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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내현 교수의 패수 하북성 난하설 비판 (2부)
열수와 패수는 같은 강
 
황순종 고대사연구가 기사입력  2018/04/01 [22:17]

  2) 대륙설

 

  패수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설은 민족사학자 신채호·정인보 선생 등과 북한의 리지린, 그리고 학계에서 유일하게 윤내현 교수가 대표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그 견해들은 지금의 요녕성 지역으로 보면서도 요동의 헌우락으로부터 요서의 대능하를 거쳐 그 서쪽의 난하에 이르기까지 설이 엇갈려 있었다.

 

근래에는 재야의 연구자들 중 더 서쪽인 하북성의 조백하(潮白河)가 패수라는 설도 제기되었는데, 필자 또한 연구 결과 이 설을 정확한 것으로 믿게 되었다. 여기서는 다른 설들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비판을 생략하고 가장 서쪽인 난하설에 대해서만 비판하겠으며, 필자의 견해는 본론에서 상술하고자 한다.


  난하설을 대표하는 윤내현은 난하 하류의 동쪽에 갈석산이 있고, 이 갈석산이 장성의 끝으로 고조선과의 경계였기 때문에 역시 경계였던 패수가 난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어 타당한 결론이라고 볼 수 없다.


  첫째, 『태강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에 갈석산이 있는데 장성이 시작된 곳이다.”라고 한 것을 근거로, 지금 갈석산이 있는 곳을 낙랑군 수성현으로 보았으나 이는 잘못이다. 낙랑군은 한 무제가 설치했으므로 그 전에 쌓은 장성이 한 무제가 설치한 낙랑군에 있을 수 없다. 『태강지리지』에서 말한 낙랑군은 진(晉)나라 때 고구려에게 빼앗겨, 요동군 쪽에 이치(移置)한 낙랑군으로 보아야 한다. 


  장성의 동쪽 끝이나 갈석산에 대한 다른 기록들은 모두 요동이라고 했으며, 또 진(晉)의 낙랑군은 현이 6개 밖에 없어 한(漢)의 25개에 비해 볼 때 그곳을 빼앗기고 요동군에 이치하여, 명목상의 낙랑군을 유지한 것이다. 즉 지금의 갈석산은 후에 옮겨와 붙인 이름이며 따라서 난하도 패수가 아니었다.     

   
  둘째, 윤내현은 패수와 요수를 같은 강으로 보아 지금의 난하라고 하나 이것도 잘못이다. 필자도 두 강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것은 난하가 아니라 조백하임을 뒤에 설명했다. 요수에 대하여는 『회남자』「추형훈」에 “요수는 갈석산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진·한 때 6대 강의 하나인 요수는 긴 강으로 그 발원지인 갈석산은 내륙 깊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갈석산은 난하의 최하류에 있으므로 요수라는 난하의 발원지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도 요수가 나오는 갈석산이 다른 곳인데 지금의 갈석산으로 바다 가까이 옮겨온 것을 알 수 있다. 

 

▲ 윤내현 교수가 패수와 요수로 본 난하 동쪽 갈석산에는 장성이 지나가지 않는다.     © 편집부
▲ 난하 동쪽 하북성 창려현에 있는 가짜 갈석산                                                                                    © 편집부

 

 셋째, 낙랑군 조선현에 대해 『사기집해』에 습수·열수·선수의 세 강이 흐르며 또 합하여 열수가 된다고 했다.  윤내현은 세 강이 난하의 지류였다고 하면서 “지금의 난하가 유수라고 불리워졌음은 앞에서 말한 바 있는데, 『수경주』「유수」조를 보면 유수에는 무열수·습여수·용선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장안이 말한 습수는 습여수의 약칭이었을 것이며, 열수는 무열수의 약칭이었을 것이고, 선수는 용선  수의 약칭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선현의 위치를 알기 위해 습수·열수·선수와 한 글자씩 같은 습여수·무열수·용선수를 『수경주』「유수」조에서 찾아낸 것은 대단히 끈기있는 노력이지만, 그것들이 세 강의 약칭이었을 것으로 본 것은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하겠다. 습여수의 경우를 보면 『수경』에 유수 앞에 나오는데 이는 지금의 북경을 지나 천진으로 흐르는 영정하의 지류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윤내현이 난하의 지류라고 본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필자는 『수경』을 주석한 역도원이 『수경주』에서 조선현의 위치를 조작하기 위해 습수·열수·선수의 세 강을 이름을 비슷하게 붙여, 영정하보다 더 동쪽의 난하에 집어넣은 것으로 추정한다. 역도원의 패수 관련 조작은 뒤에 볼 것이다.   

