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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임나일본부설에 악용된 호태왕 비문 (8부)
가짜 임나일본부설을 위해 호태왕 비문을 조작한 일본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1/07 [20:41]

 

<고구리사초략>에는 “5년(395) 을미 8월, 호태왕이 비려를 정벌하고 있는 사이 백제의 진무가 또 그 빈틈을 노려 쳐들어오니, 호태왕이 기병 7천을 이끌고 가서 패수 북쪽에서 싸워 8천여 수급을 베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삼국사기>의 고구리국본기와 백제본기 공히 4년(395)으로 기록되어 있어 호태왕의 즉위년도가 1년 차이가 난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고구리사초략>에는 고국양제의 재위기간이 8년이었고 391년이 영락대제 즉위 원년이라 395년이 영락 5년인 반면, <삼국사기>에서는 고국양왕의 재위기간이 9년이었고 즉위 원년이 392년이라 395년은 즉위 4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391년의 간지는 신묘(辛卯)년이고, 392년은 임진(壬辰)년이다. 과연 어느 기록이 옳을까?

 

이 의문의 해답은 호태왕 비문에서 찾을 수 있다. 비문에는 “영락 5년 을미년에 왕이 비려가 끊임없이 침공하므로 왕이 몸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토벌했다 (永樂五年歲在乙未 王以碑麗不息征旅躬率往討)’라는 문구가 있어 을미년인 395년은 영락 5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다. 따라서 패수에서의 전투가 기록된 <삼국사기>의 395년이 영락 4년이라는 기록은 분명 오류인 것이 확실해졌다.

 

또한 <삼국사기>에서는 호태왕의 비려 정벌 기록을 지움으로써 395년 호태왕이 패수에서 백제 군사 8천명의 목을 벤 전투가 호태왕의 비려 정벌과 관련 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으나, <고구리사초략>에 의해 관련이 있음이 명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참고로 <삼국사기>에는 이상하게도 호태왕 비문에 새겨진 청사에 빛나는 훈적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되살아나는 임나일본부설 망령

 

그런데 이 차이로 인해 지금까지 일본이 주장했던 호태왕 비문에 있는 신묘년 기사(?)를 그 증거로 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까지 완전 허구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지게 된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일본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가 주장한 학설로, 4~6세기에 왜가 한반도 남부의 임나(가야)지역에 통치기구를 세워 200년간 식민지로 다스렸다는 허구의 역사이론이다.

 

임나일본부에 대해서는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그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본의 몇몇 교과서에는 그 내용이 그대로 실려 있는 실정이다. 최근 막무가내식 역사왜곡과 군사대국으로 우경화를 꾀하고 있는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잘못된 역사인식에 의해 일본 도처에서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일예로 현재 일본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우리 삼국시대 23개 유물 중 경남 창녕에서 출토된 용무늬 고리자루 칼과 금동 날개장식을 임나시대에 임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라고 표기해 소개하고 있다.  

 

▲ 남 창녕에서 출토된 우리 유물을 임나시대에 임나라고 소개하고 있는 일본 문화재청 홈피     © 편집부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아래 3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 <일본서기> 신공왕후기에 신라와 백제가 조공을 바쳤다는 내용의 기사.
(허구에 대해서는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6761 참조)
② 나라현 이소노가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되어 있는 칠지도의 명문
(칠지도 명문에 대해서는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6487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36971 참조)
③ 이외 391년 호태왕 비문의 신묘년 기사를 그 근거로 들고 있다.

 

임나(任那)의 위치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숭신(崇神)왕 65년 기사에 “임나는 츠쿠시국(築紫國)에서 2,000여리 떨어진 거리에 있다. 북쪽은 바다에 막혀 있고 (신라 도읍인) 계림의 서남에 있다.”라고 기

▲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의 북쪽에는 바다가 없다     ©편집부

록되어 있는데, 이 임나가 바로 한반도 남부에 있던  가야라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한반도 남부)의 북쪽은 바다로 막혀있지 않아 <일본서기>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

 

한국 학자들은 이 임나를 대마도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대마도는 북쪽이 아니라 사방이 바다로 막혀 있는 섬이다. 분명한 사실은 임나에 일본부가 있었는지는 차치하고 그 위치는 중국대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중심부는 현 중국대륙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서기>에서 설명한 임나의 북쪽 海는 바다가 아니라 황하 또는 큰 호수임이 분명하다 하겠다.   

