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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수는 지금의 백하 -조백하 -조백신하 (3부)
 
황순종 고대사연구가 기사입력  2018/04/30 [19:49]

 3. 패수는 지금의 백하 -조백하 -조백신하

 

 위에서 이미 패수에 대한 결론은 말한 셈이 되었지만 여기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 타당성을 논하기로 하겠다. 사기』「조선열전에는 패수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없으나 그 흐름이 동서가 아니라 남북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유의할 만한 내용은 한나라 육군이 당초 위만조선의 패수 서군(西軍)’을 치다 실패했으나, 후에 다시 패수 상군(上軍)’을 파하고 왕험성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학계의 정설은 패수를 한반도로 보아 패수서군은 패수의 하류, 패수상군은 상류로 보았다. 그러나 패수가 대륙에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면 패수의 서군이나 상군은 대략 같은 곳으로 그쪽이 국경이고 패수의 하류는 국경 지역이 아닌 조선임을 짐작할 수 있다.

 

패수의 흐름이나 위치를 말하는 1차적 사료로는 한서』「지리지수경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패수의 흐르는 방향에 대해 두 기록이 정반대로 되어 있는 것이 문제를 어렵게 한다. 앞에서 보았지만 한서』「지리지요동군 번한현조에는 패수(沛水)가 새외에서 나와 서남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하였고, ‘낙랑군 패수(浿水)조에는 강물이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고 했다. 두 패수의 자가 한자가 다르지만 요동과 낙랑을 동시에 흐르는 같은 강으로 보이는데 학계에서도 특별한 이론은 없는 것같다. 이렇게 패수가 서쪽이나 서남쪽으로 흐른다고 했으나, 수경14 패수 조에는 흐름을 반대로 이렇게 기록했다.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

 

요동군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임패현은 한서』 「지리지나 후대 역사서에도 보이지 않으므로 착오로 보이는데, 패수현을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중요한 것은 패수의 흐름이 동남쪽 또는 동쪽으로 한서와는 정반대라는 점인데, 한 쪽이 거짓인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수경과 거의 같은 내용이설문해자(浿)에 있으니, “패수는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쪽으로 바다에 들어간다.”고 했다. 여기에는 임패현을 지난다는 내용이 빠졌는데, 이는 수경의 잘못을 알고 올바로 기록한 것으로 보겠다.

 

설문해자수경은 왕조에서 편찬한 정사(正史)가 아니므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후대에 변조했을 가능성이 적은 반면, 한서는 정사로서 이른바 중화사관에 따라 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편찬될 당시보다는 후에 로 바꿔 변조한 것이 아닐까 추론한다.

 

▲     ©편집부

 

한편 수경주에는 한서와 유사하게 패수의 흐르는 방향을 서쪽 또는 서북쪽으로 주석하며, 수경의 기록을 착오라고 했다. 그러나 저자 역도원의 주석은 타당성이 전혀 없다. 첫째, 그는 문헌에 의하여 논한 것이 아니라 북위에 와 있던 고구려 사신의 말을 인용하여 단정한 것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부족하다. 더구나 고구려 사신의 말했다는 내용이 문헌의 기록과 달라 믿을 수 없는데, 역도원은 수경주14 패수 조에 이렇게 썼다.

 

내가 고구려 사신을 방문하니 말하기를,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그 강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군 조선현을 지나는데 곧 낙랑의 군치(郡治)로서 한 무제가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서북쪽으로 흐른다.”

 

고구려 사신이 평양성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말했다고 썼으나 이는 믿기 어렵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대동강은 결코 패수가 될 수 없기 때문인데, 만약 위만조선 당시 대동강이 국경인 패수였다면 그 북쪽의 왕험(학계에서 말하는 지금의 평양)은 위만조선이 아니라 한나라의 강역이었다는 뜻이므로 이는 성립할 수 없는 논리이다. 그러기에 학계에서도 대부분 청천강·압록강을 패수로 보아 그 남쪽에 평양이 오도록 하고 그 남쪽의 대동강은 열수로 본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역도원은 대동강이 패수라는 터무니 없는 거짓으로 수경의 올바른 기록을 착오로 몰았다.

