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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말기 패수의 위치에 관한 제학설과 문제점 (1부)
고대 한중 국경선인 패수에 대해 언급한 중국 사서들
 
이찬구 (사)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기사입력  2017/09/08 [18:36]

목차

1. 문제의 제기

2. 패수관련 문헌의 소개

3. 패수에 관한 종래의 학설

4. 사기집해3() 위치로 본 패수

5. 결론에 대신하여-패수는 어디인가?

 

1. 문제의 제기

 

박지원(1737~1805)아아, 후세 선비들이 이러한 경계를 밝히지 않고 함부로 한사군(漢四郡)을 죄다 압록강 이쪽에다 몰아넣어서, 억지로 사실을 이끌어다 구구히 분배(分排)하고 다시 패수(浿水)를 그 속에서 찾되, 혹은 압록강을 패수라 하고, 혹은 청천강(淸川江)패수라 하며, 혹은 대동강(大同江)패수라 한다. 이리하여 조선의 강토는 싸우지도 않고 저절로 줄어들었다. 이는 무슨 까닭일까. 평양을 한 곳에 정해 놓고 패수 위치의 앞으로 나감과 뒤로 물리는 것은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르는 까닭이다.”라고 제각각의 패수설에 개탄하였다.

 

단재 신채호는 만일 지금의 패수-대동강을 고()패수로 알고, 지금의 평양-평안남도 수부를 고()평양으로 안다면, 이는 평양을 잘못 아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곧 조선의 역사를 잘못 아는 것이 된다고 지적하고, 우리역사의 고평양, 고패수는 한반도 밖의 요동 봉천성(奉天省)의 해성현(海城縣) 헌우락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일본인 이나바 이와키치(稲葉岩吉)가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고, 쓰다 소오키치(津田左右吉)한서의 패수는 대동강으로, 사기의 패수를 압록강으로 비정하고, 이병도는 한백겸의 학설을 이어 자칭 최후로 결정을 내린다면서 대동강을 열수로, 청천강을 패수로 비정하였고, 중국 담기양도 중국역사지도집에서 패수를 역시 청천강으로 보고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노태돈은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는 지금의 평양이라고 지적하고, 고조선 말기 및 위만조선은 한()과 패수를 경계로 하였으며, 그 패수는 난하나 대릉하가 아니라 양평과 청천강 사이에 있는 압록강이라고 주장했다. 해방이후 대동강이나, 청천강, 압록강이 패수라는 학설이 제도권을 장악하였고, 여기에 한사군의 위치까지 함께 연동되면서 식민사학이 공고한 뿌리를 내려갔다. 이 때 요동 패수설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학자가 북한의 리지린이다. 그는 일제 식민사학의 불온성, 중국 대국주의 사학의 오만함, 고고학 연구의 자의성을 극복해나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패수에 관한 국내의 전문적 연구실적은 빈약한 편이다. 하지만, 오강원의 고조선의 패수(浿水)와 패수(沛水)(1998), 박준형의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중심지와 서계의 변화(2012),11) 이승수의 패수설 산고(2015), 신용운의 조선시대의 패수논쟁과 그 의미(2016) 등이 발표되어 패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으나, 아직도 식민사학을 떠받치고 있는 속칭 한반도 평양패수설은 시들 줄 모르고 있다.

 

이에 필자는 패수의 새로운 위치 고정(考定)을 위해 사기집해에 실린 장안(長安)의 습(), (), ()‘3()’에 대한 재해석으로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고조선 말기의 패수 문제를 시기별, 단계별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하되, ()의 입장이 아닌 고조선의 입장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 ‘3에 대해 이마니시류(今西龍)3수 중에 열수를 한반도 안의 대동강이라고 주장한 반면에, 윤내현은 이 ‘3를 곧 난하(灤河)의 지류라고 새롭게 제시하여, 한반도 밖으로 우리의 눈을 돌려놓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이 ‘3는 평양 대동강이 아니고 습수인 하북성의 영정하(永定河)를 기본으로 삼아 밝혀야함을 11세기의 자치통감1136시대의 석각(石刻)지도인 禹跡圖(우적도)등을 근거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로써 평양 주변 패수설의 허구를 지적하고 영정하와 이웃한 새로운 강, 즉 패수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오늘의 학술대회를 통해 다양한 패수학설이 제기되길 바라며, 나아가 패수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와 대화와 소통으로 한반도 평양 패수설이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패수설이 열려 역사 광복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패수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로 비정한 식민사학계     © 

 

2. 패수 관련 문헌의 소개

 

1) 중국 문헌

패수(浿水)에 대한 종래의 인식을 검토하기 위해 윤내현의 고조선연구에 수록된 자료를 중심으로 서술하려고 한다.

