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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중국대륙의 90%를 정복한 호태왕 (4부)
강태공의 제나라 땅까지 차지했던 고구리
 
성헌식 컬럼니스트 기사입력  2018/05/14 [13:37]

광개토태왕은 위대했던 정복군주인 동시에 문치를 중흥시킨 임금이기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춘태자라는 현명하고 뛰어난 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 비문을 쓴 장본인인 춘태자는 학식이 풍부하고 현인을 존경했으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순리에 따르니 천하가 그에게 힘입어 편안해졌고, 종실 사람들의 표상이 되어 세세토록 모범이 되어왔던 인물로 당시 고구리 제일의 문장가·철학가·사상가였다.

 

춘태자는 소수림제가 태자 시절인 359년에 태자비 연()씨에게서 얻은 강()으로 호태왕의 이복형이었다. 춘태자는 소수림제의 장자였기에 황위계승서열 1위였으나, 소수림제의 제2황후인 호태왕의 모후가 고국원제의 동생인 천원공의 딸이라는 성골의 신분에다가 호태왕의 자질이 워낙 출중했다보니 정윤(동궁)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391년 호태왕이 즉위하면서 대신들에게 지금 주변 나라들 모두가 연호를 쓰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없은 지가 오래되었소. 추모·유리·대무의 3대 시절에 건원했던 예를 살펴 응당 새로운 연호를 세워야 할 것이오.”라고 하교했더니, 춘태자가 영락(永樂)을 연호로 평안(平安)을 휘호로 호를 지어 올리니 호태왕이 윤허했다.

 

8(398) 9월에 춘()태자가 유기 70권을 개수(改修)해 바치니 호태왕이 매우 기뻐하며 황금 100근을 하사했다. 효심이 깊었던 춘태자는 해()태후를 극진히 모시며 태자비 천을과 함께 유기(留記)와 대경(代鏡)을 개수하는 일에 10년간 몰입해 대업을 완성시켰다. 나라 안의 악행과 악습을 없애고 선대 임금들께서 행하신 여러 훌륭하신 말씀과 치적을 드높이는 일들은 가히 정치의 거울로 삼을 만한 것이었다.

 

▲ 순장문화의 상징인 서안 병마용갱     © 편집부

 

호태왕이 순장(殉葬)에 대해 “처는 남편을 위해, 신하는 임금을 위해, 노비는 주인을 위해 죽는 것은 도리가 바로 선 것입니다. 그러나 처가 아들을 따라 죽는 것과 동명(주몽)께서 순장을 금하신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색두(索頭)에서는 자식이 서면 어미를 죽게 하는 악습이 있고, 여치(여태후)가 번쾌와 통정하고 모돈(흉노선우)에게 치마끈을 푼 것도 추한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하자, 춘태자는 “사람 됨됨이 차이는 털끝 하나 차이라, 죽기도 어렵지만 살아있기란 더더욱 어려운 법입니다. 아들을 따르는 것이 옳다고 성인께서도 밝히셨습니다.”라고 아뢰었다.
(http://greatcorea.kr/sub_read.html?uid=418&section=sc2&section2= 참조)

 

402년(임인) 2월에 신라에서 내밀(奈密=내물왕)이 죽자 호태왕은 춘태자를 금성으로 보내 조문하게 하고, 얼마 전까지 고구려에 인질로 있던 보금(宝金=실성왕)을 신라의 주인(主)으로 천성(天星)을 신라의 비로 책봉하고, 천성의 장녀인 11살짜리 효진은 내밀의 친아들인 눌기(訥祇=눌지태자)의 처로 삼았다. 호태왕은 일찍 과부가 된 친고모 천성을 392년에 신라에서 인질로 와있던 보금과 혼인시킨다.

 

2년 후 천성은 “금년 2월에 보금의 조상사당을 배알했으며, 동명의 단상도 만들었고, 중천제와 옥모의 상도 만들어 궁중에 두고는 보금과 함께 조석으로 참배하고 있습니다.”라고 소식을 전해왔다. 호태왕이 신라의 임금을 주인(主)라 칭하면서 그 임금을 책봉했다는 의미는 당시 신라가 고구리의 제후국이었다는 말이다.(http://greatcorea.kr/sub_read.html?uid=560&section=sc2&section2= 참조)

 

▲ 광개토태왕 당시 고구리대연방의 영토는 중국대륙의 90% 이상을 정복했다.     © 편집부

 

강태공의 제 땅까지 차지한 고구리

 