   
  넷째, 창해군에 관한 것으로, 한 무제가 한사군을 두기 전에 위만조선에 속한 예(穢)의 군주 남려가 28만이나 되는 백성을 데리고 요동으로 망명하니 무제가 창해군을 두었다고 했다. 윤내현은 이 창해군의 위치를 지금 천진 남쪽의 발해 서안에 있는 창주라고 보았는데 이것은 매우 타당한 결론이다.


  그러면 남려가 수많은 백성을 데리고 간 요동군은 인접해 있어야 하는데, 윤내현이 보는 요동은 난하 동쪽에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많은 군중이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겠다. 그가 갈석산을 예나 지금이나 난하 하류에 고정된 것으로 보고 난하 동쪽이 요동이라 하나, 이는 타당하지 않다. 갈석은 중국의 기록에 적어도 세 곳이 나오는데도 시대별로 이러한 갈석의 이동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불찰이라고 하겠다.

 

2. 열수와 패수는 같은 강

 

  『사기』「조선열전」의 패수는 발해만의 서안 내지 서북안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강으로 나타남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이 위만조선의 멸망 후 낙랑군에 속했는데 그 위치를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같은 낙랑군을 흐른 열수를 먼저 규명하는 것이 유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한나라 수군이 위만조선을 침략할 때 열수의 하구인 열구로 상륙했기 때문이다.   

    
  이 열수는 『산해경』에 요동에 있다고 했는데, 『후한서』「군국지」의 ‘열구’에 대해 곽박이 『산해경』을 인용해 열수가 요동에 있음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한서』「지리지」낙랑군 조에는 “탄열현, 열수가 나와 서쪽으로 점제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다. 이러한 기록을 종합해보면 열수는 패수와 마찬가지로 요동군을 지나 낙랑군을 거쳐 바다(발해)로 들어가는 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열수나 패수가 지나는 요동이나 낙랑군은 지금의 요동이나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는 점으로, 학계의 정설이 잘못임을 보여준다. 


  열수는 위 『한서』「지리지」에 낙랑군의 탄열현과 점제현을 지난다고 했으나, 『사기집해』에는 낙랑의 치소인 조선현을 지난다고 했다. 즉 『사기집해』에 장안(張晏)의 말을 인용하여 “조선현에 습수·열수·선수가 있는데 이 세 강이 합하여 열수가 된다(朝鮮有濕水·列水·仙水, 三水合爲列水).”고 했다.

 

그런데 중국의 강들에 대해 집대성한 『수경』의 권13은 탑수(漯水)에 대해 기록했는데, 중국의 진교역(陳橋驛)은 『수경주』의 판본 중에는 이 탑수를 습수라고 한 것도 있다고 했다. 이 강의 상류는 지금의 상건하, 하류는 영정하로서  북경의 남부를 지난다는 사실은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도 나오는 공인된 설이다. 그러므로 <지도 1>의 영정하가 바로 위 장안이 말한 습수로서 조선현을 흐르는 강임을 확인하게 된다.