 

또한 고구려의 평양은 지금의 평양이 아니라 요동에 있었다. 고구려의 평양이 어디였는지 여기서 상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평양이 지금의 요동에 있었던 근거 한 가지만 들겠다. 612년에 수 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압록수를 건너) 동쪽으로 나아가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되는 곳에진영을 베풀었다고 했다(삼국사기』「고구려본기영양왕 23년 조).

 

여기의 압록수를 학계의 정설대로 지금의 압록강으로 본다면, 압록강을 건너 동쪽으로 가면 살수라는 청천강에 이를 수 있을까?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남쪽으로 와야만 청천강에 이를 수 있음은 상식이다. 그러므로 압록수나 살수는 한반도의 강이 아니라 요동에 있었다. 삼국유사』「법흥순도조려조에 요수는 일명 압록인데 지금은 안민강이라 말한다.”고 했다. 즉 지금의 요하가 압록수였으므로 이를 건너 동쪽에 살수가 있고 그 건너 평양이 있었다는 것으로, 지금의 요동임을 알게 된다.

 

또 고구려 사신이 평양이 어딘지 몰랐을 리는 없으니 뭐라고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역도원이 사신의 말을 왜곡하여 옮긴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는 수경주14에서 패수는 물론 그 앞의 유수·대요수·소요수를 수경에서 말한 강들과는 멀리 동쪽에 있는 다른 강들로 조작하여, 요서군·요동군을 지금의 요녕성인 것처럼 만들고 낙랑군은 평안도로 갖다 놓았다.

 

그 결과 권13,14에 기록된 7개의 강은 지금 북경 부근으로부터 평안도까지 수천 리에 걸쳐 드문드문 흩어지고 말았다. 수경이 웬만한 지류까지 다 기록한 책인데 권14에서만 수천 리에 있는 허다한 강들을 모두 생략하고 7개만 실었을 리는 만무하다. 이런 역도원에게 고구려 사신의 입을 빌어 거짓말하는 것 쯤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위 인용문에 패수에 대해 서술한 내용도 맞지 않다. 패수가 조선현을 지난다고 했으나 한서·수경·설문해자등 모든 문헌에 앞에서 보았듯이 조선현을 지난다는 기록은 없으며, 열수가 조선현을 지난다는 기록만 있다. 또 대동강을 패수로 단정하여 그 흐름을 서쪽 및 서북쪽이라고 했으나 이것도 그의 창작에 불과하다. 실제로 대동강은 서남쪽으로만 줄곧 흐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수경주는 조작의 의도를 가진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역도원은 패수 조의 마지막에한서』「지리지패수현, 강이 서쪽으로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에 들어간다.”는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것도 그 구절이 변조된 것을 알고 거기에 맞추기 위해 패수를 대동강인 것처럼 조작한 것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역도원은 위 인용문의 앞에 만약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면 패수를 건너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했다. 이것은 대동강이 서쪽으로 흐르므로 위만의 도읍 왕험성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동강(즉 패수)을 건너게 되지만, 만약 대동강이 동쪽으로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면 왕험성(즉 지금의 평양)에 가는데 강을 건널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해석으로, 그가 학자로서의 냉정함을 잃고 자신의 주장과도 어긋나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고구려 사신까지 끌어들여 평양이 패수(대동강)의 북쪽에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청천강으로부터 남쪽으로 오면 평양이 되므로 대동강의 흐름에 상관 없이 건널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역도원이 패수나 왕험성을 무조건 대동강과 평양으로 정해놓고 억지 주장을 하려다 보니 이런 치졸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중화사관에 따라 역사를 수없이 조작해 온 중국의 전통에 충실히 따른 비근한 예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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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30 [19:49]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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