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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최초로 공화제를 실시한 조선 (20부)
5,6,7,10,12,13,14,16,20대 9분 단군이 세습이 아닌 오가 출신
 
편집부 기사입력  2017/12/11 [09:34]

 

<단군세기> 5세 구을단군 재위 16

(원문) 계해 2(B.C 2098) 5월 황충(蝗蟲)의 떼가 크게 일어 온통 밭과 들에 가득 찼다. 단제께서 친히 황충이 휩쓸고 간 밭과 들을 둘러보시고는 삼신에게 고하여 이를 없애주기를 비니 며칠 사이에 모두 사라졌다.

을축 4(B.C 2092) 신독(身毒)사람이 표류하여 동쪽 바닷가에 도착하다.

정축 16(B.C 2084) 친히 장당경(藏唐京)으로 행차하셔서 삼신의 단을 봉축하고 많은 환화(桓花)를 심었다. 7월 단제께서 남쪽을 순수하사 풍류강(風流江)을 건너 송양(松壤)에 이르러 병을 얻어 곧 붕어하시니 대박산(大博山)에 묻혔다. 우가(牛加) 달문이 뭇사람들로부터 뽑혀 대통을 계승하였다.

 

메뚜기떼로 본 조선과 삼국의 위치는  

황충(蝗蟲)은 메뚜기 떼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혼자 사는 단서형(單棲型) 메뚜기가 아니라, 펄벅의 소설 대지에 묘사된 하늘을 가릴 정도로 무리를 져서 옮겨 다니는 군비이주형(群飛移住型) 메뚜기 떼를 말하는 것이다. 이 군비이주형 메뚜기 떼들은 먹이가 충분하면 초식성이나, 먹이가 부족하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잡식형으로 변한다. 이 군비이주형 메뚜기 떼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항상 폐허만이 남게 된다.

 

군비이주형 메뚜기 떼는 기상이변으로 정상적인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는 '사막 근처의 초원지대 및 유사한 스텝건조기후대지역에서 생겨난다. 즉 한반도는 군비이주형 메뚜기떼가 생길 수 있는 기후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또한 메뚜기는 뒷발이 길게 발달되어 있으나 날개가 시원찮아 장시간 날지 못해 황해 횡단을 할 수가 없기에 한반도에서는 군비이주형 메뚜기 떼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삼국사기>에 고구려에 8, 백제에 5, 신라에 14회 메뚜기 떼 피해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기록들은 기후와 토질로 보았을 때 중국 대륙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이지, 기후가 좋고 강수량이 풍부한 한반도에서는 절대로 생길 수 없는 기록인 것이다. 따라서 <단군세기>에 기록된 황충의 의미는 조선이 스텝건조기후대인 중국대륙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한 예를 보기로 한다. 신라 남해차차웅 15(AD18) 기록에 가을 7월 메뚜기 떼가 일어 백성이 굶주리므로 창고에 보관했던 곡식을 풀어 구휼하였다."가 있어 신라가 메뚜기 떼에 큰 피해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는 고구려 대무신제 1년이고 백제 온조대왕 36년인데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그런 기록이 없다.

 

27번의 메뚜기 떼 기록도 한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것이지 동시에 같은 해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 삼국의 대륙존재설을 입증해준다. 만일 삼국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이런 독자적인 기록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 황충은 집단이주형 메뚜기 떼를 말하는 것이다                                                           © 편집부

 

장당경은 어디인가? 

정축 기사의 장당경(藏唐京)은 나중에 대부여의 도읍이 되는 곳이다. 서경보스님은 장당경의 장()을 서장(西藏=티베트)의 약칭으로 보고 장당경은 티베트에 있고 치우천왕 이후 800년간 왕국을 유지했다.”고 주장했으나 그렇게까지 멀리 간 것 같지는 않고, 장당경은 말 그대로 당경(唐京) 즉 요임금이 도읍했던 평양(平陽)으로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를 말하는 것이다.

 

 

단군왕검과 요임금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조선과 당을 세운다. 요임금은 제요도당(帝堯陶唐)이라 하며 도읍지는 평양(平陽)으로 산서성 남부 임분시이다. 이후 요임금은 단군왕검이 파견한 순임금에게 굴복해 왕위를 넘겨주고 만다. 이후 순임금의 도읍지는 포판이었고, 하나라는 안읍, 상나라는 조가 등 계속 황하변으로 남진해간다. 

 

▲ 장당경은 말 그대로 당의 도읍지 평양(산서성 임분)     © 편집부

 

민족의 꽃이 될 수 없는 무궁화 

환화(桓花)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대부분 무궁화로 알고 있으나 진달래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무궁화는 원산지가 인도로 외래종이며, 온대지방에서는 7~10월 사이에만 피는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에서만 자생한다. 중국에서는 호남성.복건성.광서장족자치구 등 주로 양자강 남쪽 아열대지역에서 널리 자생하고 있어, 단군조선의 핵심강역인 산서성 이북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식물이다. 민족의 꽃이 되려면 북쪽이나 남쪽 어느 곳에서나 자생하는 꽃이어야 하는데, 38도 이남에서만 볼 수 있는 아열대 식물인 무궁화를 민족의 꽃 환화로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야생 무궁화 자생지는 황하 이남 따뜻한 지방이다     © 편집부

 

제위를 세습 않고 선출한 조선

 

4세 오사구단군의 뒤를 이어 오가(五加) 중 양가(羊加) 출신인 구을이 5세 단군으로 즉위하고, 5세 구을단군이 붕어하자 태자가 없었는지 우가(牛加) 달문이 뭇사람들로부터 뽑혀 대통을 계승하였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최초로 민주적 절차를 거쳐 단군을 뽑은 것으로 해석되어 이것이 인류 최초의 공화제 실시로 보인다

 

태자가 아닌 오가(五加) 출신으로 즉위한 단군은 5세 양가 구을, 6세 우가 달문, 7세 양가 한율, 10세 우가 노을, 12세 우가 아한, 13세 우가 흘달, 14세 우가 고물, 16세 우가 위나, 20세 우가 고홀 등 9분의 단군이다. 8세 우서한과 15세 대음단군은 태자에서 즉위했는지 오가 출신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오가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렇게 많은 단군들이 모두 태자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인류 최초의 공화제는 조선에서 실시했음이 확실하다 하겠다.

 

참고로 21세 소태단군 때 쿠데타로 집권한 색불루단군 이후에는 모두 태자가 즉위하다가 44세 구물단군과 47세 마지막 고열가단군이 세습이 아니라 추대되어 단제에 등극한다. 지금까지 최초의 공화제는 B.C 510년 경 로마제국에 의해 실시되었다고 알려졌으나, 그보다 1,500년 전에 이미 조선에서 단군을 세습시키지 않고 오가에서 유능한 사람을 최고통치자로 선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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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11 [09:34]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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