  한편 『수경』권14의 처음에 습여수(濕餘水)가 나오는데 이 강은 권13의 탑수(즉 습수)와 하류인 지금 천진 서부에서 합류하는 지류로서 <지도 1>의 지금의 북운하(北運河)이다. 습여수란 이름이 습수의 지류인 데서 나온 것이므로, 탑수를 습수라고 한 진교역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습여수는 장안이 말한 세 강 중 두 번째인 선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세 강 중 나머지 하나인 열수는 습여수 다음에 기록된 고하(沽河)로 추정할 수 있는데, 이 강은 습여수 바로 위쪽을 흐르다가 하류에서 습여수 및 탑수(습수)와 만난다. <지도 1>의 고하는 지금도 쓰고 있는 이름이며 또한 백하(白河)나 해하(海河)로 부른다.

 

▲  필자가 비정한 수경에 표시된 중국 동북지방(유주)의 강들                          © 편집부

 

  이 세 강은 모두 지금 북경을 지나며 동남쪽으로 흘러 천진의 서부 무청구 부근에서 합류하여 대고(大沽)에서 발해만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세 강이 만나는 무청구 부근이 낙랑군 조선현이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바다로 들어가는 대고가 바로 「조선열전」에서 한나라 수군이 발해를 건너 이르른 열구현이 된다. 이와 같이 낙랑군 전체는 천진 일대로 발해 서(북)안으로 드러나는데, 이러한 사실을 『한서』「지리지」의 기록으로 재확인해 보겠다.


  낙랑군에는 태수를 보조하는 동부도위와 남부도위의 두 도위가 있었다. 그런데 『한서』「지리지」를 보면 낙랑군 이외에 동북방의 유주와 북방의 병주에 속한 나머지 14개 군에는 동부·남부의 두 도위를 둔 예가 없다. 도위를 2명 둔 다른 8개 군에는 모두 동부·서부의 두 도위를 두었으며, 3명인 경우의 요동 등 4개 군에는 중부도위가 추가되었다. 유독 낙랑군에만 동부·남부도위를 둔 것은 낙랑군의 지리적 특성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즉 낙랑군이 발해의 서안에서 서북안으로 연결되는 지금의 천진 지역에 「 자 모양으로 위치했기 때문인데, 이는 위의 열수를 통해 본 낙랑군의 위치와 완전히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살펴본 열수는 지금 북경의 북쪽을 지나는 백하(해하)로서 순의구 북쪽에서 조하와 만나 조백하가 되는데, 이 백하와 조백하까지를 역시 패수라 하여 조선과 한나라의 경계였던 강이다. 이 조백하는 하류에 오면 두 갈래로 흐르는데 한 갈래는 남쪽으로 북운하가 되어 최하류의 천진에서 영정하와 만나 동남쪽으로 대고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이것이 옛 열수이다.


  다른 한 갈래는 동남쪽으로 흘러 조백신하가 되어 대고보다 약간 북쪽에서 바다에 이르는데 이것이 옛 패수에 해당한다. 결국 열수나 패수는 상·중류까지 같은 강으로 <지도 1>의 지금의 백하-조백하를 말하며, 하류에서는 둘로 나뉘어 열수는 지금의 북운하 -영정하와 합해지며 패수는 그 동쪽의 조백신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열수는 하류에서 조선현을 지나지만 패수는 조선현이 아니라 위 한서에 기록한 점제현에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한나라 수군이 왜 열수의 입구인 열구로 갔는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시 패수가 경계였으므로 패수의 동쪽에 있는 왕험성을 공격하려면 상식적으로 패수보다 동쪽에 있는 강으로 상륙해야 할 텐데, 패수보다 서쪽인 열수로 상륙했다는 것은 그곳이 한나라 땅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한나라가 조선과 경계한 패수 지역은 낙랑군이 있기 전의 요동군이었으며 그곳은 지금 북경 중부 지역으로 조백하 유역에 해당한다. 패수나 열수의 하류인 지금의 천진 일대는 조선의 영역이었기에 패수의 동쪽이 아닌 열수로 상륙작전을 펼 수 있었던 것이며, 그곳을 후에 한나라가 차지하여 낙랑군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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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01 [22:17]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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