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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한나라 국경선 패수는 상류가 서쪽 (4부)
진(秦)나라 고공지와 상하장으로 본 패수 위치
 
김종서 역사모 회장 기사입력  2018/05/29 [13:00]

 

7) ()나라 고공지와 상하장으로 본 패수 위치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 사기』「조선열전에서 위만의 무리가 동쪽으로 달아나 요동군의 요새를 나가 패수를 건너 진()나라의 고공지(故空地)인 상하장에 살면서 점점 진번, 조선, 만이 등을 복속시켰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진의 고공지인 상하장은 요동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건너는 강인 패수의 동쪽, 조선낙랑군의 서쪽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중국에서 상하장에 올 때의 순서는 서쪽에서 동쪽 순으로 요동군 요새 → ② 패수 → ③ 상하장 → ④ 조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나라의 고공지(故空地)()나라가 버려둔 옛 땅의 의미로 인식하여온 기존의 인식도 옳지 않다. ()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킬 때가 서기전 222년이고, 서기전 210년 진시황이 죽자 중국 전역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의 쟁패로 이어진 후, 유방이 항우를 죽이고 중국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각 제후들의 반란이 계속되었고, ()나라 재정은 극도로 피폐하여 졌다. 때문에 한()나라는 진()나라가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을 지키고 보존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계속되는 내부 반란을 진압하기에도 힘에 겨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나라의 정치경제군사 형세를 미루어 볼 때, ()나라의 고공지라는 것은 버려진 진장성(秦長城) 동쪽 부분의 내외(장성의 동서)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사기』「조선열전상하장(上下障)’의 기록으로 더욱 확실해 진다. ‘상하장(上下障)’이라는 단어는 사기』「조선열전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하고진의 옛 공지인 상하장에 살았다.’는 기록에 딱 한 번 등장한다. ‘상하장(上下障)’에 대한 다른 기록들은 전부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을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상하장(上下障)’은 어떤 특정한 지역의 지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상하장(上下障)’()’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이나 흙 등을 높고 길게 쌓은 보루이고, ‘상하(上下)’는 높고 낮은 지형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하장(上下障)’은 높고 낮은 지형을 따라 쌓은 보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요동군의 갈석산 동쪽에 있었으니 진()나라 장성(長城) 중의 동쪽 부분들과 그 인근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진나라 장성의 동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갈석산은 높은 지역이고, 갈석산 남쪽 기슭에서 발해 북안까지는 구글에서 측정한 수평 직선거리로 10km 내외의 평야지대이다. 따라서 갈석산에 쌓은 장새(보루)는 상장(上障), 갈석산 남쪽 기슭에서 바닷가까지 쌓은 장새는 하장(下障)이라고 부를 만하다.

 

, ()나라 장성의 동단은 갈석산(현 장수산)에서 산해관 혹은 요녕성 호로도시(葫蘆島市) 수중현(綏中縣) 만가진(萬家鎭) 지묘만(止錨灣) 바닷가에 있는 갈석궁(碣石宮) 유지의 동쪽 지역까지 쌓여졌을 것이고, 상하장은 이 장성부분을 기점으로 그 동서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6가지 조건과 본란의 조건에 맞는 강으로는 양하(洋河)와 석하(石河) 가 있다. 패수 후보를 좀 더 넓게 본다면 구하(狗河)를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상하장을 구하 동쪽지역으로 보아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참고로 앞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 사기』「조선열전에서 우거왕이 험준한 요새에서 한나라 군대를 방어했다.’고 했고, 우거왕은 위만왕의 손자로 위만왕이 건국한 조선의 왕이었으니 위만이 패수를 건너 처음에 웅거한 지역인 상하장(上下障)’은 조선의 영토 중에 가장 서쪽 지역에 속한 곳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거왕이 한나라 군대를 방어한 험준한 요새인 상하장(上下障)’은 창려 서쪽의 평탄한 평야지대에는 있었을 수 없다.

 

그동안 혼하 패수설, 태자하 패수설, 압록강 패수설, 청천강 패수설, 대동강 패수설 등을 주장하는 한국고대사 주류학계 학자들은 각기 진의 고공지 상하장을 천산산맥, 천산산맥 남쪽, 압록강 유역, 청천강 이북지역 등으로 주장하여 왔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고대사 주류학계 학자들 학설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해졌다.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선인 패수를 혼하, 태자하,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등 중의 어떤 강이라고 가정하고 그 이북 지역을 요동이라고 할 경우 그 강의 남쪽 지역은 모두 요동군의 동쪽 지역이 아니라 남쪽이 된다. 때문에 패수, 상하장이 요동군의 동쪽에 있었다는 사마천의 사기』「조선열전기록에 배치(背馳)된다.   

 

8) 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 패수는 상류가 서쪽인 강

 

‘2’절에서 보았듯이 사마천이 사기』「조선열전에서

좌장군 순체의 육군이 조선의 패수서군(浿水西軍)을 공격하였지만 아직 깨트리지 못했고,

천자가 전쟁이 유리하지 않음을 알고 위산을 사자로 보내어 우거왕을 회유하였으며,

우거왕은 태자로 하여금 말 5,000필과 군사 1만 여명을 보내어 항복하기로 하였고,

좌장군과 위산은 태자의 무장한 군사가 항복의 약속을 위반하고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무기를 휴대하지 못하게 하자 태자가 패수를 건너지 않고 돌아갔으며,

위산이 천자에게 돌아가 이러한 사실을 보고하자 천자가 태자의 항복을 막았다고 위산을 죽였고

좌장군이 (조선의) 패수상군(浿水上軍)을 깨트리고 전진하여 왕험성 아래 이르러 성 서쪽과 북쪽을 포위하였다.”고 하였다.

