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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태왕 일대기 및 훈적비 건립, 영락5년의 비려 정벌 (4부)
17세손 비밀 풀렸고, 호태왕이 이른 곳은 염수인가 람수인가?
 
박정학 (사)한배달 회장 기사입력  2017/06/11 [22:42]

1-4-5 호태왕 일대기 및 훈적비 건립


(원문) 大朱留王紹承基業至十七世孫 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號爲永樂太王 恩澤洽皇天威武拂被四海掃除仇耻 庶寧其業國富民殷五穀豐熟 昊天不卅有九晏駕棄國 以甲寅年九月廿九日乙酉遷就山陵 於是立碑銘記勳蹟以示後世焉


(번역) 대주류왕께서 왕위를 이어받으시고 17세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러 열여덟 살에 황위에 오르시고 연호를 영락이라 했다. 태왕의 은택은 멀리 하늘에까지 미쳤고, 위엄과 무용은 온 천하에 떨쳤다. 적으로부터 치욕을 제거하여 왕업을 크게 안정시킴으로써, 나라는 부강해지고 백성은 번성했으며, 오곡은 풍성하게 익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여 39세에 나라를 버리고 세상을 떠나셨다. 갑인년 9월 29일 을유(乙酉)에 산릉으로 모시고 이 비를 세워 그 공훈을 기록하여 후세에 보이노라.

 

(해설) * 遝자는 傳자로 읽은 사람도 있으나 탁본이 윗부분이 罒자 모양이 분명하며, 해석상으로도 무난하므로 이렇게 판독했다.


  * 仇耻는 영희 조봉, 김택영, 조소앙, 김덕중이 ‘九夷’라고 석문했으나 우리가 스스로 ‘구이’라고 부른 기록이 없고, 앞 글자가 掃除이므로 나쁜 의미의 단어가 와야 하는데 결자징실과 이유립의 ‘仇耻’가 ‘적으로부터 치욕’이란 의미가 되므로 이를 선택했다.


  * 여러 학자들이 庶寧其業을 ‘서민들의 생업이 안정되다’는 식으로 해석했는데, 앞에 왕으로 등극한 내용이 나오므로 其業은 왕업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으며, 뒤에 國富民殷이 나오므로 庶를 백성으로 해석하면 民과 중복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庶는 ‘무릇’ 또는 ‘많은, 큰’의 의미, 寧은 편안하다, ‘안정시키다’는 의미를 선택하여 ‘크게 안정시켰다’로 해석했다.


  * 不弔에서 弔자는 고어사전에서 옛 의미에 善, 好의 의미가 있어 ‘챙기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무심하여’로 해석했다. 


  * ‘晏駕’는 제왕의 죽음을 뜻하는 단어라는 데 공감했다.


  * 示자를 永자로 읽은 사람도 있으나 동사라야 문맥이 통하므로 示로 읽었다.

 

(편집자 주) 17세손에 대한  해설은 (제목: 북부여기로 풀린 광개토태왕 비문 17세손의 비밀 (1부) 

http://greatcorea.kr/sub_read.html?uid=760&section=sc2&section2=  참조

 

▲  삼국사기 계보에 북부여기 계보를 합치면 호태왕비석의 17세손의 비밀이 해석된다.                ©편집부

 

1-6-37 영락 5년 비려 정벌


(원문) 其詞曰昔者永樂五年歲在乙未王以碑麗不貢整旅躬率往討叵富山負山至鹽水上破其丘部落六七百營牛馬羊不可稱數於是旋駕因過襄平道東來候城力城北豊五備猶遊觀土境田而還


(번역) 그 글에 이르되, 지난날 선왕께서는 비려가 조공을 하지 않고 군대를 정비하므로 영락5년 을미에 군사를 몸소 이끌고 가서 파산, 부산(富山), 부산(負山)을 토벌하고 염수 위에 이르러 그 지방의 600~700 부락을 파하고, 소 말 양떼들을 얻은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이어서 왕은 행차를 돌려서 과거에 하던 대로 양평도를 지나 동으로 후성, 역성, 북풍, 오비유로 와서 영토를 시찰하고 수렵을 한 후에 돌아왔다.

 

(해설)  * 김덕중은 詞자를 일반적인 글이 아니라 고구려식 서글로 쓰인 비문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 비문의 글을 ‘태학사문’이라고 하고, ‘그 사관’이라 해석했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을 따라 이대로 해석했다.


  * 昔자 다음 글자는 판독이 어려운데, 영희 조봉, 김육불 등이 祖자로 읽었으나 자신의 아버지를 祖라 부르지 않는다는 의견에 따라, 옛날 ‘지난날’의 의미인 昔者로 전혀 새로운 글자로 석문했다. 

 

* 不貢整旅는 의미상으로는 결자징실의 屢犯邊境이 좋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전문을 석문한 김덕중계와 이유립계가 같이 이렇게 석문했고, 문맥상으로도 자연스럽다고 보아 이를 따랐다.


  * 고구려사초략에 鹽水와 叵山과 富山 負山 襄平道, 五備猶라는 지명이 나오므로 이를 따라 석문했으며, 叵富山을 叵山과 富山을 합친 단어로 보아 이렇게 해석했다.


  * 丘는 上, 三 등으로 판독하기도 했으나 주운태 탁본상 丘자가 맞고, 丘자에 ‘지역’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렇게 해석했으며 落도 族으로 읽은 사람도 있으나 6~700이라는 숫자로 보아 部族보다 部落이 가깝다고 보았다.


  * 營은 獲, 當으로 읽은 학자도 있으나 문맥상 獲의 의미가 맞지만, 탁본을 확인한 결과 營이 확실하고, 營자에 ‘얻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문맥상 우마군양의 풀이씨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 ‘因’은 여러 의미 중 ‘종전대로 따르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 산서성 동남부 곡옥현을 흐르는 강수 = 람수이다.     © 편집부

 

(편집자 주)  제목: 비려(碑麗)와 염수(鹽水)는 어디인가? 

http://greatcorea.kr/sub_read.html?uid=94&section=sc2&section2= 참조

 

근자에는 염수(鹽水)가 아니라 람수(藍水)라는 주장이 있는데, 람수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중국통사 참고자료 고대부분(中國通史參考資料古代部分)-4에 “람수는 산서성 둔류현 서남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장으로 들어간다(蓝水,源出於山西屯留县西南,东流入漳。)”라는 문구가 있고, 보다 상세한 자료로는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 나오는 “강수(絳水)는 산서성 동남부 둔류현을 흐르는 강”이라는 설명이 있어 산서성 장치(長治)시 일대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번역) 강수 : 산서성 둔류현 서남 80리 반수산 남쪽에서 나와 동으로 로성현 경계와 만나는 장촌까지 흘러 장수로 들어간다. <수경주>에서는 진수라 한다, <청일통지> ‘수경주’에 강수라고 있는데 무람수라 하는데 그 물길이 모두 같다. 다른 이름으로 진수라 한다. ‘위서지형지’에는 강수와 람수가 있는데 물길이 같다. 즉 강수가 람수이다.
 
(원문) 绛水 : 源出山西屯留县西南八十里盘秀山之阴,八泉涌出如珠,合而东流,至潞城县界交漳村入漳,水经注谓之陈水,《清一统志》水经注有绛水而无蓝水,其绛水所行之道,皆今蓝水也,而别有陈水,则今绛水所行之道也,与今府县诸志不合,惟魏书地形志有绛水,又有蓝水,与今水道相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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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11 [22:42]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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