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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고유명절도 모르는 한심한 한국인들 (5부)
칠석날 잉태되어 단오날 태어난 고주몽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9/17 [18:57]

 

<고구리사초략>에 호태왕이 “2(392) 임진 7월에 친히 4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백제를 정벌해 석현성 등 12개 성을 빼앗고, 9월 군대를 옮겨 거란을 공격해 남녀 3,500명을 사로잡고 유민과 잡혀갔던 고구리 백성 만여 명도 데리고 돌아왔다. 백성들 모두가 수유(茱萸)나무 가지를 머리에 꽂고 축하했다. 이것이 ‘99의 풍속으로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호태왕이 백제와 거란을 정벌하고 개선한 99일은 우리 민족의 전통명절이 된다. 그날 백성들이 머리에 꽂은 수유(茱萸)나무는 현재는 간편하게 쉬나무로 발음되는 나무로, 키가 10여 미터이고 둘레가 한 아름이나 되고 한반도 중부 이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따라서 이 기록만 봐도 호태왕 당시 고구리의 도성(국내성)은 한반도 북부인 압록강 북쪽에 있는 집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은 홀수 문화

 

우리 민족은 음양사상에 의해 홀수를 양()이라 하고 짝수를 음()이라 하여 홀수를 길한 숫자로 여겼다. 즉 우리는 홀수 문화인 반면에 한족은 호사성쌍(好事成雙=좋은 일은 쌍으로 이루어진다)이라 하여 짝수를 선호하는 문화이다. 우리는 삼세판이라든가, 제사에서 술을 쳐도 3잔이요 마셔도 3병이요, 3번 절하고 절할 때 마다 3번씩 도합 9번 머리로 바닥을 두드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라는 절 예법도 있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3이라는 숫자를 특히 좋아하고, 중국은 재화와 관련된 8이라는 숫자를 선호한다.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이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하며 삼배구고두로 절했다는 이유로 치욕의 항복의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편견으로 청 태종은 중화사대주의에 마취된 인조임금에게 조선은 명나라와 같은 한족이 아니라 청나라와 같은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일부러 단군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삼배구고두라는 전통 절 예법을 강요했던 것이다.

 

▲ JTBC 드라마 ‘꽃들의 전쟁’에서 청태종에게 항복하면서 삼배구고두 후 이마가 깨진 인조임금     © 편집부

 

나아가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홀수가 겹치는 날을 길일이라 하여 음력 1월 1일을 설날, 3월 3일을 삼짓날, 5월 5일을 단오날, 7월 7일을 칠석날이라 하고, 9월 9일을 양이나 빛이 겹친다는 뜻인 중양절(重陽節) 또는 중광절(重光節)이라고 한다. 중양절이 되면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머리에 수유나무 가지를 꽂거나 수유나무 열매를 채운 주머니를 차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국화주를 마시며 노니는 풍습이 있었다. 그 유래가 바로 호태왕의 개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중양절에 대해 이상한 전설을 남겨 우리의 고유명절을 나쁘게 폄하해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후한 때 예언을 잘하는 도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제자에게 ‘9월 9일 너의 집에 큰 재앙이 있을 것이니, 급히 가서 집안사람들에게 각각 붉은 주머니에 수유나무 열매를 담아 팔뚝에 걸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국화주를 마시게 하면 재앙을 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제자는 가족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다가 해질 무렵 내려와 보니, 집에서 키우던 가축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한마디로 중양절은 중국의 명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단오날은 고주몽 탄신일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홀수가 겹치는 이러한 명절들을 중국의 명절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를 중국과 일본에게 빼앗기다보니 이제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명절도 중국의 명절로 알고 있는 실정이다. 일예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12년간의 편찬기간을 거쳐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체계적으로 정리·집대성했다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는 단오의 유래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하겠다. 


“단오의 유래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부터이다. 굴원(屈原)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멱라수(汨羅水)에 투신자살했는데 그날이 5월 5일이었다. 그 뒤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단오가 굴원의 죽음을 추모하는 날이라면 조용하고 숙연한 날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단오는 말의 간지인 월과 의 날로 1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날이라 우리는 큰 명절로 여겨 여러 가지 즐거운 축제행사가 민속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 창포에 머리감기, 쑥과 익모초 뜯기, 부적 만들어 붙이기,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비녀 꽂기 등의 풍속과 함께 그네뛰기·씨름·석전(石戰활쏘기 등 여러 민속놀이가 즐겁고 흥겨운 분위기로 행해진 것으로 보아 단오는 분명 굴원의 죽음을 추모하는 날이 아닌 것이다.