 

위만 이전 고조선 서부 국경선으로서의 패수

먼저 패수가 고조선과 관계를 가지고 나타난 기록을 보면 사기』「조선열전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나라는 전성했던 시기부터 일찍이 진번과 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군리를 두기 위해 장새를 쌓았다. 진나라가 연나라가 멸망시키고 (그것을) 요동 외요에 속하게 하였다. ()한이 일어났으나 그것이 너무 멀어서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요동의 옛 요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浿水)’에 이르러 경계로 삼아 연에 속하게 하였다. 연왕 노관이 (서한에) 반기를 들고 흉노로 들어가자 ()만도 망명을 했는데, 천여 명을 모아 무리를 만들고 틀어 올린 머리에 오랑캐 옷을 입고서 동쪽으로 도망하여 요새를 빠져나와 패수(浿水)’를 건너 진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거주하였다."

 

이 기록에 의하면 패수는 위만이 망명하기 이전 서한(西漢) 초부터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이었으며 위만이 망명할 당시에도 그대로 국경선을 이루고 있었다. 서한(西)은 서기전 202년에 건국되었고, 위만은 서기전 195년에 고조선의 서부 변경으로 망명했으므로 서기전 3세기 말부터 패수가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이었던 것은 분명하.

 

그러나 위 기록의 내용만 가지고는 패수의 위치나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이 지금의 어디였는지를 전혀 밝혀낼 수가 없다.지난날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확인하기 위해 패수라는 명칭을 가진 강을 찾는데 열중했다. 그러나 그러한 영구 방법은 자칫 큰 잘못을 저지를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패수라는 강 이름이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수도 있고 바뀌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한(西漢)시대 요동군 번한현 패수(浿水)

번한현에도 패수가 있었다. 한서』「지리지<요동군> ‘번한현에 대한 반고 주석에패수(沛水, 汗水)(국경의) 요새 밖으로 나가 서남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패수(沛水)자가 패수(浿水)와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그러나 패수라는 강은 원래 처음부터 중국인들이 한자로 명칭을 붙인 것이 아니었다. 패수(沛水)도 패수(浿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윤내현은 패수(沛水)=한수(汗水)에 따라 난하에 한수(汗水)가 있는 점을 들어 난하가 곧 패수라고 주장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특히 정인보는 이 패수(沛水)를 대릉하로 보고 있다.

 

서한시대 낙랑군 패수현 패수(浿水)

낙랑군 패수현에도 패수가 있었다. 한서』「지리지<낙랑군> ‘패수현에 대한 반고 주석에는, “강이 서쪽으로 증지()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석의 내용에는 강 이름이 나타나 있지 않은데, 그 이유는 강 이름이 그곳의 현명과 동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패수현에 있었던 이 강의 명칭도 패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낙랑군 누방현에서 나온 패수

설문해자에도 패수(浿水)가 보인다. 그 기록을 보면, “패수는 낙랑() 누방()을 나와서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또는 패수현에서 나온다고 되어 있다. 설문해자동한(東漢)시대에 허신에 의해 편찬되었으므로 이 패수는 동한시대의 패수이다. 이는 아래에서 말하는 수경의 원문(누방현에서 나온다)과도 일치하는 면이 있다.

 

역도원이 수경주에서 제기한 대동강 패수

수경주에는 위의 패수들과는 다른 패수가 소개되어 있다. 수경의 본문에는, 패수는 낙랑() 누방현을 나와 동남으로 임패현을 통과하여 동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패수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기록은 설문해자의 패수에 대한 설명보다 동남으로 임패현을 통과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패수는 낙랑군 누방현을 나와 동쪽에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으므로 설문해자에 소개된 패수와 동일한 강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주해를 단 역도원은 이와는 다른 패수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패수에 대수경본문 설명에 의문을 품고 나름대로 다른 패수를 찾아낸 것이다. 수경주에 실린 역도원의 패수에 대한 새로운 주해를 보면, “내가 번사(고구려 사신)를 방문하여 (물었더니 그는) 말하기를 성(고구려의 도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고 기록고 있다. 역도원은 북위시대(서기 386~534) 사람으로 서기 469년부터 서기 527년 사이에 생존했다. 그는 고구려 사신의 말대로 고구려의 도읍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했으므로 패수는 평양의 남쪽에 있는 강으로 지금의 대동강이라고 주장한다. 대동강이 패강(패수)으로 불린 것은 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도 확인된다.

 

⑥ 『요사』「지리지의 요하 패수

 요사』「지리지에도 다른 패수가 기록되어 있다. 요사』「지리지에는 동경요양부의 지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지금의 요하(遼河) 부근에 패수가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표하·청하·패수가 있는데 (패수는) 니하(泥河)라고도 부르고 또 헌우락이라고도 부르는데 물이 많고 헌우라는 식물이 자란다.”고 기록하고, 동경요양부의 요양현 주석에는 본래 발해국 금덕현의 땅이다. 한의 패수현이었는데, ()려가 바꾸어 구려현을 삼았고 발해는 상락현을 삼았다.”고 했다.

 

위 두 기록을 종합해볼 때 이 패수는 동경요양부 요양현에 있었다. 그런데 요사의 편찬자는 이 지역이 한대(漢代)의 패수현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본 것은 그곳에 패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의 영토는 이곳에 이르지 못했으므로 요사편찬자는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통지에는 개평현에 있는 어니하가 이 패수이며 헌우락이라고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패수는 지금의 요하 근처에 있었던 또 다른 패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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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08 [18:36]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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