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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일개 조의에게 화살 맞고 도망친 수양제 (8부)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 천하의 주인공 고구려를 수차례 공격하다 멸망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11/26 [20:55]

 최근 G2국가의 위상이 서서히 변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전 세계를 혼자 주도해왔던 미국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만의 이익을 위해 고립주의를 선택한데다가 EU와의 갈등으로 인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마저 균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 미국 정가에서 트럼프 탄핵론이 언급되면서부터 심각한 국내문제에 빠져 세계를 돌아볼 틈이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러는 사이 자유무역의 선도적 수호자임을 자칭하고 있는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 1인을 중심으로 하는 내부 체제의 결속을 통해 명실상부하게 세계를 주도하는 G2국가로 거듭나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일 카자흐스탄 수도 아스타나에서 열린 제17차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통해 7개 주변 회원국들과의 결속을 다졌다.
 
SCO는 미국과 EU가 주도하고 있는 NATO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지역방위공동체이다. 설립 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타지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4개국이 회원으로 가입했고, 올해 인도와 파키스탄이 가입해 회원국은 총 8개, 인구는 전세계의 40%를 차지하고 면적은 유라시아 대륙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됐다. 더 놀라운 사실은 회원국의 절반이 핵보유국이라는 것이다. 
 
▲ SCO로 돌궐의 후손들인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손잡은 중국     © 편집부
▲ SCO 8개 중앙아시아 회원국들의 정상들, 좌측 3번째가 중국 시진핑 주석     © 편집부
 
위와 같은 미·중 정상의 상반된 행보가 자국의 존망뿐만 아니라 글로벌 질서에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또 미국의 내부 문제로 인해 미국의 동맹국들 역시 자중지란에 빠진 상태라 어부지리를 얻은 중국은 쾌재를 부르며 세계 속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서서히 대신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패권 강화에 대한 견제와 불만도 적지는 않으나 중국이 승승장구하는 행보를 미국 이외에는 막을 실력자가 딱히 없다는 게 현실이다.
 
만일 이러한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 지속된다면 미국은 중국에게 G2 지분의 상당부분을 넘겨야 할 것이다. 특히 중국 주변에 있는 국가들과의 국제관계에서는 지역적으로 볼 때 중국이 미국 대신에 그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 자명해진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 민족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SCO 회원국인 중앙아시아 4개국은 高句麗(고구려)의 형제였던 돌궐(突闕)의 후손들이다. 한국 정부가 올바른 역사를 깨우쳐 진작 그들과 손잡고 예전의 고구려와 돌궐과 같은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아마도 많은 중앙아시아 나라들과의 모든 상황이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그들의 역사를 잊고 우리보다 먼저 손을 내민 중국에 협력하게 된다면, 우리 민족의 위대한 고대사를 복원시키는 것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당연히 우리와 손잡아야 할 옛 형제들이 적 아닌 적과의 동침을 하고 있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안다는 것처럼 중요한 일이 없는 것이다.
 
高句麗 승려에게 화살 맞고 도망친 수양제
 
수양제는 3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해 요동성 등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자 별동대 30만 대군을 평양성으로 직접 진군하라 명했다. 을지문덕 장군이 위장 항복 전략과 청야전술을 써 수나라 군대를 유인, 살수에서 회군하는 수나라 군사의 99%를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는데 이를 살수대첩(薩水大捷)이라고 한다. 
 
패장 우문술을 쇠사슬로 묶고 수나라로 돌아갔던 양제는 이듬해(613년) 고구려를 또 침공, 관문인 요동성을 수차례 공격했으나 여전히 함락시키지 못하자 그대로 두고 진군해 오열흘 앞에서 고구려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때 본국에서 양현감의 반란 소식이 전해지자 그와 절친한 친구인 병부시랑 곡사정(斛斯政)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고구려로 망명하고 만다.
 
수양제는 밤에 장수들을 소집해 군사를 이끌고 철군했는데 군수품과 병장기와 공성도구가 산처럼 쌓이고 영루와 장막은 그대로 두고 돌아갔다. 수군이 갑자기 철군하자 고구려 군사들은 속임수인 줄 알고 추격치 않다가 이틀이 지나서야 추격했다. 요수에 이르러 본진이 건너간 것을 알고 후미를 쳤는데 그 수가 수만명이었고, 수군 수천명을 죽였다고 기록돼 있다. 이것이 수양제의 2차 고구려 침공이다.
 
▲ 수나라 대군과 요동성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고구려     © 편집부
 
양현감의 반란을 진압한 수양제는 614년 2월 또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침공해온다. 7월 수양제가 회원진(懷遠鎭)에 머무르고 수군 장수 내호아가 비사성에 당도했다. 고구려 군대가 이들을 맞아 싸웠으나 패하고 내호아가 평양으로 진격하자 영양태왕이 항복을 청하고 망명했던 곡사정을 돌려보내니 수양제가 내호아를 소환해 회원진에서 돌아갔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태백일사’에는 “영양대제는 내호아가 평양을 습격하려 하자 완병술을 쓰고자 계략으로 곡사정을 보냈다. 때마침 조의 소속 일인(一仁)이 자원해 따라가기를 청해 함께 갔다. 바친 표문을 수양제가 반도 읽기도 전에 일인이 갑자기 소매에서 작은 활을 꺼내 쏘아 양제의 머리를 맞히니 그가 놀라 자빠져 실신하자 신하들이 업고는 작은 배로 갈아타고 후퇴해 회원진에서 병력을 철수했다. 수양제가 신하들에게 말하길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몸소 작은 나라를 쳐도 승리하지 못하니 이는 만세의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라고 기록돼 있다.
 
객관적으로 ‘태백일사’의 기록이 옳다고 본다. ‘삼국사기’처럼 위기에 몰린 영양태왕이 항복하겠다면서 곡사정을 보내주자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던 수양제가 순순히 철군했다는 내용은 그간의 정황으로 봐선 설득력이 떨어진다. ‘태백일사’처럼 뭔가 철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상황이 발생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에 ‘태백일사’와 같은 내용이 기록돼 있어 그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 삼국유사와 태백일사에 기록되어 있는 일인의 수양제 저격     © 편집부
 
중국을 통일했던 수나라는 당시 천하의 주인공이었던 고구려에게 이같이 수차례 무모하게 도전했다가 내란이 일어나 결국 멸망하게 된다. 당고조 이연(李淵)이 도성인 장안을 점령해버리자 수양제는 도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외지에서 머물다 자신의 경호병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618년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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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6 [20:55]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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