 

~ 까지의 경과로 볼 때 한나라 육군이 패수서군을 깨트리지 못하고 공방전을 벌인 시간은 최소한 수개월 이상 경과했을 것이다.

 

▲ 왜곡된 패수와 왕험성 위치도     © 편집부

 

()나라 좌장군의 육군은 수개월 동안 조선의 패수서군을 깨트리지 못하다가 조선의 패수상군을 깨트리고 왕험성의 서쪽과 북쪽을 포위하였고, 누선장군의 수군이 왕험성 남쪽을 포위하였음에도 수개월 동안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패수 서쪽을 지키는 패수서군이 곧 패수 상류를 지키는 패수상군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패수는 패수의 서쪽 부분이 상류인 강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기록이다.

 

만약 패수서군이 패수상군이 아니라면 좌장군의 육군은 패수의 서쪽을 지키는 패수서군을 수개월 동안 격파하지 못하자, 패수상류로 우회하여 패수 상류를 지키는 패수상군을 격파하고 왕험성의 북쪽과 서쪽을 포위하였다는 말이 된다. ‘왜곡된 패수와 왕험성 위치도에서 보듯이 패수서군과 패수상군이 조선의 서로 다른 방위군이었다면, 좌장군의 한나라 육군은 수개월 동안 격파하지 못한 강력한 수비군인 패수서군을 피하여 패수 상류로 올라가서 패수상군을 격파하고, 수개월 동안 포위해도 함락시키지 못한 강력한 힘을 가진 왕험성 수비군을 포위하였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좌장군 순체의 한나라 육군이 수개월 동안 격파하지 못한 조선의 패수서군과 수개월 동안 함락하지 못한 강력한 조선의 왕험성 수비군의 포위망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다는 말이 된다. 만약 한나라 군대가 강력한 패수서군과 강력한 왕험성 수비군 속으로 들어갔다면, 한나라 군대는 패수서군과 왕험성 수비군의 포위공격으로 궤멸되었을 것이다. 또한 패수서군이 강의 하류를 지키는 군대이고, 패수상군이 상류를 지키는 군대라면 강 하류의 평야지대를 지키는 패수서군이 산악지대를 지키는 패수상군보다 공략하기가 쉽다.

 

따라서 한나라 좌장군의 군사가 패수서군을 수개월동안 공략하지 못하다가 패수상군을 격파하고 왕험성의 북쪽과 서쪽을 포위하였는데 수개월 동안 왕험성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는 사기』「조선열전의 기록은 패수서군이 곧 패수상군이었고, 패수의 서쪽 부분이 패수의 상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처럼 패수의 실재했던 위치를 고증하는데 중요한 패수서군(浿水西軍)과 패수상군(浿水上軍)’의 기록으로 패수(浿水)의 위치를 고증해 본 학자를 찾아보지 못했다.

 

다만 이병도가 사기(조선전)좌장군, 격조선패수서군, 미능파전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때 한()의 육로군의 총지휘관인 좌장군 순체는 군사를 몰아 다시 국경선을 돌파하려고 하여 패수 서쪽(하류)의 조선군을 공격하다가 역시 조선 측의 굳센 저항으로 말미암아 여의치 못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전국의 불리함을 본 한무제는 …… 마침내 패수상군(상류군)을 깨뜰고, 달려 들어가 국도 왕험성(평양) 하에 다달았다. 사기(조선전)좌장군파패수상군, 내전지성하라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건대 이 때 조선군 측에서는 비교적 평탄한 지역인 패수하류방면(지금 안주 등지)에 주력을 두고 지리가 험요한 상류방면(아마 지금의 영변 등지)에는 병력 배치가 그다지 엄중히 하지 아니 하였던 모양이다. 한군은 이것을 알고 저항이 박약한 상류 쪽을 맹공하여 마침내 돌파의 공을 이루었던 것 같다.”고 한 주장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이병도의 주장은 좌장군 순체가 이끄는 한()나라 육군이 수개월 동안 격파하지 못한 패수서군의 막강한 수비군과 한나라 수군과 육군이 수개월 이상 동안 깨트리지 못한 강력한 왕험성 수비군의 포위망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다는 이상한 말이 된다.

 

더욱이 수개월 동안 계속된 적의 공격을 막아낼 정도의 장수와 군대라면 하류를 공격하던 적이 상류를 공격하기 위해 수백 리를 이동하는 것을 감시하지 않았을 리 없고, 적이 상류로 이동하는 만큼 아군 또한 상류로 이동하지 않았을 리 없다. 청천강 상류는 산악지대이므로 힘들게 강을 돌파하면 그 다음에는 산에서 내려다보는 수비군을 만나야 한다. 때문에 수비하는 측에서는 극도로 유리하고 공격하는 측에서는 극도로 불리하다.

 

또한 왕험성의 수비군과 패수서군과 왕험성 사이에 있는 수비군이 이러한 적의 이동과 청천강 상류의 수비군이 격파 당한 것을 몰랐을 리 없다. 청천강 상류를 돌파하고 남하하거나 청천강 하류를 지키는 수비군의 배후를 공격하는 한나라 군대를 청천강 하류를 수비하는 수비군과 평양과 그 북쪽지역의 수비군이 포위 공격하면 한나라 육군은 궤멸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병도의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 위 논문은 작년에 ()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의 '패수(浿水)의 위치 찾기 토론회'에서 3인의 집중토론자로 나온 역사모 회장 김종서 박사의 발제문입니다. 본지의 주된 편집방향과는 다소 다르나 다양한 학설소개 차원에서 게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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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9 [13:00]  최종편집: ⓒ greatc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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