춘태자는 장수태왕 원년(414)에 우보(우의정)로써 국정에 참여해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장수태왕은 춘태자에게 다른 학자들과 함께 진(晉)의 율령을 참조해 새로운 법령을 만들라 하고, 권농조서를 내려 「적잠사」를 두어 백성들에게 시범을 보이라고 했다. 신라와 백제와 북연 등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치자, 접견을 마친 태왕은 춘태자에게 그들을 잘 접대하고 동명력(東明曆)을 나누어주라고 명했다. 고구리에 동명력이라는 뭔가 독자적인 역법(曆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춘태자는 죽기 전까지 제(齊) 땅을 다스리는 왕으로 봉직하다가, 433년(계유) 7월에 7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장수태왕은 좌우를 모두 잃은 듯 실색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태왕의 예를 따라 국내성에 장사지냈는데 선・불・유자들이 멀리에서도 찾아왔으며 흰 옷 입은 문상객이 10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 춘록을 경총대부로 삼고, 호태왕의 동생인 사위 담윤으로 하여금 제왕의 지위를 잇게 했다.

 

제 땅은 주나라 무왕이 쿠데타로 은나라를 무너뜨릴 때 총사로 활약한 강태공을 제후로 봉한 땅으로 지금의 하남성 신향(新鄕)시 위휘(衛輝)현 일대이다. 그곳은 장성 민화로 유명한 맹강녀와 강태공의 고향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정부는 강태공의 제나라가 산동성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도읍을 임치(臨淄)에 두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근거는 맹자의 어록에서 찾을 수 있다.  

 

▲ 하남성에 있던 제와 노가 산동성으로 지명이동되었다는 중국 지도     © 편집부

 

1) 공손축장구(公孫丑章句) ··주의 전성기에도 땅이 천리를 넘는 자가 있지 않았는데, 제나라는 그만한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닭 우는 소리 개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리어서 사방의 국경에 도달하고 있다. (원문) 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者也 而齊有其地矣 鷄鳴狗吠相聞而達乎四境)

 

2) 만장장구 하(萬章章句下) 천자가 한 자리, ····남이 각각 한 자리이니 무릇 다섯 등급이다. ··대부·상사·중사·하사가 각각 한 자리이니 무릇 여섯 등급이다. 천자의 땅은 사방 천리이고, 공과 후는 모두 사방 100리이며, 백은 70리이고, 자와 남은 50리이니 무릇 네 등급인데, 오십 리가 못 되는 나라는 천자에게 직접 통하지 못하고 제후에게 부속시키니 이를 부용국이라 한다.

(원문) 天子一位 公一位 侯一位 伯一位 子男同一位 凡五等也 君一位 卿一位 大夫一位 上士一位 中士一位 下士一位 凡六等 天子之制地方千里 公侯皆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凡四等 不能五十里不達於天子 附於諸侯曰附庸

 

3) 고자장구 하(告子章句下) : 천자의 땅은 사방 천리로 천리가 되지 아니하면 그것으로는 제후를 대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후의 땅은 사방 백리이니, 백리가 되지 아니하면 그것으로는 종묘의 문서와 서적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주공이 노나라에 봉해질 때에 사방 백리의 땅을 가졌으니 땅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리의 땅에 비해 검소했으며,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질 때에 또한 사방 백리의 땅을 가졌으니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지만 백리의 땅에 비해 검소했다.

(원문) 天子之地方千里 不千里不足以待諸侯 諸侯之地方白里 不白里不足以守宗廟之典籍 周公之封於魯爲方白里也 地非不足而儉於百里 太公之封於齊也亦爲方百里也 地非不足也而儉於百里

 

한마디로 주나라 무왕의 영토 즉 고대 중국의 땅은 사방 천리가 넘지 않았다는 말로, 제후였던 노()와 강태공의 제() 땅도 사방 백리뿐이었다는 것으로 닭 울음소리와 개 짓는 소리를 사방의 국경에서 들을 정도로 작은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성읍국가였으며 지금의 시장·군수를 왕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러한 노와 제가 산동성을 차지하고 있었고, ()이 북경 주위에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다.

 

중국정부는 이렇듯 작았던 고대 중국의 영토를 지명이동을 통한 역사왜곡을 통해 뻥튀기해 지금의 중국대륙이 모두 고대 중국의 땅이었다고 조작했던 것이다. 거기에 중화모화사상에 중독된 얼빠진 제후국 조선왕조가 부하뇌동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광활한 중국대륙의 실제 주인이었던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지금의 한반도만을 우리의 역사강역으로 알고 옛날에는 종이었던 중국과 일본을 상전으로 모시고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무지몽매하고 불쌍하다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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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14 [13:37]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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