 

원래 음력 55일 단오는 고구리 시조 고주몽의 탄신을 기념하는 민족의 명절이었다. <북부여기>“5세 고두막 단군 30년 임인(B.C79) 55일에 고주몽이 분능에서 태어났다.”는 기록과, <가섭원부여기>시조 해부루의 8년 임인 55일 유화부인이 큰 알 하나를 낳으니 한 사내아이가 그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름을 고주몽이라 불렀는데 생김새가 뛰어났다.”는 기록이 있어 그러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 단오가 굴원의 제삿날이라면, 이처럼 흥겨운 축하 농악공연을 할 수 있는가?                                      © 편집부


 

칠석날은 고주몽이 잉태된 날

 

칠석날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그 전설을 보면, “옛날 천제의 목동인 견우(牽牛)와 천제의 손녀인 직녀(織女)가 서로 사랑에 빠져 아무 일을 안 하자, 화가 난 천제가 두 사람을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놓았다. 두 남녀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까치와 까마귀들이 매년 77일 밤(칠석)이 되면 천제 몰래 하늘로 올라가 날개를 펴서 오작교(烏鵲橋)라는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까치와 까마귀는 모두 머리가 벗겨지고, 칠석날과 그 이튿날 두 사람이 흘린 반가움과 이별의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한다.”

 

견우와 직녀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시경(詩經)인지라, 이 전설은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중국 후한 때 만들어진 효당산 석실 안 화상석의 삼족오도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전한 이전으로 소급될 수 있다.”고 하면서, “주나라 왕자 교가 봉황곡을 울리며 신선이 되어 도사 부구공의 부인과 만났다는 날이 칠석이며, 서왕모가 자운거를 타고 전상에 내려와 장수를 원하는 한무제에게 요지 선도를 올린 날 역시 칠석이다.”라고 하여 칠석은 중국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음력 77일 칠석날 역시 중국에서 기원된 명절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먼저 전설에 등장하는 까마귀와 위 삼족오도에서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홀수가 중복되는 날을 길일로 여긴 민족은 한족이 아닌 동이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군조선 때부터 전해 내려오던 칠석날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시경에 적혔든가 아니면 후대에 첨가된 것이 아닌가 한다.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불리지는 일찍이 서쪽 압록강변을 지나다가 하백녀 유화부인을 만나 즐겨 그녀를 맞아들여 고주몽을 낳게 하였다. 때는 임인(B.C79) 55일이라 곧 한나라 불능의 원봉 2년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즉 유화부인이 불리지를 만나 고주몽을 잉태한 날이 바로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민족의 명절인 음력 77일 칠석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76년 평남 덕흥리에서 발견된 고구리 고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분의 석실벽화에 견우와 직녀가 그려져 있어 칠석은 분명 중국에서 기원한 명절이 아니라 고구리 시조 주몽의 잉태를 축하하는 우리의 명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칠석이 중국의 명절이었다면, 칠석의 주인공 견우와 직녀가 고구리 고분벽화에 그려질 리가 있었겠는가!

 

▲ MBC 드라마 주몽에서 칠석날 유화부인이 주몽을 잉태하는 장면     © 편집부
▲ 덕흥리고분에 그려진 견우와 직녀는 고주몽의 부친과 어머니 유화부인 아니겠는가?     © 편집부



 

현재 중국백과사전은 이러한 칠석날을 중국 고유의 명절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명절을 마치 자기네 것으로 빼앗아간 것이다. 참고로 음력 33일 삼짓날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명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민족 고유명절들의 유래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심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쌍하기도 하다.

 

(번역) 중국에서 발원한 중국 전통명절인 칠석절은 중화인 지역 내지 한족문화의 영향을 받는 동아시아국가의 전통명절이다. 음력 77일 밤 또는 전날 밤에 부녀자들은 정원에서 직녀성을 향해 베를 짜는 기교를 내려달라고 기도한다. 그 기원은 자연에 대한 숭배 또는 부녀자들의 재봉기교를 바램에 있다. 우랑과 직녀의 전설은 애정의 날 상징이 되었다. 칠석절은 2006520일 중국 국무원이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해 현재 중국의 연인절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원문) 七夕节 (中国传统节日发源于中国是华人地区以及部分受汉族文化影响的东亚国家传统节日农历七月七日夜或七月六日夜妇女在庭院向织女星乞求智巧故称为乞巧其起源于对自然的崇拜及妇女穿针乞巧后被赋予了牛郎织女的传说使其成为象征爱情的节日2006520七夕节被中华人民共和国国务院列入第一批国家非物质文化遗产名录现被认为是中国情人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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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9/17 [18:57]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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