                                       
호태왕 비문으로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한 일본정부
                                     
1883년 만주를 몰래 정찰하던 일본 육군참모본부 소속 사코우 가케아끼(酒勾景信) 중위는 집안에서 호태왕 비석을 발견하고는 비문의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만들어 귀국해 참모본부에 제출한다. 이후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5년간의 분석 및 해독작업을 거쳐 1889년 아세아협회가 간행하는 『회여록(會餘錄)』에 처음으로 그 내용을 발표했다.

 

쌍구(雙鉤)란 비면 또는 탁본에 백지를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글자를 하나씩 마치 본을 뜨듯 복제하는 작업을 말하며, 가묵(加墨)이란 복제한 백지를 바닥에 놓고 글자 사의의 여백을 먹물로 메워 글자가 하얗게 나타나도록 하는 작업을 말하는 것이다. 글자를 있는 그대로 찍어낸 원석탁본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한마디로 간단히 말해 가짜 탁본이라고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코우 중위가 만든 쌍구가묵본은 직접 비석에서 쌍구한 것이 아니라, 원석탁본을 놓고 책상 위에서 복제한 묵구(墨鉤)라고 할 수 있다.

 

▲ 좌측은 주운태 원석탁본과 우측은 사코우 중위가 만들어온 쌍구가묵본                               © 편집부

 

여하튼 이 쌍구가묵본은 회여록에 발표된 이후 일본왕실에 헌상되고 동경박물관에도 전시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도 일본의 각종 초·중·고교 교과서에 진짜 탁본인양 실려 있었다. 당시 일본 군부는 이 쌍구가묵본을 근거로 조선을 침략해 강제로 합병하기 위한 대의명분으로 삼았고, 심지어는 집안에 있는 호태왕비 자체를 일본으로 운반해 박물관에 세우는 일까지 계획하기도 했다.

 

일본 패망 전후에 일본고고학회 초대위원장을 지낸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는 호태왕 비문의 쌍구가묵본에 대해 “그 글 중에 우리 일본의 대륙정책이 1,500년 전에 얼마나 당당한 것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신라와 백제가 우리의 속국이었다고 명백하게 말하는 가장 오래된 근본자료로서 국사의 둘도 없는 보전(寶典)일 뿐만 아니라 동아상대사상의 보배로서 만주국은 제1의 국보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도대체 1883년 사코우 중위가 만든 호태왕비문의 쌍구가묵본에 어떠한 내용이 들어있기에 일본은 정부차원에서 그토록 호들갑을 떨었는지 지금부터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정한론(征韓論) 즉 일본의 조선 침략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임나일본부설의 결정적 증거가 되었던 호태왕 비문 신묘년 기사의 문구와 그 통상적인 해석은 지금까지 아래와 같았다.

 

“百殘新羅舊是屬民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 來到海破 百殘􀀀􀀀新羅以爲臣民"
(해석) 백잔(백제)과 신라는 예로부터 속민으로 조공을 바쳐왔다. 그런데 신묘년(391)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파하고 백제·􀀀􀀀·신라를 신민으로 삼았다.

 

즉 391년 신묘년에 왜가 바다를 건너와 고구려에게 조공을 바쳐왔던 백제·􀀀􀀀·신라를 파하고 신민 즉 식민지로 삼았다는 주장이었다. 일본은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인 􀀀􀀀를 가야(임나)로 임의대로 해석해 허구의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일본의 해석이 옳은 것일까? 과연 삼한 즉 마한(백제)와 변한(가야)와 진한(신라)은 200년간 왜의 식민지였을까?


< 다음 연재에서 그 허구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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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07 [20:41]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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