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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전에서 백제의 실권자를 참수한 광개토태왕 (3부)
유럽의 정복왕 알렉산더보다 더 넓은 땅을 정복한 광개토태왕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8/10 [15:24]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복군주 광개토호태왕의 빛나는 업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호태왕 즉위 당시 주변국들의 상황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백제에서는 385년에 침류왕이 죽었는데 태자 아신이 나이가 어리다보니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침류왕의 첩이었던 가리(佳利)가 정부(情夫)인 시동생 진사(辰斯)를 왕으로 올리고 황후가 되어 정치를 전횡하고 있었다. 호태왕이 즉위한 해 10월에 진사왕이 재위 8년 만에 죽자 침류왕과 가리 사이의 장자 아신(阿莘)이 다음 보위에 오른다.

 

이에 대해 대부분 학자들은 조카 아신이 숙부 진사왕을 죽이고 백제왕이 되었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아래 <일본서기>의 이상한 기록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홍원탁선생과 김성호선생의 비류백제설을 추종하는 일부 재야사학에서는 숙부 진사왕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아신이 왜로 들어가 왜왕 응신과 결탁해 왜병을 이끌고 와서 사냥터에서 진사왕을 죽이고 백제의 왕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장성한 아신이 모친의 새 남편(의붓아버지)이 된 진사왕을 죽여야 할 정도로 백제에 긴박한 왕권투쟁이 있었다는 기록도 없고, 모친 가리가 있는 상태에서는 아신이 가장 강력한 왕위계승자였는데 굳이 미리 숙부를 죽일 이유가 있었겠는가? 위 주장은 <고구리사초략>이 출간되기 전에 나온 주장이므로 초략의 내용과 대조해보면 아무런 근거 없는 낭설이다.  

 

▲ KBS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진사왕이 조카 아신에게 죽임을 당한 장면     © 편집부

 

(2) 37년째 신라를 다스리고 있던 내물(奈勿) 이사금은 호태왕이 즉위하자 두 왕녀를 후비로 보내고 종친인 실성(實聖)을 볼모로 보내 고구리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실성은 402년에 내물 이사금을 이어 다음 이사금이 되는 인물이다. 이듬해 왜가 쳐들어와 금성이 5일간이나 포위되었으나, 신라는 기병 이백 명과 보병 천 명으로 독산(獨山)에서 왜병을 협공해 크게 무너뜨린다.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독산진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데, 번 육안현으로 추정된다.

独山镇(독산진) : 在安徽六安县西南八十里北依独山西通麻埠麻埠镇(안휘성 육안현 서남 80, 북쪽은 독산에 의지하고, 서쪽은 마부진과 통한다)  

필자 주 : 독산은 산동성 남부에 있는 독산호로 보인다. 

 

在湖北黄梅县东二十里临独山河为市独山河出县东北南流入感湖(호북성 황매현 동쪽 20, 독산하와 임해 시로 했고, 독산하가 현 동북에서 나와 남쪽으로 흘러 감호로 들어간다)

 

(3) 왜에서는 389년에 신공왕후가 죽고 이어 응신이 3년째 통치하고 있었다. <일본서기>백제 진사왕이 무례하므로 사신을 보내 책망했더니 백제국이 진사를 죽여 사죄했고, 아화(阿花=아신)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라는 이상한 기록이 있는데, 마치 백제가 왜왕 응신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4) 중국에서는 516국 시대의 최강자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왕이 비수전투에서 동진에게 크게 패하자, 384년 그의 휘하장수였던 모용수가 후연(後燕), 모용충이 서연(西燕), 강족 요장이 후진(後秦), 385년에는 선비족의 걸복국인이 서진(西秦), 386년에는 저족 여광이 후량(後凉) 등을 세워 다시금 동진 포함 6개국의 할거하는 대혼란의 시대가 계속되고 있었다.  

