으려 하므로

광개토태왕광장

백제와 신라는 옛 속민인데도 아직까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왜는 신묘년(381)부터 [바다를] 건너왔다. 그래서 은 백잔과 를 공파하고, 신라는 하여[복속시켜] 신민으로 삼았다.

이형구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 후(로 판독) 􀀀신묘년(391)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來渡海不貢因으로 판독) (광개토대왕은) 백잔·􀀀􀀀·신라를 파하여 이를 신민으로 삼았다.

박시형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는 우리 고구려의 오랜 속민(屬民)들로서 이전부터 조공(朝貢)을 바쳐 왔다. ()가 신묘년(辛卯年)에 침입해 왔기 때문에, 우리 고구려는 바다를 건너가서 그들을 격파하였다. 그런데 백제가 [왜를 끌어들여] 신라를 침략하고 그들을 저희 신민으로 삼았다.

왕건군

백제(百濟)와 신라는 과거에 우리 고구려의 속국이었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조공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신묘년이래(辛卯年以來)로부터 왜구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서 그들을 신민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백잔과 신라는 우리에게 稱臣朝貢을 하지 않았다.]

 

▲ 음력 7월 7일 칠석날 소해모수와 사랑을 나눠 고주몽을 잉태하는 유화부인     © 편집부

 

3) 문항별 해석 비교연구 결과(바른 해석 시도)

 

1-1-1 추모왕의 탄생

(복원 비문)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出自北夫餘天帝之子母河伯女剖卵降有聖德

(번역) 옛날 시조 추모왕께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셨다. 북부여로부터 나왔는데 천제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셨다. 알을 깨고 세상에 태어나셨는데, 나면서부터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해설) * 는 허사로서 여러 학자들의 해석처럼 우리도 꼭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 出自의 목적어(출생지)를 북부여가 아니라 북부여 천제지자까지로 보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牟頭婁墓誌墨書銘出北夫餘위서열전 고구려조의 하백의 외손’,

삼국사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이라는 기록 등이 있으므로 이렇게 해석했다.

 

*탁본상 자와 자구별하기가 어려웠으나 다수가 으로 석문했고, 문맥상 따님이라는 존칭어나 걸출한 여성을 뜻할 때는 女郞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을 선택했다.

 

* 降世生而를 여러 사람들이 降出生子자로 읽었으나 降出이라는 단어는 높은 분의 태어남을 나타내는 말로는 적절하지 않으며, 뒤 문장의 내용과 연결 짓기가 어렵고, 降出生은 모두 동사로서 동사 3개가 연결되어 해석하기도 어렵게 된다. 탁본 확인 결과 자와 자에 가깝고 문맥상으로 해석하는 데 무난하다고 보아 선택했다. 

 

1-1-35 추모왕의 일생

 

(복원 비문) 鄒牟王奉母命駕巡南下路夫餘利大水王臨言曰我是皇天之子母河伯女鄒牟王爲筏魚鼈即爲連然後沸流谷忽本西城山上而建都焉樂世位遣黃龍來下迎王王於忽本東岡昇天顧命世子儒留王以道輿 

 

(번역) 추모왕께서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수레를 타고 순행하며 남쪽으로 가는 길에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었다. 왕께서 나루터에 이르러 나는 황천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인 추모왕이다. 물고기와 자라는 뗏목을 연결하라.”라고 말을 하자, 그 소리에 응하여 자라가 떠올라 뗏목으로 연결되었다.

 

그리하여 강을 건너 비류곡 홀본 서쪽에 이르러 산 위에 성을 쌓고 (그곳에다) 도읍을 세웠다. 세상의 왕위를 즐겨하지 않으니 하늘에서 보낸 황룡이 내려와 왕을 맞이하였다. 왕은 홀본 동쪽 언덕에서 용의 머리에 타고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세자 유류왕에게 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셨다.     

 

▲ 북부여 천제의 아들로 태어나 고구리를 세운 고주몽     © 편집부

 

(해설) * 鄒牟王奉母는 현재 글자 식별이 어렵지만, 영희 등 전체를 석문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밝혀놓았으므로 이를 따랐다. 

 

* 巡幸자는 자와 구별이 어렵지만 원석정탁본으로 보면 아래쪽 부분의 종획이 위와 연결되지 않으므로 보다는 자에 가까우며, 자는 대부분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서경 등에 巡幸이나 巡狩가 보이므로 으로 읽었다. 

 

* 대부분 학자들이 자를 해석하지 않거나 박시형은 비로소의 뜻으로 해석했는데, 그러면 아래 목적어의 풀이씨가 없게 된다. 고한어 사전에 자가 ‘~에 이르러라는 의미가 있고, 뒤에 자가 있어 자연스런 해석이 될 수 있어 이렇게 판독했다. 

 

* 連筏魚鼈은 학자들 간 連鼈浮龜, 連葭浮鼈 등 세 가지로 판독했는데, 삼국사및 중국 기록에 魚鼈이 나오므로 그렇게 석문한 영희 조봉과 김택영을 따랐으며, 바로 뒷 문장에서는 이들도 자 대신 자로 읽었으므로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은 비슷하고 학자들 간에도 다르게 주장하지만 삼국사의 기록을 따르기로 했다. 

 

* 忽本西城山上은 성을 쌓는다는 동사로 보아야 자의 목적지인 忽本西와 연결되는 문맥이 자연스럽게 통한다. 

 

* 不樂永樂으로 읽은 사람도 많이 있으나 탁본상 자가 맞는 것으로 판독했다. 

 

* 龍頁黃龍負(황룡에 업혀)로 읽고 해석한 사람이 많았는데, 가 동사면 황룡의 앞에 오는 것이 자연스러우며(김덕중의 태학사문에서는 이런 용법이 무난하다고 보기도 했다), 탁본을 확인한 결과 위의 횡선이 길어 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 이렇게 판독했다. 

 

* 輿나라, 국토의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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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9 [14:49]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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