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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가능성 높은 시진핑의 대당성세호 (2부)
당나라 때 실크로드를 재현해 세계를 평정하겠다는 시진핑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1/18 [13:41]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당성세’(大唐盛世)를 구호로 내세우며 중국 역사상 최전성기라는 당나라의 꿈을 재현하기 위해, 유럽과 아프리카를 육로와 해로로 연결하는 현대판 실크로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중앙아시아 저개발 국가들에게 절실한 고속도로,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을 제공하기 위해 자금조달 창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까지 2016년에 설립했다.

 

중국은 나날이 쌓여가는 외화를 지금까지는 저수익의 미국 국채 등에 투자했었는데, 이제부터는 고수익의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겠다는 의도였다. 실제로 작년에 주변 66개국의 핵심인프라 건설에 투자총액 5천억 달러를 초과했다. 결과 투자된 국가의 평균 GDP 성장률이 4.6%로 올라 이전의 평균치를 1%나 넘어섰으며, 중국은 세계경제가 불안한 상황임에도 6.7%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그런데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경제적 효과보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되다보니 실제 경제적 효과는 구상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매주 충칭(重京)에서 5대의 화물기차가 독일로 향하지만, 화물을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기차는 한 대 정도이다. 유럽~중국간 육로운임이 여전히 해상운임보다 2배가량 비싸기 때문이다. 결국은 이런 초대형 프로젝트들은 현실이 구상과 잘 맞지 않을 시 부채가 되고 결국은 대출금 상환불능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일대일로 프로젝트 자체가 수많은 나라들의 국경선을 지나는 사업이다 보니 국가들끼리의 안보 갈등으로 육로수송이 순탄하지 않을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도는 인도양에서 중국의 위상이 커지기를 바라지 않으며, 러시아는 옛 소련연방의 일원이었던 중앙아시아에 다른 구상이 있을 수 있고, 터키와 이란 등의 생각도 중국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 신 실크로드의 주변국들이 과연 중국의 계획대로 움직일까?     © 편집부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당성세를 구호로 하여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 사업은 마치 당태종 이세민이 요동정벌을 하러 왔다가 참패해 돌아가며 자신의 결정을 뉘우치며 만일 위징(魏徵)이 살아있었다면 나로 하여금 이 원정을 하게 아니하였을 것이다.”라고 탄식한 말이 생각난다. 현재 중국에는 위징 같은 인물이 없는 것일까?

 

항상 죽음을 각오하고 당태종에게 간한 위징

 

위징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 어려서 집안이 가난했던 위징은 수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킨 이밀(李密)의 군대에 들어갔다가 이밀이 패하자 당으로 귀순했다. 이후 두건덕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위징의 재능을 높게 평가한 두건덕이 휘하로 받아들였다. 두건덕이 패하면서 생포되자 다시 당으로 돌아와 이세민의 맏형인 태자 이건성의 측근이 된다.

 

당시 위징의 주군이었던 태자 이건성은 날로 커져가는 동생 이세민의 인기와 권력을 불안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때 위징은 자신의 주군에게 이세민을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이건성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심 다음 왕위를 노리고 있던 동생 원길이 맏형에게 같이 이세민을 제거하자고 제안하니 그제서야 동의해 이세민 제거계획을 논의하게 된다.

 

이 정보를 입수한 이세민이 부왕에게 고변하니 이연은 건성과 원길에게 즉각 들라는 어명을 내린다. 태자 건성은 왕궁으로 들어오다가 결국 현무문에서 이세민이 쏜 화살에 맞아 죽는다. 이세민을 먼저 선수쳐 죽이지 않으면 결국은 이세민이 태자를 죽일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위징은 죽음을 각오하고는 자신의 집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데, 저승사자 이세민이 위징 앞에 나타나 네가 우리 형제들을 이간시킨 자렸다.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다그쳤다.

 

위징은 당당한 태도로 건성 태자께서 만약 제 말에 따랐더라면 오늘과 같은 화는 없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말이란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이세민을 먼저 죽였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 아쉽다는 말투였다. 그리고 자신이 주군을 보필하기 위해 충언한 것은 죄가 아니며, 자신이 이세민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였음을 인정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위징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이세민은 위징이 지금 죽음을 각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렇듯 소신대로 말할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세민은 지금 그런 인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세민은 위징을 용서해 중용했으며, 위징은 그 은혜에 보답해 태종에게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게 된다.    

 

▲ 항상 당태종에게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던 위징     © 편집부

  

이후 당태종은 위징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원리에 대해 물었는데, 그는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배를 뜨게 해주지만 반대로 배를 뒤집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예로부터 나라의 흥망은 쌓아놓은 곡식의 다소에 있지 않고, 백성들이 괴로우냐 즐거우냐에 있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된 당태종은 수나라 멸망을 거울로 삼아 부역과 세금을 줄여주어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위징은 또한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있었는데, 집을 옮긴 뒤에는 자기 아내마저 잊었다고 하자 공자가 그 말을 받아 그 사람보다 더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자신이 제왕임을 잊은 걸(하나라 말왕) 과 주(은나라 말왕)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폐하께서 이 고사를 늘 명심하신다면 결코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시지는 않습니다.”라고 진언했다.

 

당태종이 위징에게 창업과 수성 중 어느 쪽이 어렵냐고 묻자 원래 창업이란 하늘의 뜻이지 백성들이 주는 것이 아니므로 그리 어렵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창업한 뒤에는 교만에 빠져 제왕이 사치를 위해 백성들에게 각종 부역을 강요하면 가뜩이나 배고픈 백성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가 피폐해지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창업보다는 수성이 더 어려운 법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위징의 간언은 준엄했으며, 때로는 임금을 정면으로 비난하기도 하여 당태종이 크게 화를 낸 적도 있었으나 그의 200여 간언을 대부분 받아들여져 당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정비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643년 위징이 죽자 당태종은 신하들에게 사람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의관을 바로잡고, 옛 것을 거울로 삼아 역대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아 자신의 득실을 알 수 있다. 위징이 죽음으로써 짐은 거울 하나를 잃고 말았다.”고 말하면서 몹시 슬퍼했다고 한다.  

 

이러한 위징 같은 인물이 없는 현재의 중국이기에 인민들을 배불리 먹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등 국가의 내실을 다지기도 전에 당태종의 요동정벌과 같은 초대형 해외프로젝트를 무모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은 결국은 당태종처럼 울면서 자신의 무모함을 한탄하며 피눈물을 쏟을 날이 있을 것이다. 일대일로 사업은 시진핑이 역사에 대해 무지하다보니 저지른 판단미스로 보인다.

 

▲ 눈도 잃고 요동정벌 실패에 절규하는 당태종. KBS 드라마 대조영의 한 장면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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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18 [13:41]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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