 

<삼국사기>에 평범하게 기록된 호태왕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복군주 광개토태왕을 흔히 동양의 알렉산더대왕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호태왕은 광개토경평안(廣開土境平安)’이라는 그 휘호 그대로 알렉산더대왕보다 더 광활한 영토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훗날 징기스칸이 동유럽까지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미 그러한 틀을 만들어놓은 조선과 고구리의 우수한 유전인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정사(正史)<삼국사기>에는 호태왕 공적비문의 내용이 대부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그래서 그런지 국사교과서에도 호태왕이 정복한 영토에 대해 상세한 기술이 없다. 단지 장수왕 때 남하정책으로 집안에 있는 국내성에서 대동강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하면서 고구려의 최전성기 영토라는 지도가 올라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지도 역시 반도사관의 영향으로 한반도와 만주를 못 벗어나고 있다. 그나마 북한사학계에서 덕흥리고분의 묵서명과 북경 부근에 고려영(高麗營)이라는 지명이 있다는 이유로 광개토태왕이 북경 부근까지 진출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또한 광개토호태왕의 위대한 업적인 영락대통일이라는 역사용어는 재야사학계에서만 언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 고구려 최전성기인 장수왕 때의 영토     © 편집부

 

▲ 덕흥리고분 발견 후 일본 아사히신문의 기사를 보도한 국내신문     © 편집부

  

국사교과서만 그럴까? 국민들에게 파급력이 큰 드라마는 어떠했는가? 두 차례 광개토태왕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으나, MBC 태왕사신기는 호태왕의 삼각관계 연애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고, KBS 광개토태왕은 516국의 작은 나라였던 후연(後燕)을 과대평가해 고구리의 맞상대로 묘사했고 호태왕을 호전전인 전쟁광으로 표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결국 두 드라마 역시 호태왕의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 내용이다. (상대의 침략에 방어한 기록은 생략)

* 원년 7월 남으로 백제를 쳐 10성을 빼앗고, 9월 거란을 쳐 500명을 사로잡고 만 명의 고구리 백성을 데리고 돌아왔다. 10월 백제의 관미성을 20일 만에 함락시켰다.

* 48월 패수(浿水) 가에서 백제와 싸워 크게 무너뜨리고 8,000명을 사로잡았다.

* 11년 후연의 숙군성을 치니 연의 평주자사가 성을 버리고 도망갔다.

* 1311월 후연을 침범하였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광개토태왕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복군주라 말할 수 있을까?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은 호태왕 공적비문에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은 그야말로 작은 전쟁이었던 것이다.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사기>는 조선왕조가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호태왕 공적의 상당부분을 누락·축소시킨 편집된 사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제 석현성을 빼앗는 호태왕

 

<고구리사초략>“2(392) 임진 7, 태왕이 친히 4만의 병력을 이끌고 백제를 정벌해 석현(石峴)성에서 진가모를 참하고 네 길로 나누어서 그들의 성과 성채 12개를 빼앗았다. 9월에 군대를 옮겨 거란을 공격해 남녀 35백을 사로잡았고, 유민과 잡혀갔던 만여 명도 데리고 돌아왔다. 백성들 모두가 머리에 수유(茱萸)나무 가지를 꽂고 축하했다. 이것이 ‘99의 풍속으로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삼국사기 백제국본기>에는 가을 7월 고구려 왕 담덕이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북변을 공격해 석현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다. 담덕이 용병술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진사왕이 나가 항거하지 못하니, 한수 북쪽의 여러 마을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 고구려고분벽화 좌측에 그려진 적장 참수도     © 편집부

  

호태왕이 백제의 석현성을 함락시킨 후 참수한 진가모는 당시 백제의 최고권력자인 가리 황후의 오빠이다. 진가모는 무척 용감한 장수였으나 무모한 설욕을 위해 군사를 사용한 적이 종종 있어 사람들은 그를 무모하다고 평했다. 진가모는 여동생 가리 황후의 힘을 믿고는 진사왕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석현성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삼국사기>로부터 한수 이북에 있는 지역(산서성 남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호태왕이 백제의 10여성을 빼앗은 후 4만 병력을 그대로 방향만 돌려 2달 후에 거란을 공격했다는 것은 백제의 석현성이 거란족이 살고 있는 땅과 그다지 멀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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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10 [15:2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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